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같은 도시의 더 작은 한 조각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십대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내가 사는 작은 섬을 떠나 큰 세계를 탐험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처음으로 내가 자란 집을 떠난 뒤엔 숱한 이사의 연속이었다. 매해 이사를 다닌 건 물론이고, 2년에 한 번 꼴로는 도시를, 3년에 한 번 꼴로는 나라를 옮겨 다녔다. 여전히 내년 이맘 때 내가 어디에 살고 있을지 모르는 처지이다. 이런 나에게 정착이란 아직까지 멀기만한 꿈이지만, 내가 존재한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내가 살던 곳, 혹은 머물렀거나 지나쳤던 공간들에 대해 기록해 두고자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 그리고 처음 이사를 오자마자 사랑하게 된 이 도시, 워싱턴 디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싶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디씨는, 지도에서 보면 왼쪽 아래 변이 뜯겨나간 듯 마름모 꼴을 하고,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사이의 포토맥 강을 따라 살며시 놓여 있다.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는 이 특별한 도시는, 국회의사당, 백악관, 각종 정부 부처들과 외국 대사관들로 가득 차 있다. 거주민으로 등록된 인구는 70만 명 정도라는데, 그에 비해 몹시 붐빈다. 많은 사람들이 근교에 살며 출퇴근을 하는 데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연간 2천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워싱턴 디씨의 교통체증은 악명이 높아, 미국에서 두 번째로 교통이 혼잡한 도시로 꼽힌다.
끔찍한 교통 체증, 그리고 비싼 물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으로 이사올 때 사실 좀 들떠 있었다. '서울'에 살게 되는 설레임이 여전한 나는 아직도 촌티를 벗지 못한 것인지. 그런데, 내가 이곳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엔 큰 변화가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할 누군가가 이 디씨로 이사를 온 것이다. 도날드 트럼프! 그는 그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경선 때부터 분명히 눈에 띄는 후보였다.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더 적은 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트럼프는 티비에 자주 등장하며 가십거리를 많이 생산해내는 부자로 이미 유명인이었지만, 정치인과 언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 생태계에서는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다. 아마 그 점이 기존 정치에 지쳐 오랜 세월 변화를 갈망해 오던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갔던 것으로 보인다. 우습게도, 트럼프 자신이 여러 번의 경영 실패, 노동 착취, 파산, 소송 등으로 얼룩진 부패한 자본주의의 상징같은 존재라는 점이 커다란 모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가 정치인보다는 연예인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부터 꾸준히 보여준 숱한 부적절한 언행들과 행동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그가 나라 전체를 대표하고 이끌어갈 자질이 있는지 걱정스러워 하고 있다. 이곳의 많은 사람들은 현상황을 그들이 믿고 있던 가치체계가 붕괴되는 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나는 의사로서, 의료보험이나 직업을 잃게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환자들을 지켜보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하물며 나 또한 “무슬림 금지”라 불리는 트럼프의 행정 명령 이후, 언제 미국이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안게 되었다.
요즈음 워싱턴 디씨를 말할 때 대통령 선거가 있던 지난 가을에 시작된 충격과 공황, 또 좌절을 빼놓기란 불가능하다. 국민 투표로써 수도에 입성하게 된 사람이, 정작 워싱턴 디씨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적은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트럼프는 여기에서 고작 4.1%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으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 안심이 되면서도, 대체 정치가, 공무원들과 언론인들로 가득한 이 도시가, 어째서 미국의 전체적인 의견과는 전혀 동떨어진 의견을 내놓고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일견 모든 인종과 모든 계층이 섞여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나라가 어떻게, 균일하지 않고 섞이지도 않는 다양한 집단들에 기반해 이루어져 있는지, 얼마나 많은 아이러니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에 대해서는, 워싱턴 디씨의 독특한 인구 구성과 역사에서도 조금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워싱턴 디씨는 한때 “초콜렛 도시”로 불릴만큼, 흑인이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대표적인 도시로서 미국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했다. “초콜렛 도시?” 이 곳에 이사 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알쏭 달쏭 했다. '흑인들이 어디에 있다는 거지?' 이 천진한 의문은, 흑인 인구가 고작 3%에 불과한 조지타운이란 동네에 살게 된 나에게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워싱턴 디씨의 흑인 인구는 그 비율이 70%에 이르렀던 1980년 무렵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흑인 인구 비율은 50%나 된다. 도시의 북서쪽 구석에 있는 조지타운에서는 흑인을 많이 볼 수 없는 대신, 도시의 반대편, 도시의 남동쪽에 자리한 아나코스티아란 동네엔, 흑인 인구가 92%나 된다. 조지타운과 위치만 반대가 아니라 인종 구성도 정반대인 것이다.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미국을 이루는 이 두 큰 인종 집단의 사람들은 여전히 가상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산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구의 변화는 더욱 흥미롭다. 워싱턴 디씨는 백인 인구의 유입이 인구 증가를 견인하는 미국에서 몇 안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고급 주택가가 자리한 북서쪽은 여전히 깨끗하고, 살기 좋고, 부동산 가격은 높게 매겨져 있다. 한 때 흉물스럽던 도심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며 디씨의 원주민들의 더 싼 집을 찾아 도시의 근교로 흩어지는 동안, 도시의 새 주인들은 피트니스 스튜디오와 젠스타일 가든을 갖춘 멋진 아파트들을 채워간다. 하지만 아나코스티아에는 여전히 쓰레기로 가득한 버려진 아파트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도시의 동서를 나누던 경계는 시간이 지나며 흐려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며, 단지 한쪽으로 밀려나고 있을 뿐이다.
가까이 살며 들여다본 이 도시는, 자유와 평등, 다양성을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의 수도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숱한 경계선들 - 동과 서를 나누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 인종을 나누는 경계선, 경제적 계층을 나누는 경계선들 - 로 조각 조각 나뉘어 있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됐지만, 내가 사랑하는 곳이 과연 워싱턴 디씨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사는 조그마한 동네 조지타운인지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다.
         <워싱턴 포스트>의 한 칼럼에서는, 흑인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라떼 도시”라고 표현했다. 워싱턴 디씨의 초콜렛 색은 연해지고 있는 걸까? 맞다. 하지만 이 양상은 서로 다른 색이 완전히 합쳐져 그 중간의 어느 색을 만든 “라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각자의 색을 유지하지만 서로 잘 뒤섞인 '마블'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이것은 차라리, 반반으로 선명히 조각 난 '하프문 쿠키'의 모양에 가깝다. 워싱턴 디씨는 독특하지만, 조각 조각 분열한 미국의 한 단면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유일하지는 않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찾든, 이처럼 섞이지 못한 조각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워싱턴 디씨라는 도시 자체가 전체의 미국에 섞여 들어가지 않는 독립적인 한 조각으로 존재해, 미국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때로는, 고작 4.1%의 표를 얻은 대통령을 맞이하곤 하는 것이다.
작금의 정치적 상황 탓에, 그곳이 미국이건 한국이건, 또는 지구의 어느 곳이건, 가치가 무너지고 정체성의 위기를 맞는 혼란에 빠져 있다. 이 혼란 속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정말로 다양성의 사회를 살고 있는가?' 마치 내가 이 도시 전체가 아닌, 다른 부분들과 너무나 다른 한 조각 안에 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처럼, 아마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체성을 쉽게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나, 그리고 서로 다른 당신들은 서로 섞이고 있을까? 마치 마블 혹은 라떼처럼? 아니면 우린 보이지 않는 벽을 사방에 두고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단지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을 뿐일까.

이소영 조지타운대학병원 정신과 의사


글쓴이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과학과 의학의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하는 일을 좋아해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서 일하며, 이따금 매체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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