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울림: <MAPPLETHORPE + 25>전에 부쳐  

변방의 울림: <MAPPLETHORPE + 25>전에 부쳐

FOTOFOCUS AND THE CONTEMPORARY ARTS CENTER, CINCINNATI  (10/ 23 – 24, 2015)

 

로버트 메이플소프, 헬무트, NYC (X Portfolio 전에서), 1978.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 제공.

 

슬라이드 사진 속 젊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카메라 렌즈로부터 몸을 비틀고 시트가 깔린 플랫폼을 향해 웅크리고 있다. 그는 까만 비닐 옷을 입고 있는데 잘게 땋은 가죽 채찍이 항문 밖으로 나와있다. 한 손으로 채찍을 단단히 쥔 채 목을 길게 빼고 관객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은 까만 가죽과 하얀 살결 및 그림자가 이루는 삼각 구도 안에서 흐트러짐이 없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누가 봐도 명백했고,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미 친숙한 개념, 즉 도발이고 자화상이며, 믿음과 신념과 성적 취향뿐 아니라 자유와 저항과 잠재력에 대한 증언이었다. 메이플소프의 첫 전시가 열린 1988년 겨울, 그의 작품은 최소한 그렇게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89년이 되자, 작품은 죄, 폭력, 타락 심지어 성도착증의 행위로 해석되었다.

지난달, 포토포커스는 신시내티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와 합동으로 메이플소프 작품을 연구하는 주말 심포지엄을 주최했다. 순회 회고전 <Robert Mapplethorpe: The Perfect Moment>와 “문화 전쟁”에 불을 붙인 법적 스캔들이 일어난 지 20여 년도 더 지난 후에야 말이다. 이 심포지엄을 통해 지난 25년간 대단히 많은 것이 변화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나의 예로 1990년대 세대는 2015년 세대와 다르고, 설명할 나위 없이 긴박했던 80년대와 90년대의 인종 문제는 미국 내에서 더욱 심화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첫 번째 부시 정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동성 결혼 제가 이제는 50개 주에서 합법화되었다. 이러한 문화와 사회정치적 발전에 뒤이어 심포지엄은 영향력에 관한 질문을 제시했다: 이런 사진들은 1990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경계를 허물고 있고 해악의 소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메이플소프의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재 문화 지형은 미술사에서 메이플소프의 위상을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메이플소프가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참여한 세 개의 프로젝트를 중첩한 <XYZ 포트폴리오>는 현재 악명이 자자한데, 그 39개의 흑백사진 중 하나가 바로 (채찍을 든) 자화상이다. 작품 제작 당시 메이플소프는 이 세 개의 포트폴리오로 자신의 작품세계 (각각의 작품에 시각화된 삶, 죽음, 아름다움에 대한 명상)를 포괄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X 포트폴리오>는 동성 간의 가학피학성 행위를, <Y 포트폴리오>는 꽃의 정물 사진을, 그리고 <Z 포트폴리오>는 미국 흑인 남성의 몸을 고전적 우아함으로 나타냈다. 함께 전시된 이 시리즈는 빛과 어둠, 고통과 즐거움, 아폴론의 형식 및 엄격함과 디오니소스의 격정 같은 이분법의 섬세한 균형을 보여준다. 또한, 각각의 이미지들은 완전히 다른 취지를 지닌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국화 (Y Portfolio전에서), 1977.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 제공.

 

뉴욕 국제사진센터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큐레이터이자 70년대 당시 작가의 친구였던 캐럴 스콰이어스 (Carol Squiers)가 <XYZ 포트폴리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이 작품들을 묘사할 어휘가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았어요.” 나는 지금도 어휘가 매우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현재 우리는 작품의 성적인 내용보다는 작가의 주관적이고 극히 사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질리안 웨어링 (Gillian Wearing),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 그리고 신디 셔먼(Cindy Sherman)같은 다수의 현대 사진작가들부터 아리 버슬비스(Ari Versluis)의 콜라보레이션 팀과 프로필작가 엘리 비텐브룩(Ellie Uyttenbroek)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정의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각 작가는 공적이고 사적인 두 페르소나의 충돌, 개인의 표현과 집단의 일률성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에 관심을 두지만, 메이플소프의 변방 묘사만큼 효과적이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계속 질문하게 된다. 이미지의 그 어떤 부분이 이토록 강하고 마음에 오랫동안 남게 하는가? 계속해서 떠오르고 충격적이며 도발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에 관한 논의에서는 포함되지 않은 하나의 답은 운동의 문제에 있겠다. 동성 간의 성적인 욕망과 고전적 아름다움 및 인간의 욕망을 다룬 흑백사진으로 가득 찬 원형극장에서, 사진의 유통과 소비가 모순되게 순환하고 있음이 문득 떠올랐다. 1978년 메이플소프가 스튜디오의 개인 공간에서 친구들과 동료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성 소수자 커뮤니티를 찍으면서 사진의 여정은 시작된다. 그 후, 휘트니 뮤지엄의 큐레이터 리처드 마샬(Richard Marshall) 과 톰 암스트롱(Tom Armstrong)이 1988년에 준비한 회고전을 포함해 1984년까지 40개가 넘는 국제 개인전을 열면서 메이플소프의 사진들은 필연적으로 공개 영역으로 옮겨갔다. 그 뒤, 자넷 카돈이 기획한 <The Perfect Moment>가 1988년부터 1990년 사이에 필라델피아의 컨템퍼러리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시작해 보스턴까지, 일곱 개 순회전을 통해 메이플소프의 작품은 미국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순회전을 구성한 175점의 작품 중에서 동성애를 원초적이고 은밀하며 개입 없이 묘사한 것은 <X 포트폴리오>의 정교한 사진 몇 장에 불과했지만, 이미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미지들은 대중의 커다란 실망과 공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이 사진들이 전시된 시점은 미국의 문화 정치사에서 매우 독특한 시기였다. 에이즈 위기, 게이 인권 운동, 그리고 레이건 정부 이후 꾸준히 우익으로 기울던 사회의 분위기가 극보수주의와 집단 공포를 촉발하고 있었다. 미국 문화 전쟁이 일어난 곳은 다름 아닌 종교, 정치, 개인적인 대중의 세 가지 신념 구도 내부였고, 메일소프는 이때 미국의 대표적인 이름이 되어 미국 수정 헌법 제1조 (번역자: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법으로 보호함)와 예술 심의의 제약을 영원히, 효과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25년 동안 시대의 판도는 바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면서, 역설적으로 현재 이 작품들이 중요한 지점은 개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메이플소프 재단의 단장인 마이클 워드 스타우트(Michael Ward Stout)가 상세히 설명한 대로, 재단이 이미지들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변방을 중심부로 움직이기 위한 끊임없는 대중매체의 노력에도 재단은 사진 유통을 거부해왔다. 구글로 메이플소프를 검색하면 피드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이미지는 고전풍의 자화상, 꽃과 몇몇 나체 사진들이다. 작가가 3~4년의 짧은 시간 동안 몰두했던 S&M 사진들을 찾기 위해서는 상당히 집요하게 검색해야 한다. 그 결과, <X 포트폴리오> 사진들은 여전히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작품에 직접 참여했던 작가 본인과 관중 모두가 위태로워졌다.

메이플소프가 프레임 안의 구성을 고도로 계산하고 통제한 덕택에, 관객은 미술사가 전통으로 빚어온 관음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몸은 몸으로, 고통을 쾌락으로 그리고 쾌락을 고통으로 바꾸는 거래에 (눈으로 봄으로써 직접) 참여하게 된다. 이는 관행으로 여겨졌던 개인 행위와 공공 전시 사이의 균형을 효과적으로 뒤엎어,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미술 관중을 상당히 이례적인 입장으로 몰고 간다. 각주1과거에 이는 국가 규모의 대중 저항을 촉발할 만큼 큰 도발이었으나, 공공과 개인 사이의 경계선이 계속해서 흐려지고 있는 현재 이 전환은 더는 논란의 매개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품이 처음으로 전시된 이래 역사의 관점에서 변한 점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방식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소비 방식이다. 벌려져 묶인 몸과 피, 도구들과 고전적 대칭 그리고 <X 포트폴리오>에 찍힌 극적인 순간의 정적임은 모순이 되어 관객이 반응하고 참여하게 유도하는데, 이는 현대 이미지 소비 현황에 완전한 변칙이 아니라 할지언정 대단한 예외이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리 리 (Leigh Lee) (Z Portfolio전에서), 1980.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 제공.

 

이미지의 포화와 실시간 방송이 밤낮없이 나오는 현대 시대에서, 사진이 “셀카 군단”을 거슬러 내면을 향하고 진정한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때 비로소 그의 매력이 나타난다. 안과 밖의 경계가 더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움직임이 극단을 향하는"각주2 이 세계에서, 메이플소프의 이미지는 양극화의 급진적인 힘을 상기시킨다. 저항이 가능한 순간, 저항할 외부가 있는 순간, 그리고 변방에서 살아갈 수 있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재 메이플소프 작품에서 우리가 제일 시급하게 보아야 하는 부분은 사진에 직접 표현된 섹스, 위법, 혹은 인종 문제의 복잡함보다는 이미지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다. 문화와 공동체가 대부분 사라지고 만 지구촌 시대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성이다. 메이플소프는 타협하지 않고 서로 배척하는 두 개념을 혼합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불신과 열망 둘 다를 충족시켰다. 분열을 일삼는 과학 기술의 보호막에 침투하여 과거의 가식과 과격한 인간의 잠재력 둘 다를 벗겨내었다.

 

1. 데이브 히키의 Dave Hickey, 보이지 않는 용, 챕터 2 "사람의 아들은 아니지만" 참고 (시카고 대학 출판사, 2012).

2. 데리다는, 그의 에세이 ‘워드 프로세서’에서 컴퓨터 화면 기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새로운 종류의 이 스크린은 외부 공간을 더욱 확장시켰으며, 이와 동시에 더 이상 외부 공간을 존재하지 않도록 만든다. 우리는 무의식으로 가는 다른 문으로 이끌렸다. 스크린의 안쪽/ 바깥쪽이 만든 소용돌이에 빠진지도 모른 채 자신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안과 밖의 시작에 놓인다." 자크 데리다, 종이 기계:현존하는 문화의 기억 (스탠포드 대학 출판부, 2005).

 

본 글은 작가가 2015년 12월 9일자 브루클린 레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brooklynrail.org/2015/12/artseen/echo-at-the-margins-mapplethorpe-25

카라 루니는 브루클린 기반 예술가자, 작가와 비평가로, 공연, 조각 및 뉴 미디어 설치 분야에서 활동한다. 브루클린 레일의 예술 편집국장이며 School of Visual Arts 교수로 미술사와 미학을 가르친다.

 

카라 루니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이자 비평가이다. , , 등에 기고 하고 있다. http://www.karalrooney.com

Kara Rooney

KARA ROONEY is a Brooklyn-based artist, writer, and critic working in performance, sculptures and new media installation. She is a Managing Art Editor for the Brooklyn Rail and faculty member at School of Visual Arts, where she teaches Art History and Aesthetics. http://www.karalroone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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