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데우는 시간

박주애 ◦ 현장On the Scene ◦ 장지에 아크릴 ◦ 162.2x672.6cm ◦ 2015

 

박주애(Park Ju Ae)는 데생 선 긋기 연습하던 때부터 작가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방금 손으로 꼽아봤더니 거의 13년 정도를 함께한 친구이다. (짧아 보이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의 약 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인터뷰 대상자로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고심 끝에 인터뷰 약속을 잡았지만 오랜만에(사실 그래봤자 약 열흘만에) 만난 친구와 피자와 치킨을 먹다보니 별 소득 없는 수다만 떨고서 끝이 나버렸다. 그렇게 야심찬 첫 번째 인터뷰는 실패했다. 친구와 작업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결국 살짝 쑥스러운 기자 역할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이제까지 보고 경험해온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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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봐온 그는 여러모로 정말 한결같다. 고등학생 때에도 뜻밖의 공모전에 지원하거나 갑자기 방송에 출연을 한다던지 소위 공부 말고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항상 선생님들로부터 그 시간과 노력을 공부에 더 쏟아야 한다는 주의를 받는 학생이기도 했다. 대학생 땐 기초소묘 시간에 칸딘스키의 <점,선,면>을 읽은 뒤 서평을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는 ‘김점선 작가’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써왔다. 교수님이 알려준 책과는 다른 것을 읽었음을 일러주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대학생활 내내 같이 수업을 듣는 나에게 자신의 학번을 당연스럽게 물어보았다. 항상 그것을 외우지 못했고 나는 또 매번 알려줬다. 계속 적어 내려가면 공개 험담이 될 것 같아 그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접어두기로 하고, 사실 그의 작품이 나에게 더욱 재미있는 이유는 그의 성격과 경험하는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수능란한 사람이 있는 반면, 감추고 싶어도 감정이 드러나 들키고 마는 사람이 있다. 박주애는 후자에 속한다. 사랑에 빠지면 그 감정이 뿜어져 나오고, 누군가와 다투게 되면 그 혼란스러움 또한 화면에 나타난다. 아마 케이팝 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간혹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에게 “평상시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하는 목소리가 비슷해야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아마 박주애는 그 두 가지가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 박주애 답다.’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 이질감이 들면서도 익숙한 듯한, 기묘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실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그림을 그린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저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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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애의 초기 작업들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는 약 2년에 한번은 이사를 했다. 집을 비우고 다시 채울 때 쯤 이사를 하고 또 다시 비우는 행위를 반복했다. 새로 이사할 집에 혹은 자신이 이사하며 남겨둔 흔적들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졌다. 2012년부터 그의 화면에서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집, 그리고 허물어져가는 집과 터들이 주를 이룬다. 화면에 인물이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집과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채 두둥실 떠다니는 사물들 또는 허물어져가는 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통해 그 곳에 머물렀던 사람을 유추할 수 있게끔 한다. 이 시리즈 중에서 유난히 작가의 감정이 드러나는 작품은 <심동헌-마음이 떠오르는 집>이다. 도로 확장공사로 사라져버린 기억속의 외할머니의 집 그리고 변화로 인한 낯선 감정을 보여준다.나 또한 어린 시절 자라온 외할머니집이 허물어지고 상가로 신축되는 공사현장을 보면서 작가가 말한 ‘누군가가 나의 추억을 수채구멍에 콸콸 버리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하지만 더욱 허무한 것은 벌써 그 짧은 시간에 재건축되어 원룸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어느 순간부터는 추억에 대한 상실감마저 잊고 지낸다는 것이다. 현재도 제주에는 이곳저곳에 건물을 짓는 공사현장들이 많다. 처음에는 시끄럽고 거슬리던 공사현장에서 나오는 소음은 더 이상 새삼스럽거나 놀랍지 않으며 의식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화 되어있다.박주애의 화면에서 보이는 삶의 터가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포크레인, 철골 구조물, 아시바 등은 개발이 한창인 제주의 새로운 풍경이며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에 대한 흔적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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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인전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구조물 보다는 반인반수의 형상들이 주로 나타난다. 또한 알, 산란, 모유 등의 키워드들을 살펴보면 이는 ‘어머니’라는 한 가지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주애의 어머니 역시 작가로 2010년에는 모녀전을 열기도 했으며, 그는 어머니와 자신이 아직까지도 절단되지 못한 투명한 연결선을 서로 잡아당기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가끔은 친구처럼 남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를 하다가도 의견충돌로 무지막지하게 싸우기도 하며 가끔은 어머니라는 혹은 자식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하기도 한다. 같은 작업실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하우스 메이트가 되기도, 함께 일을 하는 나름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어머니와 생업을 위한 하루일과를 마치고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이 지칠 때쯤엔 목욕탕에 간다고 한다. 따뜻한 탕 안에 앉아있으면 복잡한 감정들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고 그 또한 다시 작품으로 풀어나갔다. <피를 데우는 시간>에서는 마치 육지에서 산란을 마치고 다시 물로 돌아가는 거북이와 흡사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나체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생긴 하루의 고단함을 데워진 물에 우려내 흘려보내고 있다. 고단함과 스트레스로 차가워진 피를 다시 데우는 시간, 그리고 다시 생업으로 그리고 작품으로 뛰어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인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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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십대부터 줄곧 우리는 ‘제주도’라는 섬에서 벗어날 궁리를 항상 해왔다. 그땐 촌스럽지만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을 진리처럼 여겼고, 섬은 한계가 많으므로 무조건 떠나야하는 공간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바다, 억새로 가득한 오름, 계절별로 절경을 이루는 한라산 등은 아쉽게도 한창 혈기왕성할 젊은이들에게는 벗어나야할 대상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상황에서도 그에게는 마냥 이 곳을 벗어날 수 없는 나름의 고민들이 있었다. 작가는 어머니와 남동생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러한 고민은 차곡히 쌓여 최근 선보인 <도망을 갈망하는 여자 1>에서 화면 중앙의 인물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을 정도로 강력하게 표출됐다. 다른 곳으로의 도망을 갈망하지만 정작 도망가지 않으며, 가족으로부터 영감을 받으면서도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 또한 가족에 의한 것으로, 그 모순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을 보여준다. 사실 ‘제주’라는 곳에서의 작업과 활동에 대해 제약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이 다만 요새 제주가 ‘힙스터, 카페, 중국 관광객이 많은’ 새로운 삼다도가 되어서 만은 아니다. 가장 자신다운 것을 탐색하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제주의 모티프들을 통해 그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색하고 있다. 또 다시 이러한 것이 언젠가 제한이 되고 다시 장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제약일 것과 좋은 것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며 그럴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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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아트스페이스·씨(Artspace·C)에서의 개인전을 마친 그는 자신의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작가는 뉴욕 나르스 파운데이션(NARS foundation) 레지던시에 함께 하게 되어 4월 뉴욕으로 떠난다. 항상 주저하던 그는 좋은 기회를 만나 용기를 내었고 새로운 환경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벗어나기’가 아닌 ‘넓혀가기’를 택한 29살의 작가는 새로운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떠한 변화를 가지고 올까. 그가 들고 올 작품들 그리고 가져 올 이야기보따리에 즐거워질 일만 남았다.

 

박주애 ◦ 피를 데우는 시간 ◦ Time to Warm the blood ◦ 장지에 아크릴 ◦ 130x224cm ◦ 2016

 

글。 이승미

1989년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림이 좋아서 미대에 갔고 공 부를 좋아한다고 착각해서 대학원에 갔다. 현재 제주에서 두 번째 직장을 얻었고 엑셀문서를 다듬고 문서 정리를 좋아하는 탓에 진정한 ‘행정승미’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획자, 비평가로 도 활동 중이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 을 아직 만들지는 못해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tmdal2629@ gmail.com

그림。 박주애

1989년 제주 출생. 그림 그리는 부모님과 그림 그리는 남동생 사이에서 새삼스럽지 않게 그림 그리고 있다. 나고 자란 제주의 풍경을 기반으로 이런저런 호기심을 다루고 있다. 현재는 뉴욕 레지던시에 참여하여 뉴욕 멘하탄을 떠도는 중 이다. 비록 떠 난지 열흘만에 고기국수가 먹고 싶지만 그럭저럭 적응중이다. parkjuyea@gmail.com

 
이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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