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 현상 탐구 _세계적인 서구중심주의와 아시안 남성성, 그리고 싸이
 
수십년에 걸쳐 한국은 서양에서도 특히 미국 음악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했고, 대실패를 경험했다. 대신 한국의 대중문화는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이 흐름은 NHK(일본 최대 공영방송사)에서 드라마 시리즈 <겨울연가>를 일본에 방영한 2002년 이후로 탄력을 받았다.[i] 한국의 대중음악과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의 광범위한 인기는 ‘한류’, 혹은 ‘코리안 웨이브’라는 용어를 얻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한 대중들은 한국 연예인들의 이름까지 기억했고, 연예기획사들은 그들의 홍보전략을 이렇게 확장된 팬들을 기반으로 짜기 시작했다.[ii] 게임과 토크쇼에 이르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부터 드라마 시리즈와 대중음악그룹(아이돌이라 불리는)이 한국의 수출액의 큰 부분을 구성했다. 한류 전문가인 조영한에 따르면, “수출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으로부터 얻은 총수익이 2000년 150억 원에서 2005년 1167억 원으로 치솟았다.”[iii]
 
아시아 시장에서의 성공은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이 서양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바로 20세기 초반,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기를 발전과 근대화의 이상적인 모델로서 소개되던 곳 말이다. 한국 회사들의 마케팅 전략은 타켓이 되는 대상에 상관없이 줄곧 일관됐다. 한국내에나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었고, 육체적으로도 매력적이고, 재능있다고 검증된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을 내세웠다.  회사들이 그룹이 본래 발표한 한국 앨범의 일본과 중국 버전을 만들었듯이, 그들은 일반적으로 그룹의 영어 앨범을 위해 미국의 메이저 프로듀서와, 혹은 레코드 회사와 관계를 다져갔다. 예를 들자면, 2NE1과 빅뱅(YG 엔터테인먼트), 소녀시대(SM 엔터테인먼트), 원더걸스(JYP 엔터테인먼트)가 있다.[iv]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젊고, 아름답고, 재능있으며, 영어도 유창했다. 그리고 아시아 시장 속 성공 모델의 모범으로 간주됐다. 그들이 지금껏 집 근처에서 받는 그런 관심의 일부조차도 여태껏 서양에선 아무도 받은 적이 없었다. 비에게 주어진 할리웃의 <닌자 어세신>(2009) 주인공 역할(솔로로 활동하는 슈퍼스타로서, 아시아권에서 지난 십 년간 비의 지위와 유명세는 전성기의 마이클 잭슨에 비견됐다)은 여느 한국의 음악 셀러브리티들이 서양의 주류에 접근했다는 성취를 가장 유사하게 가시화했다. 그렇지만, 백인 남성[v]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닌자 어세신>에는 일본의 무술인 캐릭터가 필요했고, 단지 오프닝 주에만 영화가 미국내 총수익의 34.9%를 거두고 박스오피스 6위에 랭크되는 것에 그치면서, 흥행에 완전히 실패했다.[vi]
 
위에 나열한 마케팅 기준의 열렬한 추종자인 YG는 싸이라 불리는 가수 박재상(1977 년 12 월 31 일생)을 서양 시장을 포함한 해외 어느 곳에도 그들의 대표상품으로 홍보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싸이는 단순히 프로필에 들어맞지 않았다. 싸이는 한국의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외형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편이었고, 그의 인기비결은 유머와 위트에 있었다. <강남 스타일>이 글로벌 히트곡이 되기 전에 이미 그는 2001 년 데뷔 앨범인 <싸이코 세상에서 온 싸이> 이후 한국 국내 시장에서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 젊은이들은 첫 싱글인 <새>가 출시된 즉시 가사를 외우고, 춤을 따라 췄다. 무대에 바치는 싸이의 열렬한 헌신 덕분에 그는 콘서트의 왕이라는 국가적 명성을 얻었다.[vii] 그는 예쁜 소년 밴드나 소녀 그룹과 같이 특정 대상을 상대로 하는 가수가 아니고, 인기의 상당 부분이 재치있는 가사에 있었던 까닭에 성별과 세대에 관계없이 인기를 누리는 예외적인 대중가수였다. 아마도 그는 의무 복무를 하는 청년들로 가득 찬 군대에서 어린 걸그룹만큼 열성적으로 환영받는 유일한 남성 연예인일 것이다.[viii] 3번째 앨범인 <삼마이(3Mai)>(2002)에 수록된 노래 <챔피언>은 여전히  남성들의 선호곡이자 노래방 인기곡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싸이는 코믹한 인물(그의 주요 싱글들은 대개 팬들이 쉽게 배우고 따라할 수 있는 유머러스한 춤과 함께한다)이긴 하지만, 결코 광대는 아니었다. 그의 두 번째 앨범인 <싸2(Ssa2)>(2002)는 노골적인 내용 탓에 금지됐다. 2002 년 미군 탱크가 2 명의 한국 소녀가 생명을 잃게 만든 돌진을 한 이래, 싸이는 <디어 아메리카>라는 노래로 한국의 미군 점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라크 포로를 고문해 댄 XXXX놈들과 고문하라고 시킨 XXX XX놈들에 딸XX XX 며느리 XX XXX 모두 죽여. 아주 천천히 죽여. 고통스럽게 죽여.” 그는 당시 전국에서 열린 항의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미국에서의 <강남스타일>의 인기에 부합해  10년 만에 미국 언론에서 이 노래가 재등장해 싸이[ix]에 대한 비난여론을 형성했다.
 
그의 불안정한 평판과 우스꽝스러움을 감안해, 싸이의 기획사는 그를 해외 시장에 적합한 후보로 여기지 않았다. 일반적인 국민 감정은 국내에서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하는 모든 상품들을 불가피하게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동일시한다. 따라서 많은 한국인들은 싸이의 평범한 얼굴과 우스꽝스런 슬랩스틱 연기가 한국의 다른 모델을 보여주는 것보다 덜한 모델이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x]  호주 언론계의 한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당신을 추앙하고 있을거라 짐작합니다. [...] 그도 그럴것이 당신이 한국을 다른 나라에 소개하고 있지 않나요? 선구자같은 역할로서요?”라고 물었고,  싸이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한국인을 나처럼 보지 않을까 몹시 걱정됩니다. 그들 대부분은...잘 생겼거든요. [웃음] .”[xi]
 
SBS <힐링캠프>에서 싸이는 데뷔 무렵 보스턴 버클리 음악 대학 (Berklee College of Music)에 재학하면서 인터넷에 업로드 한 앨범을 보고, 한국에 있는 그의 첫 번째 음반사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싸이가 기획사와 미팅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 갔을 때, CEO는 이 예술가가 얼마나 매력적이지 않은지 보고 충격을 받았을 만 하다. 회사는 싸이를 두고 어떻게 마케팅을 할 수 있을지와“저 얼굴을 갖고 어떻게 해야할 지”[xii]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회사는 마침내 그를 진지한 랩퍼로 포장하지 말자고 결정했고, 그렇게 “Psycho”를 줄인 “Psy”라는 이름을 가진 재치있는 농담꾼이 탄생했다.[xiii] 그 도박은 상상도 못할 성공을 가져왔다. 싸이의 인기는 즉각 치솟았다. 그러나 YG는 여전히 그를 내수용으로 여겼다. 여섯 번째 앨범에서 나온 싱글인 <강남 스타일>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유능한 할리우드 프로듀서이자 한국과 미국 대중음악 산업을 연결하는 관계자인 큐리는 "이 같은 일은 아마도 향후 100 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xiv] 싸이는 무용 안무가 이주선과 비디오 감독 조수현과 함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싸이의 국내 팬을 대상으로 홍보하기 위해 2012 년 7 월 15 일, 이 곡은 유투브에 처음 업로드됐다. 곧 영상은 한국을 넘어 확산됐다. 불과 3 개월 만에 <강남 스타일>은 유투브 역사상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비디오로 기네스북 기록을 세웠다. 2012 년 9 월 20 일, LMFAO의 <파티락앤섬(Party Rock Anthem)>과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베이비>를 능가하는 200 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xv] 2012 년 12 월 1 일까지 <강남 스타일>의 동영상 조회수는 8 억 3 천만 뷰를 돌파했다. 2012 년 12 월 21 일 (1 초당 76.4 건의 조회수)에 비디오 조회수가10 억 건이 넘었을 때, 미국 빌보드는 이를 두고 “전례가 없는 이정표”라고 밝혔다.[xvi] 비디오는 예술가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와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를 포함해 "끊이지 않는 패러디 스트림”[xvii]을 양산했다. 이 폭발적 반응 덕에 싸이는 미국, 유럽 및 호주 등지의 다양한 매체에 출연했으며 마돈나와 함께 공연을 했을 뿐 아니라, 뉴욕시 타임스 스퀘어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공연에서도 프라임시간대에 출연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의 타카쿠 준(Takaku Jun)같은 아시아 저널리스트는 “일본에서는 거의 아무런 파급을 일으키지 못한 선글라스를 낀 채 '촌스런' 춤을 추는 통통한 한국의 랩퍼가 미국에서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xviii]는 사실에 아연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은 일본 청소년 문화인 애니메이션 및 기타 제품의 포용으로 인해 서구 국가와 아시아, 특히 한국 마케터의 중재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xix]
유투브를 통해 싸이는 이 단계를 완전히 건너뛰면서 스스로를 서양진출의 발판이라 여기던 일본의 환상을 깨트렸다.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그리고 세계적 성공의 위계질서[xx]에 따르면,  “글로벌”이란 본질적으로 유럽중심의 기준을 의미하면서, 서구에서의 성공이 세계에서의 성공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미국 또는 영국의 빌보드 차트와 비교해, 국내 순위에 오르는 것은 무시할만한 기량으로 간주됐다.
 
그러면 본래 순수하게 국내(한국) 대중을 상대로 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무엇을 해냈나? 이 노래의 성공요인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대중 너머에 있었던 것의 핵심은 가사가 아닌 뮤직 비디오, 즉 움직이는 이미지에 있다. 특히 미국에서 싸이의 인기는 1930 년대에서 1950 년대 근대화의 과정에서 자국의 미군 관객 앞에서 한국인의 자기 표현뿐만 아니라 미국 언론에서 아시아인이 받아 들여진 표현의 역사에 기인한다. 싸이의 비디오 속 유머(패러디와 아이러니, 부조리)의 사용은 시각적 메커니즘의 다양성에 기능하며, 아시아 만화의 기존 미국식 형식을 수용하는 동시에 이렇듯 단단하게 전형화된 이미지를 뛰어 넘는다. 이 비디오는 관습적인 사회적 분리에 기반해 차별하는 구석없이, 많은 것을 유동적으로 포괄함으로써 축제느낌을 연출한다. <강남스타일>의 이런 측면은 미국 시청자들에게 친숙함을 선사하면서 단순히 이상한 웃음거리로 남지 않게 했다. 카니발처럼 집단적인 유머를 창출한 시도인 싸이의 비디오는 (유럽중심적이고 서양숭배적인) 의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시스템에 불복종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음호에 연재 계속)
 
 
고캔디는 뉴욕에 거주하는 글작가, 그림작가, 번역가 및 활동가다. 학부에서 조각과 문학을 공부했고, 미술 비평과 글쓰기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로스쿨 재학중이다. 법정에서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될  계획이라고 과 친구들에게 말하길 좋아한다.
 
[i] 조영한, “아시아 속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 속에서 동아시아가 간절하게 찾고 있는 것,” 문화연구 3호 (2011. 3월): 383-384
[ii] 텔레비전에서 한국의 수출 대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방송사는 SBS, MBC, KBS다. 대중 음악 산업은 SM 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 및 JYP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3 대 주요 기업이 주도적으로 이끈다.
[iii] 조영한, 385.
[iv] 블랙아이드피스(The Black Eyed Peas)의 윌아이엠(will.i.am)과 함께하는 2NE1의 작업은 한국 케이블 TV의 음악 채널인 엠넷(Mnet)의 그룹 리얼리티 쇼 2NE1 TV에 잘 남겨져 있다. 빅뱅의 태양은 프로듀서 인 하비 메이슨 주니어(Harvey Mason Jr.)와 함께 일했다.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Breney Spears),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과 같은 가수들과 함께 일했다. 소녀시대는 인터스코프 레코드(Interscope Records)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미 2012 년 2 월 1 일에 데이빗 레터맨(David Letterman)과 함께 하는 더레이트쇼(The Late Show)에 출연해 미국 라디오에 곡을 틀기 시작했다. 원더걸스(Wonder Girls)는 조나스그룹(Jonas Group)과 헐리우드의 크리에이티브아트에이전시(Creative Art Agency) 두 곳과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미 <The DJ is Mine>이란 싱글을 발표했다.
[v] 이 영화는 제임스 맥티그(James McTeigue)가 감독했으며 매튜 샌드(Matthew Sand)와 J. 마이클 스트랙진스키(J. Michael Straczynski)가 각본을 썼다. IMBd, "<닌자 어세신>의 전체 출연진 및 제작진", IMBd,http://www.imdb.com/title/tt1186367/fullcredits?ref_=tt_ov_wr#writers (3월 22일 접속, 2013).
[vi] IMBd, <닌자 어세신>, 박스오피스 모조(Mojo), http://boxofficemojo.com/movies/?id=ninjaassassin.htm (accessed March 22, 2013).
[vii] 그의 데뷔 이후 수년 동안 내가 말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따르면, 10 대에서 40 대까지 다양한 팬덤(그의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부터 극단적으로 관심있는 이들까지)이 지속적으로 공연티켓 값이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viii] 힐링캠프
[ix] 막스 피셔, “강남 국가주의: 왜 싸이의 반미 랩이 당신을 놀라게 하지 않았을까?” <워싱턴포스트>, 2012년 12월 7일, 월드 뷰. (2013년 3월 21일 접속) http://www.washingtonpost.com/blogs/worldviews/wp/2012/12/07/gangnam-nationalism-why- psys-anti-american-rap-shouldnt-surprise-you/
[x] 싸이의 한국성에 대한 웃기고 비합리적인 공격은 오영진이 쓴 이 기사에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 [...] 싸이의 문제, 더 나아가 <강남 스타일>의 문제는 그의 모든 공연이 거짓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싸이와 그의 노래엔 한국인으로 간주 될 수 있는 요소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말춤은 한국과는 관계없는 그의 노래에서 가장 인기있는 요소 중 하나다.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승마 인구가 많지 않고, 승마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인기있는 스포츠는 아니다. 나는 승마가 그의 노래에 너무 강조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한국인이 징기스칸의 자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품는다. 징기스칸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전 세계를 가로 질러 말을 타고 다녔다. [...] 싸이의 뮤직비디오의 도입부는 한국 스타일을 보여주려는 건지 아닌지에 대한 의혹을 더욱 강화시켰다. 오영진, “싸이의 정체”, 코리아타임즈, 2012년 10월 2일, 오피니언 (2013년 2월 21일 접속)
[xi] 싸이, 에덴 캐시티(Adene Cassidy)와의 인터뷰,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가졌다” 투데이 투나잇, 7번 채널, 호주, 2012년 10월 16일, http://www.youtube.com/watch?v=0EmZ8aZSYtE (2012년 12월 12일).
[xii] 싸이에 따르면, 미디어에 노출될 때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회사의 누군가가 제안했다고 한다.
[xiii] 한국의 연예인들은 3 개의 주요 기획사 중 한 곳과 계약 할 때 융통성이 거의 없다. 회사가 특정 이미지로 연예인을 꾸미기로 결정한 경우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그를 수락해야만 한다. 몇 년에 걸쳐 상당한 인기와 인지도를 얻은 경우엔 회사와 자체 협상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사례가 드물며, 경력이 10 년 이상 된 후에도 기회를 못 얻을 수도 있다.
[xiv] 이규, 저자와의 전화 인터뷰, 2013년 2월 6일
[xv] 기네스북, “<강남스타일>이 유투브 역사상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비디오로 기록됐다., 기네스북, 2012년 9월 20일, http://www.guinnessworldrecords.com/news/2012/9/gangnam-style-now-most-liked-video-in- youtube-history-44977/ (2013년 3월  22일 접속).
[xvi] 윌리엄 그루거(William Gruger), “싸이의 <강남스타일> 비디오를 1조가 본 전례없는 이정표, 빌보드 2012년 12월 21일, http://www.billboard.com/biz/articles/news/1483733/psys- gangnam-style-video-hits-1-billion-views-unprecedented-milestone (2013년 3월 22일 접속).
[xvii] 리차드 제임스(Richard James), “2012년 강남스타일 패러디 탑텐,” 메트로, 2012년 12월 21일, http://metro.co.uk/2012/12/21/top-ten-gangnam-style-parodies-of-2012-3313788/ (2013년 3월 22일 접속).
[xviii] 준 타카쿠(Jun Takaku), “아마도 아직 일본에서는 아니지만, 싸이는 이미 미국에서 센세이션,” 아사이 신문, 2012년 11월 16일 http://ajw.asahi.com/article/behind_news/people/AJ201211160014 (2013년 1월 1일 접속).
[xix] 조영한, 392.
[xx] 조영한.
 
 

글。 고캔디

뉴욕에 거주하는 작가, 그림작가, 번역가 및 활동가다. 학부에 서 조각과 문학을 공부했고, 미술비평과 글쓰기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법정에서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될 계획이라고 과 친구들에게 말하길 좋아한다.

그림。 이주원

이주원은 1986년 경기도 파주 출생이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 서 들어간 대학을 나오고 야심차게 갔던 미국 유학 중, 그림에 지쳐 그 외의 영상이나 설치 등 이것저것 하고 있다. 물론 그림 도 자의를 타의화 시켜 중간중간 그리는 중. 현재 국내 레지던 시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주로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

번역。 이나연

<씨위드> 편집장

고캔디

고캔디는 뉴욕에 거주하는 글작가, 그림작가, 번역가 및 활동가다. 학부에서 조각과 문학을 공부했고, 미술 비평과 글쓰기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Candy Koh

Candy Koh is a writer, artist, translator, and activist based in New York City. She studied sculpture and literature as an undergraduate and later received an M.F.A. in Art Criticism and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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