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디자이너_김영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선호하는 디자이너는 많지만, 김영나처럼 꾸준히 부름받는 디자이너는 없다. 지치지 않는다는 것은 고갈되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건, 단단함에서 나온다.

국제갤러리는 최근 김영나와 전속 작가 계약을 맺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상업갤러리에서 디자인 베이스의 작가를 콜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에서 설치나 조각 등의 커미션 작업을 갤러리에 의뢰하는 경우가 있는데, 순수미술 작가분들에 비해 좀

더 유연한 부분이 있으니 이런 일들을 도모해보자는 것이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국제갤러리는 월드 클래스 수준을 철저하게 검증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의 바우하우스 전시, 과천관 아트숍 UUL과의 컬래버레이션 ‘THE SHOW- ROOM’, 두산연강예술상 수상 이후 서울과 뉴욕의 두산갤러리에서의 전시, 그리고 국제갤러리 그룹전.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김영나가 한국에 온 지 5년. 그 단단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현재의 김영나가 되기까지, 꼼꼼히 다져왔다는 느낌이 든다. 학부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이 아닌,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 카이스트 공대 내에 있던 과라, 공업과 산업적인 디자인 측면을 강조했다. 유학을 생각했으나, 그 전에 국내 대학원에 먼저 갔다. 그래픽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는 것이 기본이고 먼저라 생각했다. 당시 홍대 학부 수업을 청강하면서 대학원 조교로 안상수 연구실에서도 일했다. 가장 기억나는 일은 200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프로젝트. 당시 커미셔너가 故 정기용 건축가였고, 안상수 연구실에서는 그래픽 디자인과 도록, 홍보물을 맡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들과 제자들이 함께 미팅을 했는데 그게 꼬박 1년이었어요. 그 모든 프로세스를 경험한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당시에 만난 제자들이 지금은 건축가, 디자이너로 여러 나라에서 일하고 있어 서로 도움이 되죠.” 한 달간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에서 꼽아둔 학교를 꼼꼼히 ‘탐방’한 후에 결정한 곳은 네덜란드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다. ‘타이포그래피 공방’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수업 과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학교로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커리큘럼이다. 클라이언트에게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인쇄소까지 방문하는 것이 일이었으니, 네덜란드에서의 6년은 배움보다 ‘활동’의 시간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가령, 선을 사용할 때 0.25포인트가 적당하다는 식으로 한국에서 일해온 방식들이 있잖아요. 이건 왜? 다시 되짚어가면서 처음부터 쌓아나갔죠.” 김영나의 작업하면 떠오르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선과 도형, 컬러와 패턴 등의 그래픽 요소가 강한 이미지들이다. 구체적인 정보를 주는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것에는 원래부터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김영나는 공산품과 같은 형태에서 드러나는 정해진 틀을 빌려 사용한다. “원이나 사각형 등 어떤 형태에서 가령, 원의 지름이 2센티미터인 것은 기능성처럼 제품마다 이유가 존재하죠. 그런 형태의 틀을 가져다 쓰는데 다른 방식의 규칙을 정해 저만의 레이어를 만들어가는 거죠. 모더니즘 시대의 미덕을 찾자면, 형태적인 면이 아니라 당시의 진보적인 태도, 사고방식이에요. 어떤 작업이든 선택의 연속이거든요. 애매모호한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기준으로 삼는 건,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태도예요.” 그래픽 디자인, 워크숍, 강의, 큐레이팅, 아트워크. 각자의 리듬과 박자에 따라 움직이고 확장하는 김영나의 놀라운 일들 중 최근의 전시

한 가지만 소개한다. 두산연강예술상 수상 이후, 뉴욕에서 2015년에 가진 개인전이다. 디자이너의 역할극에 대한 질문을 전시 주제로 삼고, <SET>라는 이름의 책을 만들었다. “책은 익숙한 매체지만, 제 작업을 들여다보며 책을 만들 자신이 없어 네덜란드에서 함께 공부한벨기에디자이너,요리스크리티스(JorisKritis)에게 디자인을맡겼어요.일종의 샘플북 형태죠. 각각의 작업들에 있는 원본 컨텍스트를 다 지워내고 오롯이 시각적인 형태, 컬러를 카테고리별로 배열한 형태예요. 책의 그래픽을 벽 크기로 확대해 전시장을 꾸몄죠. 전시장을 돌면 한 권의 책을 보게끔. 시트지로 하는 것보다 벽화를 해보면 어떨까? 물성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었고, 전시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 또한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김영나는 미술사적 맥락에서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고민하기보다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것, 되게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일이라 말했다.

 

글。 김만나

<헤리티지 뮤인>의 피처디렉터.

사진。 김영나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2004년 홍익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2008년 네덜란드 타이포그래피 공방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며 계간 <그래픽>의 편집자 겸 아트디렉터로 참여했다. www.yn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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