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서 벗어나기

 

수년 전 미술평론가들이 모여 ‘비평’에 대해 논의한 가장 시급한 의제는 다음과 같다. 미궁에 빠진 미술비평. 일종의 불안과 위기감이 교차하는 이 수사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비평의 위기’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위기’라는 유령이 여전히 비평계에서 배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비평의 위기인가? 동시대 비평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그 답은 간단하다. 비평의 생태계는 파괴되었고, 비평가들은 고립된 채 각개전투 중이며, 텍스트는 이론 과잉에 빠졌거나 저널리즘 평론처럼 황폐하고, 그래서 아무도 비평을 읽지 않는다. 무엇보다 미술 시스템 안에서 비평은 더 이상 어떤 유의미 기제로도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비평이 유효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젊은 비평가들의 글은 점점 더 세련되어지고 이론적 이해는 한층 깊어 보이며 아직 비평을 기다리는 진지한 독자들이 조금은 남아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종의 불안으로 점철되어 이론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비평가로 온전히 생존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 안에서, 그 지루한 담론의 공회전 안에서 소모되고 동력을 상실하는 듯 보인다.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면서 비평은 스스로의 위기를 표면화하고 있다. 비평은 이제 그 기한 만료를 선언해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필자들이 유입되고 비평적 실천들은 지속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비평의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다른 질문들이 이어진다. 동시대 미술계에서 비평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비평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새로운 실천은 이전과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여전히 비평을 해야 하는가? 기획은 동시대 시간성을 축으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실천의 주체들을 모아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적어도 그 질문들을 가시화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김정현, 권시우, 안진국, 이기원, 홍태림은 각각 그들의 비평적 실천을 통해 여기에 반응하고 관점을 드러내며 유효한 가능성을 고민하였다. 필연적인 실패로 귀결될 비평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거나(안진국) 비평 너머에 잠재된 새로운 이미지를 포착하고(이기원), 혹은 다양하게 변주하며 확장될 비평의 가능성을 모색(김정현)하면서 말이다. 유닛과 동기화된 채 표면의 안팎에서 주체의 위치를 가늠하는 비평의 시점(권시우)은 어떤가? 그리고 미술계에 드리운 짙은 암운 앞에서 비평은 침묵이 아니라 하나의 외침이라고 말하는 것은(홍태림).

한때 대중과 예술의 매개자로, 취향의 감식가로, 비평-권력을 독점한 엘리트로 기능했던 ‘비평의 시대’는 오래 전에 막을 내렸다. 아서 단토 같은 철학적 비평가나 다양한 후기구조주의 이론을 넘나들었던 <옥토버> 계열의 비평가 모델도 이제는 한 세기 전의 일이다. 아름다움에 축배를 들거나 정동성을 긍정하거나 관계적 유토피아에 지지를 보내는 전략에 다시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까? 아니면 모리스 블랑쇼의 말처럼 비평은 태생부터 “사라짐 자체가 비평의 존재 양식”인 것은 아닌가? 전시장에는 여러 비평가들이 텍스트로 직조한 한 권의 책이 놓여있다. 관객들이 여기서 책을 읽거나 복사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는데, 생각해보면 요즘과 같은 시기에 비평문 하나를 읽기 위해 전시장에 향하는 관객을 상상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사실 미궁의 가장 깊은 심연에는 이러한 무관심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미술비평은 미궁에 빠져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전시장에 들어와 테세우스가 붉은 실로 그랬던 것처럼 텍스트들을 실로 엮어 그 출구를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평이 다시 우리를 설레게 만들 수 있을까?

이양헌은 미술사 및 미술이론을 전공했고,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특히, 비평적 수행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포스트시네마담론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팀 MMM에 가담하고 있으며, ‘동시대성’을주제로 논문을 진행 중이다. <비평실천>(2017) 등을기획했다. heoni87@hanmail.net

이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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