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보물지도 : 시안

중국 동쪽 중앙부, 부산에서 비행기로 2시간 30분 거리에 시안(西安)이 있다. 시안은 한나라 이후 장안(長安)이란 이름으로 1100여 년 동안 무려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시안이라는 도시를 말하면 열에 열 명은 진시왕의 병마용(兵马俑)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실제 시안을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일명 회족거리(回民街)와 종루 주변, 그리고 병마용을 구경하기 위해 시안을 방문하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시대는 바야흐로 배낭을 메고 자신만의 여행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는 이제 낮설지 않은 풍경이며 여행을 재대로 즐길 줄 아는 방법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나라는 북경, 상해 등 대도시 정도가 짧은 영어가 소통되고 그것 또한 수월하지 않은 나라가 중국이다. 하물며 시안은 영어로 배낭을 메고 돌아다닌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해서 그런지 이곳 저곳에서 하나투어 깃발이 자주 보인다. 단체 관광객들이다. 가끔은 그 뒤를 몰래 따라가서 유적지 설명들을 귀 동냥하는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중국인 척해야 한다! 

나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과 수년 간 교류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시안 출신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유인즉, 내가 처음 친구의 인연을 맺은 사람이 시안 출신이었고 그가 소개해준 많은 예술가들이 시안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역 출신들끼리 똘똘 뭉쳐 생활해 나가며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중국인들의 특징이다. 때문에 ‘꽌시(관계)’는 매우 중요한 중국의 키워드이다. 소위 베이징 생활이 만만치 않기에 그들이 살아가는 중요한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겠고 어딜가나 고향을 묻는 일이 많다. 그 가운데 리더격인 친구가 몇 년 전 시안미술관 관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잦은 시안 출장이 이어졌고 나 또한 방문이 빈번했으며, 그곳에서의 행동 반경이 넓어졌다. 어느덧 혼자 시안을 활보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보물지도

       역사 공부를 잠깐 해 볼까? 시안은 주나라 때 처음 수도로 지정되어 그 이후 전한부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13개 왕조가 약 1100년 동안 수도 및 근거지로 삼았던 고도(古都)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명부에 수록된 곳만 6곳, 아직 발굴도 되지 않은 진시왕릉묘(60만평),그렇다면 진시왕 병마용은 진시왕묘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진시왕묘는 아직 채 발굴되지 않았다. 추후 발굴 기술이 더 발달되었을 때 한다는 의지다. 우리의 개발 방식과 차이점을 볼 수 있으며 후대에게 물려주는 미덕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왠지 부러운 마음이다.

 병마용은 진시왕을 호위하는 주변의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그 규모가 축구장 만한 크기의 현장이7개의 전시실로 공개 되고 있다. 실로 규모에 놀라고 관광객 인파에 놀란다. 여지없이 하나투어 깃발이 자주 등장한다. 그 뒤를 따르면 유창한 한국어로 설명을 귀 동냥 할 수 있다. 병마용은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땅 속에서 인형 조각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병마용갱의 발굴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리 오래된 시간은 아니다. 그 동안 모르고 있었다는것도 놀랄 만한 일이다. 지금도 중국은 알려지지 않은 보물들과 이야기들이 곳곳에 수 없이 있을 테다.

 또한 장안이 실크로드와 불교의 진원지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장안이라 불렀던 이유가 다 있을 터, 그 화려했던 불교 문화가 인도나 티벳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중국 본토 그리고 한국, 일본으로 전파된 터이다. 시안 친구 몇 명만 있으면 그 중에 지금도 불교를 연구하거나 고대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웬만한 학자 수준을 넘는다. 시안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도서관,미술관,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유적지에 가서 기념 사진만 찍지 말고 지인 찬스를 통해 꼭 현지 친구를 만드시라. 그리고 그들과 시안의 문화에 살짝 젖어보기를…

요즘 시안은 소위 핫하다. 북경이나 대도시에 나간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추세라 한다. 그 동안 전통문화에만 주력한 시의 관심이 자본주의의 빠른 태세를 장착시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생기고 있다. 한 예로 그들은 한국의 삼성을 1만 명이 넘는 주재원들이 거주하도록 기업을 유치 시켰고, 삼성로라는 도로명을 만들었으며, 한국 식당가를 아파트촌에 수 십 개 안착시키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한국어 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이제 시안 출신의 젊은 친구들이 점점 고향으로 귀향하는 추세라고 한다. 인구 1000만을 육박하기 시작한다.

 

시내로 발길를 옮겨보자. 시안의 중심가 종루 주변으로 살펴보면 시내 중심가를 정방형으로 에워싸고 있는 13.7미터의 성벽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성벽 주변의 야경은 시안의 대표적 이미지이다. 건축과 빛이 만들어낸 고대 도시의 소환이라 할까! 크로아티아의 고즈넉한 도시야경과는 다른 강력한 색채가 건물들을 에워싸고 있다.

많은 관광객(한국)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 병마용과 종루, 등 유명 관광지만 경험하는데, 성곽 주변으로 다양한 볼거리들과 문화들이 펼쳐져 있으니 밤 거리를 걸어볼 이유가 충분히 있다. 강가로 펼쳐진 카페들에선 라이브 연주가 펼쳐지고 현지 젊은이들의 다양한 컨셉의 카페들을 골라보는 재미를 놓치지 마시길! 

 

 

비림(碑林)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에겐 입소문이 덜한 곳이다. 비석의 숲이라 불리는 비림박물관은 서안시 남쪽 성벽 괴성루(魁星樓) 아래에 있으며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어 비림이라고 한다. 비림박물관은 중국 전통적인 공묘(孔廟)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중국 고대비석을 제일 일찍 보존하고 명비(名碑)가 가장 많은 곳이다. 이곳은 1087년 북송조 원우 2년부터 당나라 비석들을 옮겨오면서 형성되었으니, 이미 9백여년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나라 때부터 근대의 각종 비석, 묘지명 2,300여개가 있는데 그 중에 1,807개의 비석을 7개의 진열실과 8개의 비정(碑亭)과 6개의 비랑(碑廊)에 전시하고 있다. 석각예술실에는 100여 건의 한(漢)대부터 당(唐)대의 릉에서 출토된 석각예술과 종교 석각예술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총 면적은 3만1900평방미터이며 진열실 면적은 3,000평방미터에 달한다.

에피소드 하나! 비림'이라고 쓰여진 현판에는 '碑'자에 점 하나가 없다. 현판은 청나라 때 아편을 싣고 온 영국의 배를 태워 아편전쟁(阿片戰爭)을 부른 임칙서(林則徐)가 쓴 것이다. 당시 임칙서는 아편전쟁이 화친으로 돌아서자 전쟁도발자로 몰려 신강위구르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임칙서는 유배지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임칙서는 나머지 점 하나를 쓰겠다고 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병사하여 글자를 끝내 채우지 못했다는 후문.

현지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매일 수년째 비림을 찾아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물론 중국현지 학자들이다.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어 반드시 방문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비석의 탁본을 뜨는 작업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으며 구매도 가능하다. 비림에는 청나라 비석이 있는데 서안을 중심으로 하는 관중 8개 유명 풍경 명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것을 관중팔경이라고 하며 일명 장안팔경이라고한다. 그것은 각각, 화산의 선인장같은 암석, 여산의 저녁 노을,파하 버드나무의 풍설, 곡강의 유상곡수, 안탑의 아침 종소리, 함양의 옛 나룻터, 초당사의 안개, 태백산에 쌓인 눈.

기가막히는 문구들이다. 반드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길!

비림내에 외부 공원인 비석의 숲 옆에 3개로 구분되어져 있는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내의 불상과 각종 유물을 살펴면 여는 박물관의 유물보다 밀도나 가치는 탁월하다. 비석에 놀라다가 다시 한 번 더 놀라게되는 순간이다. 시안 내에 몇 가지 놀랄 만한 가치들의 사찰들과 화산 등 너무 많아 열거가 힘들 정도이다. 일단 비림이라도 가보자.

 

시안미술관, 산시성미술관

       시안은  산시성내에 있는 도시이다. 대표적인 두 미술관이 있다. 시안이 고대 도시의 진원지라는 사실로 박물관 기능이 매우 발달되어 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안 미술관의 전시들이 대부분 미술관의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많은 부분 전통/고전적인 전시 행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 부터 도시의 현대화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현대 미술의 이해와 인식에 서서히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2명의 전문 관장과 54명의 직원을 가동하는 시안미술관은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유일한 미술관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산시성미술관 역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 지역 대학의 중심으로 ‘산시성 페스티발’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역시 한국과의 인연으로 한국 단체들도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졌으며 올해도 진행 될 것이다. 이제 시안은 옛 실크로드의 중심지의 명성처럼 현대 문화의 또 한번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현대문화(미술,무용,음악 등) 전문적인 인프라는 약하지만 그들이 품고있는 문화적 자산과 중국인 특유의 문화 자존심들은 머지않아 중국 다운 힘을 발휘 할 것이다.  

먼저 시안을 탐해보고 근처 실크로드의 기억을 더듬어 돈왕, 우루무치,티벳까지 아시아의 보물지도를 찾아나서 보자. 

 

시안을 중심으로하는 관중 사람들은 생활 방식과 민속 풍정을 관중10대 괴로 개괄할 수 있으며 시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허리띠같은 국수, (워낙에 중국에서 면요리가 유명한 도시 면의 천국 시안!)

-솥뚜껑같은 빵 (많은 무슬림의 분포로 일종의 난 같은 밀가루 빵이 많음)

-고추가루는 요리 코스,(마라국수를 드셔 보시라!)

-포막은 큰 사발로(단돈 1500원에 엄청난 양의 국수를 받아보게 될 것이다)

 -사발 크기는 대야 크기,

 -손수건은 머리에 쓰기, (무슬림이 그많큼 많다는 것이다. 특히 무슬림 식당의 요리들은 탁월하다.절대 실패없음 담백 하기까지 하다. 물론 양코치를 좋아하면 금상첨화!)

 -집진 모양은 반토막,

-외지로 시집보내지 않으며,(시안은 그만큼 먹을것과 자원이 풍족한 지역이다)

 -앉지않고 움추리며,(역시 무슬림들의 자세임. 누구나 시안 가면 길거리에 쪼그려 않아 공갈 빵을 뜯고 있음)

-고함치는 노래 소리 (이건 시안뿐만 아님.중국은 어디던) 

 

 

서상호 오픈스페이스배 대표

 

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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