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아시아 : 동아시아에 있어서 공간의 실천

에가미씨는 2011년부터 동아시아의 다양한 예술, 사회운동의 현장과 공간을 방문하여, 그 디테일을 기록해왔다. 대규모의 재개발, 불평등의 확대와 같은 문제들 속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이 만든 공간으로부터 과연 어떠한 활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사상, 실천, 감정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열린 일본의 미래를 에가미씨가 이야기 한다.

 

공간을 만든다는 행위

      저는 지금 후쿠오카에 살고 있습니다만, 2011년 즈음, 대학생활을 보냈던 도쿄로 돌아갈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동일본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무의식적으로 도쿄를, 그리고 동쪽 만을 보고 있던 시선이 단번에 180도 바뀌어, 서아시아로 관심이 향하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각지의 재미있는 장소들을 방문해보게 되었고, 지인들도 생겼고, 자주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왜 그러한 활동을 시작하고자 생각했는지 말해 보겠습니다. 저는 원래 대학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시나 건축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요.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공간을 우리들이 과연 어떻게 지각하고, 어떻게 움직여 가는가 하는 점들에 대하여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데모에도 관심이 생겨, 일본각지의 데모에 관련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에 ‘G8서미트’라고 불리던 주요 선진국 8개국의 수뇌회의가 홋카이도에서 열렸는데,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몰려들어, 캠프를 치고 반대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미디어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지만요. 그때 봤던 한 광경이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경찰이 데모참가자를 일정 범위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한 여성이 제자리에 눌러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곳만을 경찰들이 포위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즉, 그 여성이 계속해서 한 위치에 앉아 있겠다는 선택을 함으로써, 또 다른 공간이 태어난 셈입니다.

 그 모습으로부터, “혹시 인간이 앉거나 서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체나 행위를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 혹은 타자와의 관계를 재구축함으로써 공간의 성질을 바꿔가는 것에 대하여 흥미가 생겼고, 제 마음대로 ‘공간실천’ 이라고 부르며, 스스로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캠프라는 공간은 실제로 작은 사회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사회는 사람이, 그리고 신체가 모여서 만들어져 가는 것임을 경험했다.

 

타자와의 관계와 공간

 앞서 말한 ‘G8’ 데모의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만, 2007년 독일에서도 서미트가 개최되었고, 그때도 회의장으로부터 5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캠프가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 만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1주일간 함께 먹고 자며 매일 데모를 하거나 하였습니다. 그 캠프장에는 밥을 먹는 장소도, 샤워장도,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마을과 같은 곳이 생겨난 것입니다. 캠프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작은 사회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작은 사회는 사람이 모이는 것으로, 신체들이 모이는 것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바로 그곳에서 경험했습니다. 이것 또한 장소라던가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캠프를 조성했던 많은 사람들은 소위 ‘아나키스트’라고 불리는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저는 그때까지 아나키스트들을 만난 적도 없었으며, 별로 흥미도 없었습니다. 아나키즘은 일본어로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지만, 본디 그리스어로는 지배나 통치를 의미하는 ‘arkhos’를 ‘an’이라는 접두어가 부정하는 형태로, 사람을 지배하지 않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여 사회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립적 형태로 자주적으로 모여, 누구라도 평등하게 그리고 서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함께 도우며, 국경을 넘어선 관계, 작은 집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삶이나 정치의 본연적 형태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것. 그들은 그러한 태도를 체현하고 있었습니다.

 작가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예시적 정치’라는 개념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열망하는 것을 체현한다면, 이미 성공하고 있다. 즉, 당신의 직접행동이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에 기반하고, 창조력을 갖추고 있다면, 세계의 한 구석에서 그것들의 가치는 이미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직접행동은 단순히 어떤 것을 변혁하기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머무를 곳을 정해, 당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기 위한 홈=본거지가 된다.’ 저는 캠프를 통해서 그 개념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본디 부족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의 출발점은, 어떤 하나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정치적인 행동이지 않은가?

 

일시적으로 자립한 장소

앞서 말한 일련의 것들을 유럽에서 보고, 아시아로 돌아온 후, 과연 아시아에도 그러한 것들이 있는지 여러 부분에서 알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저는 당시 후쿠오카의 일본어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를 그만두고 아시아로의 여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방문해보니 의외로 다양한 활동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점은, 그들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칭하지도 않았고, 사상으로서의 아나키즘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고 있는 활동들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는 점입니다. ‘하킴 베이’라는 미국의아나키스트 시인이 TAZ(Temporary Autonomous Zone, 일시적 자립지역)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자립된 자신들의 공간을 되찾는 운동을 고민하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러한움직임이 실제로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는 매년 반환기념일인 7월 1일에 수 십 만 명이 참가하는 거대한 행진이 있습니다. 그날 밤에 여러 명의 뮤지션, 운동가들은 단지 행진만으로 끝내는 것을 자신들은 납득할 수 없다며 길 위에서 음악회를 개최했습니다. 무허가였습니다만 경찰들이 음악회의 관객들과 잠시 밀고 당기고 하는 사이에 연주는 끝이 났고, 연주를 하던 이들은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한편, 대만에서는 푸코마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 가까이의 해안선 재개발이 정부와 리조트 회사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만, 그것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 총통부 앞에서 일시적인 점거를 통한 데모와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공장폐쇄에 반대하는 활동을 목격했습니다. ‘콜트콜텍’이라는 한국의 기타회사가, 비용절감을 이유로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옮기겠다고 하여,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기타제조자들을 해고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공장 사람들은 “우리들이 일하는 장소를 지키자”라며 공장을 점거하고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심야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공장 옆에 텐트를 세우고, 계속 그곳에서 머물면서 저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운동의 재미있는 점은,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하러 온다는 점입니다. 소위 활동가라고 불리는 이들 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나 뮤지션도 참가하고, 평범한 아주머니가 쌀을 가져오기도 하는 등, 지원의 층이 상당히 두터웠습니다. 이렇듯 도시의 어떤 공간을 점거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명하는 ‘장’으로서 바꾸어가는 저항의 형태는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기에 그들의 공간 활용과 전술에 상당히 흥미가 생겼습니다.

 

‘다른 몸짓’이 가능한 공간

 이렇듯 일시적인 장소를 만드는 활동이 있는가 하면, 지속적으로 자신의 장소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공간을 한 군데 확보해 둔다면, 외부 사회와 기존과는 다른 관계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공유해서, 약간은 ‘다른 몸짓’이 가능한 장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장소가 일상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도시공간의 다양성, 그리고 사회의 다양성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장소들의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2011년 뉴욕을 기점으로 ‘오큐파이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만, 특히 홍콩에서 열린 ‘오큐파이 센트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데, 2012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약 1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 운동에 참가하고 있던 멤버들은 점거하고 있던 장소가 사라진 다음에 스스로 ‘德昌利(Tak Cheong Lane)’라는 20평방미터 정도의 작은 커뮤니티스페이스를 열었습니다. 홍콩은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공간을 임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만, 당시에는 후원자들의 금전적 지원으로 가능했습니다. 당초에는 고물상을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운영이 힘들다고 판단되어 포기하고 현재는 단지 모이거나, 밥을 먹거나, 회의를 하거나, 또는 이민자들의 아이들에게 광동어를 가르치거나 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이 장소에 모두 우르르 모여, 여러 가지 ‘행동’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홍콩에는 창고의 일각을 뮤지션나 예술가가 서로 공유하며 살거나, 옥상을 목공소나 농지로 만드는 등 높은 임대료를 회피하기 위해서 다양한 공간에 자신의 삶이나 활동을 만들어가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래 옥상에는 저소득자들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 있거나, 가족용 채소밭이 있는 등 이러한 사용방식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이 다양한 활동이나 네트워크의 기점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일 것입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가족’

 지속적인 장소가 가능하면, 항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모이고 나면, 동료라고 할까요? 무리에 가까운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갑니다. 저는 그러한 과정들을 직접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인류학에는 ‘민족형성성(民族形成性)’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소수민족에 관하여 ‘혈연관계나 친족관계가 그룹의 동일성을 만든다’라는 식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그렇지만 그러한 혈연관계나 친족관계의 출발점은 애초에 무엇이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마존에는 잉카제국에서 이탈하여 작은 부족을 만들어 살아가던 장소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에는 매우 평화적인 부족도 있었던 반면, 그 30킬로 앞에는 언제나 인근 마을과 전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듯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이것에 대해서 ‘원래의 정치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분화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가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가설이 옳은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시아에 가서 각각의 장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혹여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만에서 아쿤(王庚)이라는 상당히 신기한 남성을 만났는데, 그는 20년 이상을 자신의 집이 없는 상태입니다. 대만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걸어서 돌아다니며, 발 길이 닿은 곳곳에서 버려진 배라던가, 굴뚝의 아래 등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살아왔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양한 장소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둥지를 만드는 트는 듯 살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그의 주변에는 예술가나 뮤지션,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함께 살거나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가족’은 살아가는 방법이나 가치관을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에 그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민족형성성’이라는 개념에는, 그들이 말하는 ‘가족’을 생각해 보기 위한 힌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렇게 모이고 서로가 왕래하면서 친구끼리의 네트워크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섞여갑니다. 저의 주변에도, 저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재미있는 곳이 있다면 가보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서로가 사랑에 빠져 사귀거나, 결혼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최근 3년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 태국인과 일본인처럼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그렇게 ‘가족’은 넓어져 가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장소’를 만들다.

 이러한 아시아에 있어서의 네트워크를 일본에서 만들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도쿄의 코엔지(高円寺)에 있는 ‘아마추어의 반란(시로우토노란, 素人の乱)’이라는 재활용샵을 운영하고 있는 마츠모토 하지메(松本哉)씨입니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에서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에 ‘원자력발전소를 멈추는 데모(原発をやめるデモ)’라고 하는 데모를 주최하여, 이미 아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최근 2~3년간 지속적으로 아시아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가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때문에 아시아를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날의 국제정세와 일본사회의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만으로 무언가 해보자라던가 미국이나 유럽만을 바라보는 것은 약간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시아의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 ‘동아시아 유상무상회의(East Asia Multitude Meeting)’라는 모임을 열어보자는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매년 1회, 자신들만의 장소나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모아서 마시며 서로 이야기하는 장을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의 가격이 올라서 곤란하다’ 등 별로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여길 수 없는 술의 힘으로 인하여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공유되고, 그로부터 실제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장소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단지 ‘즐거운 장소를 만들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가깝고 또한 큰 테마인 재개발이나 불평등의 문제를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대안적인 또 다른 생각, 또 다른 삶의 방식, 또 다른 가치관이라는 것을 뒤쫓으며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작금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자신들만의 감각을 공유하는 대화들 속에서 나름의 가치관이 형성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과 신체적 감각, 감정이나 마음들이 공유됨을 통해서 혹시라도 국경이나 언어라는 장벽을 넘어선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에가미 켄이치로(江上賢一郎)

1980년, 후쿠오카현 출신. 독립연구가, 사진가. 와세다대학 교육학부 졸업. 런던 골드스미스 문화인류학 석사. 영국유학 중 예술과 사회운동에 관한 연구를 개시. 2011년부터는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리서치와 네트워크 만들기에 착수했다

 

에가미 켄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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