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이야기인지 내 이야기인지 모를 이야기

 

서울에서 40년 넘게 살았지만 내 집은 갖고 있지 않았다. 제주에 부동산 열풍이 한참 몰아칠 때 주변에서는 어서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한다고 했지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서울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을 때에도 2014년에 제주에 내려와 연세를 내고 살면서도 집 없는 것이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어도 내 알 바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사람들은 세상물정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이야기할지 몰라도 집이란 것은 필요하면 사게 되는 것이고, 세 들어 살아도 그다지 불편을 모른다면 안사도 그만이라는 것이 지금껏 갖고 있는 내 인생관 중의 하나였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들어서기 직전, 국어선생님이 『어린왕자』의 유명한 도입부를 수수께끼 내듯 들려주었을 때를 나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 그 책 『어린왕자』를 도서관에서 빌려와 이불속에서 숨죽여 읽으면서 나는 말 그대로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그 뒤로 공부는 조금 뒷전에 두었으나 책만은 손에서 놓지 않는 시간이 대학졸업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학에서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졸업하고 유치원을 첫 직장으로 삼았다. 아이들을 참 좋아했지만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버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멀리 떨어져서 밥벌이를 위해 말 그대로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선택한 것이 문헌정보학과. 또 한 번의 대학졸업이후 나의 도서관 사서로서의 생활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새로 생기는 지자체 도서관에서부터 학교 도서관까지. 입시에 목숨을 거는 아이들에게 숨을 돌리라고 이 책 저 책 소개해주고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책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더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책 이야기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도서관사서가 아니라 작은 책방의 주인이 되어 책을 탐색하는 누군가와 책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그때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책방은 머나먼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내 안으로 <제주>가 찾아 들어왔다. 대학교 졸업여행으로 찾았던 것이 고작이었던 제주를 틈날 때마다 찾게 되었다. 한창 제주에 빠져있을 때는 일년에 열댓 번 쯤 다녀가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렇게 좋았는지 이유는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푸른 바다, 야트막해서 더 정겨운 오름의 풍경, 검은 돌담과 그 안에 깃든 초록 생명들. 어쩌면 그런 것들..., 제주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던 중10년 전쯤 어느 날, TV에서 “해녀학교”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해녀학교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을 지금도 무척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자신의 대학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대학시절 자신을 매혹했던 캘리그래피 수업을 우연히 듣게 된 것 등이 하나의 점(Dot)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점들이 훗날 시간이 지나서 자신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 때 서로 연결되면서(connecting the Dots)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점을 연결하는 것은 운명의 힘인지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작용하기 때문에 미리 알수는 없다 해도 부지런히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열심히 점을 찍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연결될 때 자신도 모르는 무엇인가 큰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으로 나는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다.

지금 책방이자 카페이면서 북스테이를 표방하는 <바다의 술책>은 애월에서 한림으로 넘어가면서 만나는 첫 마을 귀덕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한 무리의 손님들이 찾았다가 떠나는 분주한 점심 무렵이 지난 오후가 되면 문득 내가 있는 카페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지?’라고 신기한 느낌이 든다.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장만하지 못했으면서 바닷가에 작은 책방이지 카페의 주인이 되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것도 없다.

일단 <바다의 술책>이 있는 자리는 해녀학교 선배언니가 하던 빵집 겸 카페가 있던 곳이다. 임대료가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책방을 한다면 반드시 바닷가에서 하겠노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계약했다. 당시에도 주변사람들은 바닷가에 서점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말렸지만 나는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책방개업을 알리는 현수막에 그 말을 고스란히 담았다. ‘내가 미쳤지 바닷가에 책방이라니..’라고)

3개월 정도의 개업 준비기간 동안에는2015년 해녀학교를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없는 돈에 일일이 간판과 책꽂이 등을 해녀학교 동기들과 선배들이 나서서 자기 일처럼 만들어주었고, 서울에 있을 때 사서로 지내면서 친해진 출판유통 전문가이자 친구처럼 지내는 분들은 거의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택배로 주문하는 책들을 한림읍 귀덕리까지 배송해주었다. 2016년 잠깐이지만 해녀학교 동기가 제주시 칠성로에서 운영하는 독립출판 서점<라이킷>의 귀퉁이를 빌려 <트멍>이라는 작은 책방 속 더 작은 책방을 운영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인생의 순간마다 나는 내가 하고픈 것을 했을 뿐인데 알게 모르게 그러한 것들이 서로 연결이 되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장면들은 내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인생의 고비마다 원해서 선택했던 수많은 점들, 그것은 해녀학교와 같은 특정한 경험일 수도 있고 그런 경험을 함께 나눈 사람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점들이 모여서 오늘의 나와 <바다의 술책>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바다의 술책> 한켠에는 서른 권에 가까운 전 세계 언어로 된 『어린왕자』 책들이 자그맣게 전시되어 있다. 몇 권은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선물 받은 것이지만 대부분은 20대 중반부터 여행을 다니면서 모았던 책들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시간을 내서 현지의 책방에 들러 한 권 한 권 수집한 각각의 『어린왕자』마다 내 여행의 기억이 담겨져 있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한 것은 수많은 점을 찍어온 것이 아닐까 싶다. 중학교 1학년 어린아이의 티를 벗지 못했던 그때 시작된 책과 나의 여정은 일단 귀덕 앞바다 <바다의 술책>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앞으로의 어떤 여행이 펼쳐질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껏 그래왔듯이 흥미진진할 것만 같다. 책을 매개로 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찍어온 수많은 점들이 서로 연결되어 단순한 점으로 머무르지 않고 서로 연결되면서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것만큼 재미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제주의 해지는 노을은 하루의 피곤을 깨끗이 씻어내곤 한다. 오늘도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느끼면서 지금의 보금자리 <바다의 술책>에서 책 한권과 커피 한잔을 꺼내들고 선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제주의 바다와 하늘을 바라본다.

노우정

바닷가의 술파는 서점, 운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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