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여행한다는 것

고생하며 여행한다는 것

류연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여행을 다녔었다.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신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때 처음 중국을 가 봤고 그 이후로 방학이면 늘 어딘가로 떠나있었다. 부모님은 학교 공부나 시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세상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어서 다른 친구들이 학원을 가는 동안에 나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라고 하면 재밌는 것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호텔에서 쉬는 일종의 휴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내가 다녔던 여행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중국 여행에선 주로 아버지가 차(茶)를 거래하던 산지를 다녔기 때문에 항상 가는 곳은 산속이나 차 상인들의 가게였다. 화장실도 제대로 없고 먹거리도 낯선 그곳에서 나는 다행히 적응을 잘 하는 편이었고 현지인들의 생활을 보는 것은 나에겐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15살에 처음 떠난 유럽여행에서 얼마나 설레었던지.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모와 유럽으로 떠났는데 전날 여행 준비로 무리를 하기도 했고 설레어 한숨도 못 잔 탓에 이탈리아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독감으로 끙끙댔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다음 날 응급실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덕분에 이탈리아의 병원은 진료비가 무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외국인한테도) 정말 심한 독감으로 코는 막혀서 이탈리아에서 제일 맛있다는 젤라또는 나에겐 그저 아무 맛도 안 나는 차가운 얼음덩어리일 뿐이었다. 또 소매치기는 어찌나 많은지. 민첩한 이모가 아니었더라면 내 가방과 멘탈은 탈탈 털렸을 것이다. 다행히 여러 번 소매치기를 만났지만 실제로 도난당한 적은 없었기에 이 또한 여행의 무용담으로 남았다.

중학교 때 다녀온 유럽여행에서 본 미술관이며 오래된 건축물들은 머릿속에 깊숙이 박혔고 다음엔 혼자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와 영국으로 약 한 달간 여행을 떠났다. 배낭여행자의 신분으로서 유럽 여행은 적은 돈으로 최대한 많이 구경해야 했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무척 재미없는 여행을 했을 것 같지만 내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고 아낄 건 아끼고 쓸데는 쓰는 꽤나 합리적인 여행을 했다. 예를 들어 미술 전시나 음악회 같은 문화생활에서는 적절히 지출하고 교통이나 숙소 같은 조금만 고생하면 절약할 수 있는 곳에서는 최대 한 절약하려고 했다. 다행히 혼자 떠난 여행에선 감기엔 안 걸렸지만 모든 문제를 오롯이 스스로 해결해야 해서 잔 실수가 많았다. 기차를 놓치기도 했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늘 헷갈렸다.

사실 살아가면서도 늘 이렇게 헷갈릴 때가 많았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지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 는 것인지. 그럴 때면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남들은 다 순탄히 가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럴까 하는 불안한 마음만 들었다. 그럴 때마다 도피 아닌 도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을 가면 대범해지는 나인데 왜 지금은 이럴까. 그러다 여행에서 한 실수와 고생이 생각이 났다. 여행에서 나는 길을 잃는 것을 좋아했다. 길을 잃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파리의 어느 가게에서 홍차를 사고 정처 없이 걷던 길 끝 에 소규모 아트 페어를 보았고 그 곳에서 교사를 은퇴하신 열정적인 화가 할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파리에서 지베르니를 갈 때는 시간을 착각해 기차를 놓쳤다. 초조해하며 창구로 갔는데 역무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기 가는 기차 많으니까 다음 기차 타면 돼.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길을 잃고 기차를 놓치면 또 다른 걸 발견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보다 길고 긴 인생에서 나는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었다. 그래서 스스로 자책하고 무기력해질 때가 많았다. 나보다 30년을 더 산 엄마는 대학 졸업 후 막막해 하는 내게 조금 여유를 갖고 스스로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급할 것 없다고. 살면서 겪을 수많은 일들이 여행과 같을 수는 없을까. 길을 잃으면 그곳에서 또 다른 걸 발견하게 될 수도 있는데.

류연우

Life Cultivation
Sheryl Cheung
혐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취향을 말할 때
양민희
노르웨이와 한국-결혼 2년차
권현정
A Meaningless Attitude Towards Diligence
안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