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생각 일기

2014년 8월 10일
<뒤틀린 형태에 대하여>공연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정지하는 순간 없이 움직임을 유지하며 신체를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 알아보는 실험이다. 이것이 이번 작업의 주제이자 내용 그 전부다.
여느 때처럼 연습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을 보며 몸을 이리 저리 구부리고, 휘젓고, 내던지기를 하던 중 난데없이 나는 도대체 왜 움직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전생에 혹시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 이었을까? 이런저런 공상들의 출처를 파헤치고자 돌연 하고 있었던 작업을 멈추고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로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그것의 출처는 밝히지 못한 채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움직여 보지만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까지 다녀온 생각 때문인지 몸뚱이는 전과 달리 뜻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연습은 공상을 끝으로 그렇게 마무리 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몹시 불안하다.

2014년 11월 30일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창작 순환’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워크숍의 홍보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문화, 춤 스타일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몸, 움직임의 원리를 살펴보며, 통합적 신체로서의 즉흥, 창작 등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활동 중 하나인 움직임, 춤을 추는 워크숍입니다. 관심있는 분들 놓치지 마시고 참여하셔서 누리시길 바랍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근원적인 활동 중 하나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령, 성별, 전공분야나 관심사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몇몇 낯익은 얼굴들과 반가움을 나누던 사이, 특별한 시작이랄 것 없이 소토(Soto)의 워크숍은 시작했다. 소토는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도시를 찾아다니며 워크숍을 진행하여 풍부한 경험을 가진 가이드였다. 물론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한국 문화에도 꽤 익숙해 보였다.
워크샵 참여자들은 움직이기 편안한 바지와 티셔츠를 걸치고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한참동안 숨을 쉬었다. 그들과 같이 나 역시 긴장을 풀고 호흡에 집중하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잠이 들것 같았다. 이미 몇 명은 그 편안함을 베개 삼아 단잠에 빠져버렸는지 나지막이 코고는 소리도 들려왔다. 소토는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해 몸을 직립으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느린 호흡으로 진행해 나갔다. 그는 우리의 모든 움직임, 심지어 호흡까지도 인지와 자각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도록 제안했다. 예를 들면, 바로 누운 자세에서 한쪽 다리의 무릎을 구부려서 들어 올리는데 사용되는 근육은 무엇인지. 반대로 무릎을 곧게 펴고 들어 올릴 때 사용되는 근육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근육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직립으로 서있는 상태에서 척추와 골반은 어떻게 정렬을 이루고 있는지. 매순간마다 움직임과 근육의 상관관계를 인지하며 춤을 출 수 있도록 소토는 가능한 한 참여자들 스스로가 각자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그의 많은 설명 중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장요근(Iliopsoas muscle)’.
장요근은 골반 주변에 붙어있는 요근과 척추와 다리를 잇는 장골근을 포함하여 일컫는데, 유인원과 인간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장요근은 원숭이나 침팬지의 것과 비교했을 때 길고 두껍다. 이 근육은 걸을 때, 혹은 다리를 들거나 수직으로 서있는 자세를 유지하려할 때 사용된다. 비로소 장요근 덕분에 인간은 드디어 직립보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손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얻게 되었다.
장요근에 대한 설명은 이번 소토의 워크숍이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교 재학 당시, 모든 실기수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번씩 반복하는 무용과의 특성상 수업시간에 장요근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나 중요시 여겼던 장요근이 좀처럼 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혹독한 겨울, 기나 긴 동면에서 방금 깨어난 듯 그 움직임이 너무도 미비하여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머리 속이 온통 장요근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한 발짝 내딛기가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마침 소토의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몸과 마음, 생각이 일치되는 경험을 즐기길 바랍니다.”
몸 속 깊은 곳 어딘가로, 생각의 어느 한 가장자리로, 마음 속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새 4시간이 지났다.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된 워크숍이 피곤 했을법도한데 참여자 대부분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소토(G Hoffman Soto)는 지난 43년간 움직임 예술에 몸 담고 있는 무용가이자 교육자이다. 현대무용, 아프리카, 브라질, 일본 춤을 추었고, 타이치, 기공, 카뽀에라, 아이키도, 필리핀 무술을 익혔고, 독일, 일본, 호주 등에서 가르쳤다.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말하는 그는 1973년부터 아나 할프린의 샌프란시스코 무용가들의 워크샵으로 함께 작업했고, 이후 1978년부터 미국 타말파 교수진으로 가르쳤다. 심상신체요법(ideokinesis), 두개-천골 요법, 극성요법(몸 에너지의 균형잡힌 배분을 중요시하는 대체요법) 등의 전문가이며, 이러한 몸 작업에 깊이 영향을 받아왔다.

2017년 1월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춤을 추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동시에 신체를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연결 지을 생각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전 이사를 하면서 발견한 일기를 읽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호모 에렉투스(똑바로 선 사람) 이후 그 것이 인간이건 아니건 간에 이전과는 달리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 그로인해 양손의 사용이 자유로워졌으며,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는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것 쯤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 진부한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 갓난아기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할 때, 어떤 물체에 의존하여 간신히 일어나서는 앙증맞은 두 무릎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춤을 추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곤 한다. 마치 건강한 장요근을 몸 안쪽 깊숙이 장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듯. 어쩌면 아기의 움직임 처럼 춤추는 일 또한 특정 목적이나 이유 없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춤은 인간의 무의식 속 어딘가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고, 단단하게 진화된 장요근과 만나 그 오래된 꿈을 실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춤을 추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그 것을 직업으로 삼아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일 것이다.
2년전 글 아래 이렇게 덧붙여 보았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몸, 통합적 신체로서의 즉흥, 창작 등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활동 중 하나인 움직임, 춤을 춥시다. 관심있는 분들은 놓치지 마시고 이 자연스러운 활동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글。 신혜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예술사, 전문사를 졸업했다. 대표작에 <스커트-올로지>,<전래적인공무용>,<기술이 실패할 때-공동안무><뒤틀린 형태에 대하여>,<처음 만나는 자유>가 있다. hyejin0910@gmail.com

그림。 이주원

1986년 경기도 파주 출생이다. 그림 그리는게 좋아서 들어간 대학을 나오고 야심차게 갔던 미국 유학 중, 그림에 지쳐 그 외 의 영상이나 설치등 이것저것 하고 있다. 물론 그림도 자의를 타의화 시켜 중간중간 그리는 중. 현재 국내 레지던시들을 이리 저리 옮겨가며, 주로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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