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를 위한, 그러나 아무나는 아닌

누구나에게 주어졌으나, 아무나에게는 아닌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는 내가 두 달 동안 야외전시 지킴이를 하면서 수 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지킴이로써 관리해야 했던 작품은 대다수는 관람객이 거리를 유지하면서 봐야 했고, 한 두 개 정도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준 작품은 김 준 작가의 ‘소원당; 소원을 빌다’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소원지에 소원을 써서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서랍 안에 본인의 소원을 넣으며 관람객이 같이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형 작품이었다. 오설록 티 뮤지엄 건물에서 이니스프리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했던 이 작품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나, 아무나 즐길 수는 없는 작품이었다. 전시 기간 동안 그 길목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은 정말 흥미로웠다. 크게는 지나가는 사람,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제 갈길 가는 사람, 작품에 참여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참 그 이유가 가지각색, 종류는 가지각색이다. 너무나 바빠 눈길도 안 주고 지나가는 사람. 눈길은 주되 그냥 지나가는 사람. “뭐지?”라고 질문을 던지고 지나가는 사람. 주변에 ‘뱀조심’ 안내문을 보고 “뱀이 있나 봐, 얼른 지나가자”라며 도망가는 사람. 작품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시간의 여유뿐만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와 호기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다음엔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staff 옷을 입고 앉아있는 나를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가 바라보는 목적이 다름을 알고 돌아서는 경우다. 서랍 안에서 공짜 선물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나, 스탬프를 찍는 장소로 오해했거나, 사진 찍는 장소를 안내 받기 위해 멈췄다가 금방 제 갈 길들을 간다. 그저 갈 길이 다른 사람들. 어쩌면 호기심을 가질 여유는 있으나, ‘다름’을 즐기고 갈 여유는 없었던 사람들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케이스, 작품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발걸음을 했다가 설명을 듣고 흥미가 생겨 참여하는 사람들 반, 몰린 사람들을 보고 참여하는 사람들 반인데, 그러다 가끔 열에 하나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 저돌적이다 싶을 정도로 직진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좀 대단하다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낯선 이들과의 대화를 꺼려하지도 않고 그들이 멋있어 보이게 해주는 여유가 넘친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지 뭐.”이런 반응이다. 똑같은 작품이었지만, 정말 다양한 가지각색의 반응들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반응을 바라보면서 ‘마치 신이 있다면, 인간의 삶을 관조할 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똑같은 한정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시간은 다양하게 기록될 수 있다. 새로운 다른 무언가를 창조할 수도 있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이 되어버릴 수 도 있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내가 잊고 있던 감사함을,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졌으나, 아무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그런 것들은 또 무엇이 있을까?

송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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