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의 기억에 관하여

노순택 ◦ 망각기계 1 나종기 ◦ 2011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이는 언뜻 듣기에는 논리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질문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경험에 기반하며, 그 내용이 망각되지 않고 유지되다가 추후에 일련의 재구성을 거쳐 되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은 개인적인 차원의 것 뿐만 아니라 구전으로 계승되거나 사회적으로 체득된 간접적인 내용 또한 포함한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나 며칠 전 만난 친구와의 대화 내용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기억 외에도, 조부모 및 부모 세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쟁과 분단의 기억,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대형 참사에 대한 기억 또한 나의 기억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두의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 써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간접 경험 관련 기억 담론의 주제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은 단연 2차 세계대전 동안 일어난 유태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기억이다. 나치스의 주도 아래 자행된 ‘인종 청소’였던 홀로코스트는, 1945년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수용소가 해방될 때 까지 약 600만 여명에 이르는 유태인을 희생시킨 희대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전범자 처벌이 마무리 된 1950년대 초 이후 약 20년 이상 사회적으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이 끔찍한 기억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며 기억을 재현하는 과정 자체에 대해 회의를 표했으며, 일반 대중은 감정적 마비 (emotional numbing) 를 경험함으로써 도덕적 책임 문제를 점차 회피하고자 하였다. 또한 독일이 미국의 우방으로 변화함에 따라 나치스에 대한 증오가 공산주의자에 대한 혐오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는데, 이처럼 외부의 새로운 적을 찾음으로써 2차 세계대전 동안 일어난 독일의 가해자로서의 기억이 자연히 흐려졌다는 주장도 있다. 이 수십 년에 걸친 집단 망각의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 논의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기억이 1980년대 초를 기점으로 침묵을 깨고 서구 사회의 뜨거운 논쟁 거리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 들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회고록이 본격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관련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학술 저널 또한 기획되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의 <홀로코스트와 대학살 연구 (Holocaust and Genocide Studies)>, 미국 인디애나 대학 출판사의 <역사와 기억 (History and Memory)> 등은 이 시기 출판되기 시작한 학술 저널의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1989년 베를린의 유태인 대학살 추모비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미국 워싱턴 D.C. 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이 개관했다. 홀로코스트 기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대중 매체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1978년 미국에서 처음 방영된 후 이듬해 서독에서도 방영된 TV 프로그램 <홀로코스트: 바이스 가족 이야기 (Holocaust: The Story of the Family Weiss)>는 대중매체에서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다뤄진 초기의 사례이다. 유태인 박해와 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로 대중적 흥행에도 성공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1993>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처럼 홀로코스트 기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소 과열되는 양상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갔다. 네덜란드 출신의 저명한 홀로코스트 역사 학자 어니스트 반 알펜 (Ernest Van Alphen) 은 성장 과정 동안 그 자신이 듣고 보아온 전쟁 이야기와 홀로코스트 기록 사진들에 대해 ‘죽도록 지긋지긋하다’고 쓰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홀로코스트 기억 연구가 본격화된 1980년대와 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학자들 대부분이 홀로코스트 이후에 출생한 소위 ‘사후 세대’ 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연히 각종 기록과 매체를 통해 매개된 기억에 큰 관심을 보였다. 홀로코스트 이후 출생한 생존자 자녀들의 기억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사후 기억 (postmemory)’ 개념이 논의되기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사후 기억 개념을 처음 소개한 마리안느 허쉬 (Marianne Hirsch) 교수는 사후 세대의 특성으로 그들의 기억이 회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읽거나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상상과 창조에 의해 구성된다는 데에 주목했다. 오랜 기간 터부시 되었던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사후 세대에 이르러 다시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한 것 또한 이러한 열린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창조의 과정에 당대 미술가들이 활발하게 참여했다는 점이다. 오늘날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Christian Boltanski, 1944~),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1945~), 레이첼 화이트리드 (Rachel Whiteread, 1963~) 등은 모두 이 홀로코스트 사후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홀로코스트가 예술적 창조의 주제가 되는 것에 대해 윤리적 차원의 의구심을 갖는 이들에 맞서 그들만의 새로운 표현 언어를 개척했다. 그들은 참혹한 기억을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는데, 전쟁 당시 소실된 공간을 텅 빈 모습 그대로 보여줘 상실을 표상하거나, 희생자들의 소지품들을 아카이브 형태로 전시하여 대형 참사에서 쉽게 잊혀지기 쉬운 개인성에 주목하게 하기도 했다. 최근 런던의 화이트 큐브 (White Cube) 갤러리에서 성공리에 개인전을 가진 키퍼는 유태인 희생자에 대한 기억과 상실의 감정을 여러 형태의 설치미술을 통해 표현하는 작가이다. 이 전시에서 그는 갤러리 복도를 따라 산화된 납으로 만든 빈 침대들을 배치하는 한편, 천장으로 이어지는 나선형의 계단을 설치하고 희생된 유태인들을 연상시키는 낡은 옷들을 여기에 걸어, 서늘하리 만치 공허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였다. 기억 분야의 저명한 학자 가운데 하나인 알라이다 아스만 (Aleida Assmann) 은 이처럼 현대 미술 작가들의 설치미술 작품들이 기존의 재현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며, 이 작품들이 언어를 통한 재현이나 2차원 평면의 회화와는 다른 3차원의 ‘기억의 공간 (space of memory)’을 창조하여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이 참혹한 기억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스만이 얘기한 것처럼, 소위 사후 세대로 불리우는 이 2세대와 3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정말 기억 문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일까. 윤리적 문제에 있어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하며, 이처럼 재구성된 기억이 오히려 홀로코스트 기억에 왜곡을 초래했다고 말한다. 이와는 반대되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은 이 새로운 세대의 창조를 통해 과거의 참혹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간접 경험에 기반한 사후 기억에 대한 기대와 회의는 오늘날 한국 및 동아시아 국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침략 전쟁 및 식민 지배를 둘러싼 기억의 문제는 위안부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전역의 전쟁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문제, 각 국가의 역사 교과서 편찬 방향을 둘러싼 논쟁 등 다방면에 걸쳐 논의되고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관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모든 협상 테이블에 과거사 문제가 올라온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국가별로 보았을 때, 한국의 경우에는 4.3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 갈등의 기억, 잇따른 전쟁과 분단의 기억, 그리고 반민주적 정권에 의한 탄압과 이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가들을 재평가하는 문제 등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 집권 시기,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는 동안 전방위로 진행된 과거 지우기 정책과 무자비한 검열, 그리고 천안문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와 유혈 탄압의 기억이 주된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과거와 패전국가로서 가지는 피해자로서의 기억이 혼재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로 인해 오랫동안 묵과되었던 전쟁에 대한 책임 문제가 1989년 히로히토 국왕 사망을 기점으로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의 집단 기억 문제가 1990년대 경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홀로코스트 사후 세대가 그러했듯, 동아시아에서도 2세대 혹은 3세대에 이르러 대면하기 어려웠던 기억에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후 세대 미술가들은 기억을 표상함으로써 국가에 의해 채택된 공식적 내러티브에 저항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국가 단위의 집단 기억은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데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기에, 집권 세력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사후 세대 미술가들이 표상하는 기억은 따라서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과거에 새롭게 접근하기를 제안하는 ‘대안적 기억 (alternative memory)’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표상하는 대안적 기억의 주된 특성은 현재를 기준으로 기억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역사적 사건의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는 점이다. 분단과 전쟁, 광주 민주화 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사건에 대해 다루지만 이를 공통적으로 동시대의 사회적 현안과 연결시켜 보여주는 한국의 사진가 노순택은 대안적 기억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망각기계> 연작은 광주 망월동 묘역의 빛 바랜 영정 사진들을 담아내는 한편,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에 국립 묘지를 참배한 후 떠나는 현대 정치인의 모습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함께 배치해 영정 사진 속 인물들의 희생이 갖는 현재적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오랜 시간 외면 받았던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국가에 의해 기념되고, 집권 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용되기도 하는 모순적 상황에 대해 숙고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중국의 사진가이자 퍼포먼스 예술가, 설치미술가인 장달리 (Zhang Dali) 의 <두 번째 역사 (A Second History)>는 국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집단 기억을 보다 직접적으로 조망하는 작품이다. 그는 마오 정부의 대대적인 검열 아래 반정부적 인물들을 지우거나 도려낸 출판물들을 수집하고, 검열 전의 원본을 오랜 기간에 걸쳐 모두 수집하여 이들을 나란히 병치하였다. 이를 통해 작가는 국가에 의한 집단 기억의 왜곡을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물론, 공식적으로 기술된 역사의 진실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일본의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 (Koizumi Meiro)의 <오럴 히스토리: 1900년에서 1945년 사이 일본과 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Oral History: what happened in and around Japan between 1900 and 1945)> 는 도쿄 도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기억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엮어 만든 영상 작품이다. 입 부분만 클로즈업되어 화면에 등장하는 이 익명의 인터뷰 참여자들은 ‘나는 잘 모른다’, ‘일본은 대외 침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등 무지하거나 무책임한 발언들을 쏟아낸다. 작가는 인터뷰 내용 가운데 특히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묵음 및 검은 띠로 처리하여 보여주는데, 이는 왜곡된 기억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종용하는 작가의 비판적 태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대부분의 인터뷰 참여자들이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전쟁 후 출생 세대임을 감안했을 때,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된 집단 기억의 필연적 불완전함을 암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고이즈미의 작품들이 전시되었을 때 한국의 일부 대중과 대다수의 언론은 놀랍게도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작품들이 전쟁 기억에 대한 일본인의 무지함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 불쾌함을 토로한 것이다.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서울 도심에 있는 미술관에서 전쟁에 무지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다니 믿기 힘들다’는 류의 비평을 쏟아냈다. 이는 한국,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전쟁 및 일본의 식민 지배 기억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위의 세 작가들과 여러 동시대 작가들은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하여 역사의 이면에 존재해온 기억에 주목할 것을, 그리고 그 기억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새롭게 질문할 것을 주문한다. 이는 기억학의 대가인 피에르 노라 (Pierre Nora)의 ‘기억은 영속적으로 실제적인 현상이며, 우리를 영원한 현재로 묶는 끈’이라는 언급을 상기시킨다. 사후 세대 작가들의 작품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작동시키려는 시도를 담고 있으며, 이는 결국 현재에 대한 발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현재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에, 그들이 작품을 통해 구성하는 기억 또한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이 ‘현재진행형의 기억’은 서두의 질문, 즉 간접 경험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시대의 질문에 대한 작가들의 답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재성의 가치는 기억 담론이 국제 미술계는 물론 인문·사회과학 학계의 지속적인 화두로 자리매김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글。 장나윤

영국 런던의 코톨트 인스티튜트 미술사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 다. 연세대학교에서 의류환경학을 전공, 경영학을 부전공했으 며,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런던의 유니 버시티 칼리지에서 미술사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2014년부터 는 줄리안 스탈라브라스 교수의 지도 아래 동아시아 지역의 동 시대 사진, 영상 작품에 나타나는 국가 단위의 집단 기억에 대 해 연구하고 있다.

사진。 노순택

대한민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대표작으로는 <분단의 향기>, <얄읏한 공>, <Red House>가 있다.

장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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