물질의 상호이동과 우주의 평형

사진. 김옥선 

 

숲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케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기묘한 일이다. 저 숲 속,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도 알 수 없으나 내가 익숙한 거기, 내 고향, 그러니까 “내 땅”이라는 그 곳에 나대신 내가 모르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리고 나는 낯선 땅의 어느 곳에 이물질처럼 섞여,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케빈, 나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간과 공간 사이의 대칭성과 이상한 일방향성이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을 왕복하며 끝없이 맺혀가는 상처럼 꼬리를 문다.

수 백 년 전에 이 땅에 표착한 이국의 사내가 있었다 하니, 그의 이름이 “함 일”. 작가는 이 시대, 같은 땅 위의 이국적 사람들에게 “외국인”이란 말 대신 “함 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것은 외국인이라는 말의 일차원적인 의미 대신에 먼 곳에서 표류해 와 낯선 땅에 닿게 된 사연과, 그들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과 경험, 그에 더해 그들이 본국으로 가지고 돌아갈 표류의 기록까지를 포함하며 의미를 확장한다. 작가의 전작 “No Way Home”에서 등장인물들은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본인들을 둘러싼 이야기와 인격을 삭제 당한 채 몹시도 한국적인 실내 공간에서 그저 몹시도 이국적 모습을 한 사물로서 등장한다. 그에 비해, 이 작품이 담긴 “함일의 배”에서 인물들은 실내 공간을 벗어나 그들이 택한 어딘가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그들이 향유하는 어떤 것, 그들의 삶의 방식의 일부를 인물과 함께 드러냄으로써 인물들은 그저 “외국스런 얼굴”의 껍데기가 아닌, 각자의 이야기와 문맥을 가진 “함일”로 조금씩 거듭나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이 제주 땅에 “표착”했을 리 없고, “이국”이 어떤 것인지,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인지도 말하기 어려운 이때에 굳이 “함 일”의 이름을 빌려 “외국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고자 하는 작가의 발상이 과연 이들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얼마나 바르고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그들이 제주(또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긴 지에 상관없이, 그들의 문화적 이해의 정도와 본인들이 얼마만큼 제주도민으로서 정체성을 두는 지에도 상관없이, “외국의 얼굴을 했다”는 한 가지 조건으로 그들을 범주화함으로써 제주도 사람들과 그들을 분리하고 있다. 

제주도는 단지 거기에 존재하는 공간일 뿐, 그 공간을 차지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고, 가고, 있다가, 사라진다. “한국스러운”, 아니면 “제주도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들도 결국은 어디인가에서 왔다. (물론 삼성혈의 세 구멍에서 튀어 나온 예외적 경우도 있다.)제주에서 머문 시간은 어떤 이는 길고, 어떤 이는 짧다. 어떤 이는 제주 문화에 깊이 녹아 있고, 스스로를 제주도 사람으로 지칭하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섬에서 휴양을 즐기는 중이고, 어떤 이는 하루 빨리 뭍으로 돌아가려 애쓴다. 얼굴 생김과 피부색은 제주도 사람과 외지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아시안 하멜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제주도에 다다라 삶을 개척하는 이국의 사람들 중에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동유럽에서 유래한 사람들이 함께 존재할 터. 그런데 왜 김옥선의 하멜은 왜 모두 백인일까?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금발 또는 갈색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의 얼굴 이미지를 그대로 재생산하며 그들의 외모가 주는 외국인 느낌만을 편리하게 차용하는 작가의 여전한 백인 페티시즘은 전작에 이어 동일하게 반복되는 작품의 한계이자 오류이다. 작가의 “외국인 분류”에서 배제된 아시아인 함일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고향으로 가지고 돌아갈 이야기는 어떤 것들일까. 김옥선 사진집 “함일의 배”를 보며 나는 미처 이 배에 승선하지 못한 함일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모든 공간은 그 자리에, 그저, 존재한다. 오고, 머물고, 다녀가는 것은 사람이다. 대대로, 그러니까 최소한 이 백 년, 다섯 세대 이상 제주에 거주한 사람들을 양가 조상으로 두고, 제주도에서 나고, 오로지 이곳에서 자란 나 같은 제주도 토박이가 “지역색”을 모를 리 없다. 다만, 내가 제주도에서 억겁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며, 내가 제주도를 사랑할 뿐 제주도는 나를 주인이라고 말한 적이 없고, 이곳은 누구나 오고 머물고 사랑하고 떠날 수 있는 땅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움직이고 떠나고 어느 곳에 가 새로운 삶을 살다, 돌아오고, 또 다시 떠난다. 그건 마치 분자의 브라운 운동과 같은 것이다. 어느 방향이든 떠나고 서로 자리를 바꾸기도 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 복잡한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지만, 결국은 전체적인 평형을 이루고 있는 것, 그것이 우주의 진리라면 이 지구별 위의 사람이란 존재들도 그런 동적인 평형을 이루는 작은 입자들이 아닐까.

그렇게, 내가 떠나온 땅에서 삶을 발견한 남자가 있고, 나는 이 땅으로 와 이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카메라를 등지고 선 남자, 이름이 케빈이라는 저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여길 떠난 누군가가 케빈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마치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케빈이 서 있는 것처럼.

 

이소영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과학과 의학의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하는 일을 좋아해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서 일하며, 이따금 매체에 글을 쓴다. eesoyoung@gmail.com

Soyoung Lee

Dr. Soyoung Lee was born and raised on an island of plenty of wind and sunshine in Korea. She explored various fields in science and medicine in Korea, Japan, and the United States. Currently, she is a resident physician in Psychiatry. While she enjoys listening to patients and understanding the diverse perspectives of human lives, she is actively involved in inpatient and outpatient patient care, research, andmedical education. She is interested in neuropsychiatry and basic neuroscience. Her goal is to continue her career as a clinician-researcher- educator in Psychiatry. ees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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