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김국희

제주에서 처음 맞이했던 아침이 생각난다. 늘 같았다. 넓은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저절로 눈 뜨고,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켠 다음, 덮고 잤던 이불을 그대로 들고 마당으로 나가 빨랫줄에 널었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내 고향 한옥에서도 비슷했다. 안과 밖, 건물과 자연의 경계가 흐릿한 집만의 특징이다. 언제고 자연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살아 있는 자연을 매 순간 느끼며 사는 것은 늘 낭만적이진 않다. 어느 땐, 꽤 무섭거나 위험하다고까지 생각된다. 끝없이 까만 밤, 그 밤사이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세찬 바람 소리. 대체 어떻게 들어왔을지 모르겠는 수많은 벌레들, 몰아치고 들이치는 비 앞에서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커진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시간도 다르게 읽힌다.

움직이는 자연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 즉, 내 옆의 자연이 뭘 하는지 시시때때로 모두 안다는 것. 자연의 존재를 늘 각성하며 깨닫는 것. 그래서 자연을 두려워하는 것. 그러므로 함께 조화롭게 서로를 즐기는 것. 이는 놀라운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그 순간들을 흠뻑, 제대로 발견하며 살고 있을 때 나는 내 삶을 충분히 돌보며 살고 있다 느낀다.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지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역시 많아진다.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마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과 자주 만난다. 명상을 오래 한 친구가 말했던,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맙고 고맙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고 뭉개고 펼치고 재단하고 깎고 다듬는데 선수인 똑똑하고 차가운 도시현대인(?) 모드일 때와는 아주 다르다. 그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분리하기 위한, 단단하며 두껍고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들 안에서는 더더욱 경험하기 힘든 불가능한 순간들이다.

그래서 경계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하고 싶다. 안과 밖의 경계. 한옥의 문살 사이 종이 한 장. 그 종이 한 장 만큼의 경계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가볍고 얇지만 할 일을 할 만큼하고 그만, 닳아버리는.

비효율과 무용. 무가치하거나 잉여스러운 시간에,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곳에서, 조금씩 내 할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 자연은 결코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의 뜻처럼 자연스럽지 않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매우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갑자기 잡아먹히고 느닷없이 비가 내리는가 하면 갑자기, 모든 게 변해 있다. 심지어 새들과 땅속 생물들 때문에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하고 가끔은 콩 심은 데서 팥이 나기도 한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전환, 혹은 과도한 비약으로 읽힐 수 있으나, 나는 급히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은 괜찮다. 인간이므로, 아주 자연스럽다. 잘못하지 않았다. 잘못한 것은 주로 인간적인 것을 부정하기 위한 수법이나 장치들이다. 만약 주변의 모든 것들이 계획대로 되거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다면 서늘한 의심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쟁취”보단 “어쩌다 보니 됐어” 쪽의 세상으로 넘어가 보자. 비논리적이고 말이 안 되는 세상에도 일종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하면서 늘 내게 하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괜찮으니 조금 더 자연스러워져도 좋습니다.

 

김국희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았다. 이야기를 발굴하는데 관심이 많으며 삶과 작업의 루틴에 대해 고민한다. 가끔 글을 쓰고, 주로 재미난 사건을 도모하는데 시간을 쓴다. 요즘은 설치나 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비주얼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큐레이팅 서점이자 아티스트 레지던스인 “책+방 서사라”와, 아티스트 에이전시 겸 작업의 일환인 “페이퍼컴퍼니”를 남편인 이윤작가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김국희

김국희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았다. 이야기를 발굴하는데 관심이 많으며 삶과 작업의 루틴에 대해 고민한다. 가끔 글을 쓰고, 주로 재미난 사건을 도모하는데 시간을 쓴다. 요즘은 설치나 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비주얼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큐레이팅 서점이자 아티스트 레지던스인 “책+방 서사라”와, 아티스트 에이전시 겸 작업의 일환인 “페이퍼컴퍼니”를 남편인 이윤작가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paintereeyoon@naver.com

Kim Kook Hee

Kim Kook Hee was born in Jangheung, South Jeolla Province, and lives in Seoul and Jeju. She is interested in finding stories and thinks about the routines of life and work. She sometimes writes but spends her time mainly on plotting fun projects, and is working on installations and visual artwork these days. With her husband, Lee Yun, she is running Book+Room Seosara, a curated bookstore and an artist residency, and Paper Company, an artist residency and a studio.
Painteree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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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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