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왕본풀이로 보는 제주의 신화 이야기

문화는 신화를 만들고 신화는 문화를 숨긴다

      제주에는 많은 신화들이 존재한다. 이를 3가지로 분류하면 일반신화, 당신화, 조상신화로 나뉜다. 일반신화는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관장하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당 신화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조상신은 한 집안에서 모시던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화의 섬으로 불릴 정도다보니 제주에는 마을마다 신들이 있고 집안 구석구석마다 신들이 있다. 이들은 각각의 위치와 역할에 맞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신화는 이 신들의 내력이다. 그렇다고 신화로만 전승된 것은 아니며 전설이나 무당의 본풀이를 통하여 전승되기도 한다.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 수많은 신들 때문에 사람들은 제주를 가리켜 ‘일만팔천 신들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신화를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신이 되었는지, 그들이 어떤 권능을 지니고 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신이 가지고 있는 권능을 통하여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고 만들었는지 이야기한다. 세계가 어떻게 창조되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제주의 질서와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 전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주의 질서와 제도, 이는 제주 문화의 다른 표현이다. 문화는 개인과 사회의 사유방식이며 생활방식이다. 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유방식과 생활방식이 나타났음을 의미하며 기존의 사유방식과 생활방식은 도전에 직면하여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도전은 필연적으로 응전을 낳고 그 결과를 만든다. 승리한 문화는 정착하여 질서와 제도로 나타나고, 패배한 문화는 소멸하여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또 승패를 만들지 못한 문화들은 서로 공존하기도 한다.

우리가 읽는 제주신화의 신들은 제주의 문화가 만들었던 질서와 제도의 다른 이름이다. 질서와 제도가 신이라는 이름으로 신화 속으로 들어오면 질서와 제도는 신화의 표면에서 사라져 숨어버린다. 그리고 신격이 부여된 주인공의 초월적이고 영웅적인 능력이 지배하는 서사물이 된다. 반대로 신이 질서와 제도로 형식화되면 신은 질서와 제도의 배경으로 물러나 숨겨지고 질서와 제도의 변천과정 속에서 신을 찾기 어렵게 만들어 제주신화는 제주사회를 숨기게 되고 제주사회는 제주의 신화를 감추게 된다.

제주신화는 초월적인 신의 역사이며 동시에 제주인과 제주 문화의 숨겨진 역사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제주신화와 문화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을마다 존재하는 당과 심방들을 보거나 제주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신화가 곧 문화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신화를 통해 신의 역사만이 아니라 문화의 숨겨진 역사를 읽어낼 것인가. 여기에는 제주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와 신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제주 문화의 심층을 읽기 위해서는 제주의 생활양식 속에 들어있는 삶과 정신의 역사만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신화적 세계와 맞닥뜨리는 일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제주 신화를 궁극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신화의 주인공이 초월적이고 비현실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서사 속에 숨어 있는 제주인의 생활양식과 맞닥뜨리는 일이 필요하다.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떠있는 하늘/다부다처의 원시모계사회

         천지왕본풀이는 태초에 세상을 만든 신들의 행적과 능력을 보여주는 신화이다. 하지만 이 신화에도 역시 제주 문화의 숨겨진 역사가 들어 있다. 신화로서의 천지왕본풀이와 숨겨진 제주문화의 역사로써 천지왕본풀이를 들여다보자. 이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이 세상은 한 덩어리로 된 암흑과 혼돈 그 자체다. 이 암흑과 혼돈의 덩어리에 가는 틈이 생겼고, 이 틈이 점점 벌어져 하늘과 땅으로 분리되었으며 그 사이에 음과 양의 기운이 통하여 생명이 생겨났다. 그리고 하늘의 옥황상제가 해도 둘, 달도 둘을 만들어서 천지는 개벽하였다.

 

태초에 이 세상은 암흑과 혼돈이었다. 하늘과 땅은 한덩어리로 아무런 구분도 없었다. 이러한 암흑과 혼돈에 실보다 가는 금이 생겼다. 이 금이 조금씩 조금씩 벌어지면서 하늘과 땅의 구분이 생기고 하늘과 땅 사이는 점점 벌어져 갔다. 하늘은 위로 위로 올라가고 땅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 단단히 굳어져 갔다. 땅에는 산이 솟아오르고 물이 모여들어 바다가 되었다. 하늘과 땅의 음양이 서로 통하여 생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그러자 동쪽에서 푸른 구름, 서쪽에서 하얀 구름, 남쪽에서 붉은 구름, 북쪽에서 검은 구름, 한복판에서 노란 구름이 오락가락하는데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우니 비로소 어둠이 걷히며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이때 하늘의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내자 천지는 활짝 개벽이 되었다.

 

하늘의 옥황상제인 천지왕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내자 천지는 활짝 개벽된다. 세상의 질서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해와 달이 두 개씩 떠있는 섬의 질서가 처음으로 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개벽된 세상에는 원초적인 문제가 있다. 신화의 입장에서 보면 이 원초적 문제는 신이 출현하여 그 능력을 발휘하는 원인이며 이유이다. 동시에 질서와 제도의 측면에서는 새로운 질서와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늘에는 해도 둘, 달도 둘이 떠 있어 만물과 사람이 낮에는 더워 죽어가고 밤에는 추워 죽어갔다. 게다가 모든 초목과 새와 짐승이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별이 없었다. 사람이 부르면 귀신이 대답하고 귀신이 부르면 사람이 대답을 하였다.
 

신화 속 개벽된 세상에는 3가지 문제가 있다. 각각 두 개씩 떠있는 해와 달의 문제, 인간과 만물 사이에 구별되지 않는 언어문제, 인간과 죽은 귀신의 분리 문제. 이 세 가지 문제는 신화의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 과제는 신화의 측면에서 보면 주인공이 초월적이며 뛰어난 능력을 필요로 한다.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이는 새로운 질서와 제도를 만들어야 할 사회적 과제이다. 이 과제에도 핵심 과제와 그에 따른 부수적 과제들이 있다. 언어의 문제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귀신을 구별하는 문제는 해와 달이 각각 두 개씩 떠 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이다. 이는 해와 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해도 둘, 달도 둘인 것이 중심적인 문제이다.

해도 둘, 달도 둘인 세상은 제주의 섬사람들에게 편안한 세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더워서 죽거나 얼어서 죽어갔다. 해도 하나, 달도 하나라는 질서로 바꿔놓아야 한다. 이는 우주와 자연계의 질서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제주 섬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질서나 제도도 마찬가지로 해와 달이 두 개인 것처럼 유지되는 사회질서를 말한다. 해와 달이 하나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제주의 섬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무질서적인 질서를 하나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해 둘, 달 둘인 세계를 바로잡는 신화의 주인공은 대별왕이다. 대별왕은 옥황상제 천지왕과 인간인 총맹부인 사이에서 소별왕과 함께 태어난 쌍둥이 형이다. 옥황상제 천지왕은 총맹부인과 천정배필을 맺고 며칠을 같이 지낸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대별왕 소별왕이라고 이름지으라고 말하고, 박씨를 징표로 주고 떠나버린다. 그리고 떠난 후 두 아들은 태어났다.

신의 아들로 태어난 두 아들의 성장과정은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대별왕과 소별왕의 성장 과정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아버지를 찾는 일이고 두 번째는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일이며 세 번째는 꽃가꾸기 경쟁을 하는 것이다.

왜 아버지를 찾고 있을까?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아버지를 찾는 일, 수수께끼를 푸는 일, 꽃가꾸기 경쟁 이 세 가지는 왜 기존의 질서와 제도를 새로운 질서와 제도로 바꿔야 하는지,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과정이다.

 

총맹부인의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서당에 다니게 되었는데 글공부, 활공부에서 성적이 늘 우수하였다. 벗들은 약이 올라 ‘애비 없는 홀어미 자식아!’ 하며 놀려대었다. 그런 놀림은 받으면 아버지가 없는 설움에 기가 팍 죽었다.참다못한 형제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총맹부인은 두 아들에게 사실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제는 아버지가 두고 간 박씨를 정월 첫 돼지날에 심었다. 새싹이 나더니 덩굴이 하늘을 향하여 뻗어 올라갔다. 형제는 굵은 박 넝쿨을 따고 하늘로 올라갔다.박 줄기는 아버지가 앉는 용상의 왼쪽 뿔에 감겨져 있고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형제는 용상에 걸터앉아 호기를 부리며 장난을 쳤다.“이 용상아 네가 임자를 몰라보는 구나! 우리가 바로 너의 임자다.”둘이서 용상을 흔들어대니 박 넝쿨이 감겨있던 용상의 왼쪽 불이 뿌드득 부서지면서 지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아들들이 왔다는 전갈을 듣고 천지왕이 달려왔다. 영걸차게 자란 형제를 맞은 천지왕은 뛸 뜻이 기뻤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은 여러 신화에서도 나타나는 이야기 거리이다. 주인공인 신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를 찾는 과정은 고귀한 혈통을 확인하여 신적인 능력을 부여받는 절차이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천지를 개벽시킨 옥황상제 천지왕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위대한 능력을 부여받거나 물려받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아버지를 찾는 과정은 달라진다. 아버지를 찾는 이유가 애비없는 자식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신화를 통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주사회는 원시 모계중심 사회임을 보여준다. 원시모계 사회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생존을 위해 남자들은 사냥을 한다. 사냥감이 되는 동물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은 사냥감을 찾아 이동한다. 이동 중에 여자를 만나 짝짓기를 하고 일시적으로 머물다 또 사냥감을 찾아 남자들은 떠난다.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와 살다보면 새로운 어머니의 남자가 나타나 아버지가 둘일 수 있는 사회, 어느 정도 성장하여 아버지라고 생각하여 살다보면 남자의 새로운 여자가 나타나 어머니가 둘이 되는 사회, 대별왕과 소별왕 만이 아니라 태어나 모든 아이들은 어머니와 살아가는 동안 애비없는 자식이 되고, 어미 없는 자식이 된다. 이것이 제주의 섬사람들이 살아가는 기존의 질서이며 제도이다. 이러한 기존의 질서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면 제주사람들은 순응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들은 채 성장하지 못한 다섯 살이나 여섯 살정도의 아이들을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집에서 내쫓는 방식으로 여러 신화에서 드러난다.

대별왕과 소별왕이 성장하면서 아버지 찾기를 시작하는 것은 이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도전이 실패한다면 아버지 없는 기존의 질서가 편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고 성공한다면 아버지가 있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된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아버지가 주고 간 징표인 박씨를 심어 박 넝쿨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아버지 찾기에 성공한다. 아버지를 찾았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 능력이 있음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질서는 모든 아이들이 아버지 찾기가 성공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버지 찾기에 성공하자 천지왕은 이승은 대별왕이, 저승은 소별왕이 맡아서 질서를 바로 세우도록 한다. 그렇지만 이승을 다스리고 싶었던 소별왕은 수수께끼 내기를 해서 문제를 푸는 사람이 이승을 다스리자고 제안하고 대별왕은 받아들인다.

 

“이제부터 형인 대별왕은 이승을 맡고 아우인 소별왕은 저승을 맡아서 질서를 바로 세우며 다스리도록 하라.”그런데 소별왕은 아버지의 명령이 불만이었다. 형이 차지한 이승이 어쩐지 좋아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승을 차지하고 싶어 한 가지 꾀를 내었다.“형님 우리 수수께끼 놀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이승을 차지하고 지는 사람은 저승을 차지하도록 하는 게 어떻습니까?”“네가 정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자.”먼저 형이 수수께끼를 내었다.“설운 아우야. 어떤 나무는 늘 푸르고 어떤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진다. 그게 무슨 까닭이냐?”“설운 형님아 마디가 짧은 나무는 잎이 늘 푸르고 속이 빈 나무는 잎이 집니다.”“설운 아우야 그런 말 말아라. 청대 조릿대는 마디마디 속이 비어도 잎이 아니 진다.”동생이 진 것이었다. 형이 다시 물었다.“설운 아우야. 무슨 까닭에 동산의 풀은 잘 자리지 않고 우묵한 곳의 풀은 잘 자라느냐?”“설운 형님아. 봄이 되어 비가 내리면 동산의 흙은 우묵한 곳으로 흘러내리니 풀이 잘 자라지 못하고 우묵한 곳에는 풀이 잘 자라는 겁니다.”“설운 아우야 그런 말 말아라. 그렇다면 사람에 빗대어 보자. 왜 높은 쪽인 머리털은 길게 자라고 낮은 쪽인 발등에 난 털은 짧은 것이냐?”동생은 지혜롭게 답하지 못하였다.

 

이승을 차지하기 위한 대별왕과 소별왕의 수수께끼 놀이는 이승을 차지하기 위한 두 형제 신이 벌이는 첫 번째 경쟁이다. 누가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확인과정에서 소별왕은 지혜롭게 답하지 못해 지게 된다. 두 신이 수수께끼 놀이는 얼핏 누가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를 경쟁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수수께끼의 답은 제시되지 않으면서 소별왕의 대답이 틀렸음을 알려주는 예시만 나타난다. 소별왕의 대답이 틀렸다고 해서 대별왕이 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이는 두 형제 신의 대화가 비유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비유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원시 모계중심 사회의 제주의 생활방식을 생각해야 한다.

대별왕이 낸 첫 번째 수수께끼는 어떤 나무는 늘 푸르고 어떤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신화시대 제주 역시 현대와 마찬가지로 가을이 되면 잎이 지는 나무들도 있고 가을이 되도 잎이 지지 않는 나무들이 있다. 신화시대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생존 방식은 사냥이다. 사냥에 있어 잎이 지는 나무와 잎이 지지 않는 나무는 큰 차이를 지닌다. 사냥을 위해서는 사냥감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무를 이용하여 몸을 숨길 줄 알아야 하는데 잎이 진 나무는 몸을 숨기기 어려워 사냥감을 놓치기 쉽다. 반대로 잎이 지지 않는 나무는 자신을 잘 숨길 수 있어 사냥감을 잡기가 쉬어진다. 어떤 나무는 늘 푸르고 어떤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별왕이 낸 이 수수께끼의 답은 사냥하기 위해 몸을 숨겨야 하는 나무는 늘 푸른 나무이고, 몸을 숨기지 말아야 하는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지는 나무이다. 사냥을 통한 제주의 생존 질서는 신이 주인공인 신화의 표면으로 드러나기가 어렵다. 신화 주인공의 신성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선 질서나 제도는 잠재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왜 동산의 풀은 잘 자리지 않고 우묵한 곳의 풀은 잘 자라느냐? 대별왕이 낸 두 번째 수수께끼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냥을 하기 위해선 동물들의 특성과 잘 다니는 곳을 알아야 한다. 동물들이 많이 다니면서 밟거나 뜯어 먹힌 풀은 잘 자라지 않고 동물들이 잘 다니지 않아 밟히지 않고 뜯어 먹히지 않은 풀들은 무성할 수밖에 없다.

수수께기 놀이에서 진 소별왕은 다시 꽃가꾸기 경쟁을 하여 이긴 자가 이승을 차지하자고 제안하고 대별왕은 받아들인다.

 

“형님. 꽃을 심어서 가꾸어 봅시다. 꽃을 잘 피우는 사람은 이승을 차지하고 시들게 하는 사람은 저승을 차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그렇게 하자꾸나”형제는 지부왕에게 가서 꽃씨를 받아다가 은동이 놋동이에 각각 뿌렸다. 꽃은 움이트고 싹이 돋아나더니 형의 꽃은 튼실하게 자라나 꽃송이들을 방글방글 피워내는데 동생의 꽃은 겨우겨우 봉오리를 맺어 피는 듯 마는 듯 시들어 갔다. 동생은 질 것 같아 얼른 꾀를 내었다.“형님. 우리 누가 잠을 잘 자나 경쟁해 볼까요?”“그러자꾸나.”형제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동생은 자는 척하면서 형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자기 앞의 꽃을 형의 꽃과 바꾸어 놓았다.“아이고. 설운 형님아. 일어나십서. 점심 때 되었수다.”형이 일어나 보니 자기 꽃이 동생 앞에 가 있고, 동생의 꽃은 자기 앞에 와 있었다. 동생은 의기양양하게 이겼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만세를 불렀다. 형은 이승을 동생에게 넘겨야만 했다.

 

이승을 차지하기 위한 두 형제 신이 두 번째 대결인 꽃가꾸기는 실질적으로는 대별왕의 승리이다. 하지만 소별왕이 바꿔치기를 했기 때문에 패하게 된다. 꽃가꾸기 경쟁에서 두 형제는 신이 지니고 있는 초월적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형인 대별왕이 더 능력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이 꽃가꾸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신화시대 제주사회를 생각해야 한다.

신화시대 제주의 섬사람들에게 꽃은 나무와 풀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사람의 몸속에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꽃은 보이지 않는 몸속에 숨겨져 있다가 어느 순간 몸 밖으로 나오면서 빨강이나 노랑 또는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열매를 만들어 낸다. 몸 밖으로 나온 열매들은 다시 나무와 풀이 되거나 또는 동물이나 사람의 몸이 되어 그 속에 꽃과 열매를 숨겨놓는다. 그리고 몸에 숨겨진 꽃과 열매를 다시 세상에 내 놓았다. 꽃이 많이 필수록 나무와 풀, 사람과 동물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제주 사람들은 공동으로 소를 방목하고 돌보는 일을 ‘모시 ᄀᆞ꾸기(가꾸기)’라 하고 여자의 달거리를 ‘꽃이 핀다’고 한다. 그러므로 꽃을 가꾼다는 것은 재배와 생식을 포함한 생산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두 형제 신의 대결은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신화의 측면에서 보면 주인공인 신이 해결할 문제는 이승에 떠있는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이다. 수수께끼 풀이와 꽃가꾸기 경쟁을 통해 대별왕이 소별왕을 이겼다 할지라도 이 과정에서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을 해결할 초월적인 능력을 보여주거나 획득하고 있지는 않다.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떨어 뜨기기 위해 활을 만드는 지혜나 활로 쏘기 위한 엄청난 힘, 그리고 활을 쏘는 방법이나 주문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화시대 제주의 질서나 제도의 측면에서 보면 수수께끼 풀이와 꽃가꾸기 경쟁은 원시 모계사회의 가족질서인 아버지도 둘 어머니도 둘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보여 진다. 아버지도 둘이고 어머니도 둘인 사회질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사냥감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남자들의 생존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동의 방식이 아니라 정착의 방식이다. 이동을 정착의 질서와 제도로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 수수께끼 풀이와 꽃가꾸기 경쟁이다.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질서가 정착하여 살아가는 질서로 바뀌었다고 해서 사냥이라는 주요 수단이 무용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착한 곳을 근거로 사냥기술이 더욱 정교해져야 하는 것이며 자연적 채집이나 생산물의 습득에서 재배를 통한 획득이나 계획적 생산 능력이 더 중요해질 뿐이다.

실질적인 승리자인 대별왕을 속이고 이승을 차지한 소별왕. 이 소별왕에게는 이승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소별왕이 이승을 내려와 보니 과연 무질서가 판을 치고 혼란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늘에는 해도 둘, 달도 둘이 떠서 사람들이 낮에는 더워서 죽어가고 밤에는 추워서 죽어가고 있었다. 초목과 새와 짐승들이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하여 뒤범벅인데다, 삶과 죽음에도 분별이 없었다. 귀신이 부르는 소리에 사람이 대답하고, 사람이 부르는 소리에 귀신이 대답하고 있었다. 살인 역적 도둑 사건이 하루도 빠짐없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남자나 여자는 자기 남편 자기 아내를 나두고 남의 아내 남의 남편이 더 멋져 보여서 탐을 냈다. 소별왕은 이 혼란을 정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제야 제 가늠도 모르고 이승을 탐낸 걸 후회하였다.“설운 형님아. 형님이 이승을 차지하십서. 나에게 이승은 너무 버겁습니다.”“이제 와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일단 네가 자청해서 맡은 것이니 어찌 되었든 다스려야 한다. 큰 법은 내가 가서 바로잡아 주마.”이승에 내려온 대별왕은 천근 활에 천근 화살을 매어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리는 일부터 하였다. 앞에 오는 해는 남겨두고 뒤에 오는 해를 쏘아 동해 바다에 던졌다. 앞에 오는 달은 남겨두고 뒤에 오는 달을 쏘아 서해바다로 던졌다. 그래서 오늘날 해와 달이 하나씩 떠오르게 되어 만물이 편안하게 된 것이다.

소별왕이 차지한 이승은 혼란과 무질서 그 자체였다. 소별왕은 이를 수습할 능력이 부족했다. 소별왕은 대별왕에게 이승을 차지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대별왕은 이를 거절한다. 대신에 대별왕은 천근 활과 천근 화살로 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 가운데 나중에 오는 해와 달을 쏘아 하늘에 해와 달이 하나씩 떠오르게 하였다. 덕택에 이승의 혼란과 무질서는 수습되었고 세상은 편안하게 되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을 정리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천지왕본풀이는 창세신화가 되는 것이다.

제주사회의 질서와 제도의 측면에서 보면 뒤에 오는 해를 쏘는 행위와 뒤에 오는 달을 쏘아서 떨어뜨리는 행위는 어떤 방식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설정하는가의 기준을 제시하는 행위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는 해와 같은 존재이고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는 달 같은 존재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에 오는 해를 인정하고 뒤에 오는 해를 버려야 한다. 이것은 먼저 만난 남자를 아이의 아버지로 규정하는 것이다.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에 오는 달을 인정하고 뒤에 오는 달을 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먼저 만난 여자를 아이의 어머니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는 원시 모계사회로 운영되는 다부다처라는 섬의 질서와 제도가 남녀의 결합을 바탕으로 정착 운영되는 일부다처, 일처다부 방식으로 섬의 질서가 큰 변화를 겪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사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남성들의 생존방식이 사냥기술과 재배, 생산의 기술을 근거로 하는 정착의 생존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에는 큰어머니, 셋어머니, 작은어머니라는 호칭과 큰아버지, 셋아버지, 작은어버지라는 호칭이 변용되어서 아직도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와 달을 정리한 대별왕에게는 아직도 문제가 남아 있었다. 초목과 새,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하는 것과 사람과 귀신을 분별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대별왕은 이 문제들도 해결해야 한다.

 

초목과 새.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하는 것은 송피가루를 뿌려서 눌렀다. 소나무껍질을 닷말 닷되 가루내어 마파람 결에 뿌리니 모든 금수와 초목의 혀가 마비되더니 그 후로 사람의 말을 못하게 되었다.그 다음은 살아있는 사람과 귀신에 대한 분별이었다. 그건 몸무게로 하였다. 저울에 올라서게 하여 백근이 차면 인간세상으로 보내고 백근이 모자란 건 눈동자를 두 개 박아서 귀신으로 처리하였다. 귀신은 눈동자가 둘 있으므로 저승과 사람을 바라볼 수 있으나 사람은 눈동자가 하나 밖에 없어 귀신을 바라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이로써 우주와 자연의 질서는 바로 잡혔다.

 

이승은 만물이 서로 말을 하는 세계였다. 새와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을 했고 사람이 새와 짐승처럼 말을 했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 대별왕은 새와 짐승들은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사람만이 말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소나무 껍질가루를 만들어서 뿌리니 새와 짐승들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별왕은 몸무게가 백 근이 넘는 경우는 사람으로 백 근이 모자란 것은 눈동자 두 개를 박아서 귀신으로 처리하였다. 이는 대별왕이 초월적 능력으로 이승의 혼란을 정리한 것이다.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사냥과 채집 등으로 이동하는 원시 모계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보다 짐승의 소리나 새의 소리, 바람결에 실려 오는 나무나 꽃의 향기, 또는 파도 소리가 중요하다. 짐승이나 새는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부르고 사람들은 이 소리에 화답하여 이동함으로서 사냥이 이루어진다. 나무와 풀들도 마찬가지다. 나무와 풀들은 온갖 향기로 사람을 부르고 사람들은 이 부름에 화답하여 이동하면서 채집하고 생존해 나간다. 이것이 새와 짐승, 나무와 풀들이 사람과 말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정착생활에선 짐승이나 새의 소리를 듣고 또는 나무와 풀의 보내는 향기 때문에 이동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정착의 생존방식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필연적으로 정착생활은 생존을 위한 구성원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고, 역할의 수행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중요해진다. 금수, 초목과 대화하면서 이동하게 되면 정착은 붕괴되고 하늘에는 다시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이 뜰 것이다. 따라서 소나무껍질가루로 금수와 초목의 혀를 마비시켜 사람만이 말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정착을 유지시키기 위해 마음대로 사냥을 하면서 이동하는 생활을 금지시킨 것이다.

제주에선 살아있으면 사람으로 보고 죽으면 귀신으로 본다. 그렇지만 이동생활을 하느냐 정착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과 귀신을 처리하는 데는 큰 차이가 있다. 혼자 이동하거나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이동 중 죽게 되면, 풀이 죽으면 다시 그 자리에서 풀이 자라나듯이 죽은 사람도 저승으로 갔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으며 두고 떠나면 된다. 실상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두고 떠난 것이지만 죽은 사람이 떠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기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여 처리할 필요가 없다. 이동을 위해 떠남으로서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착생활에선 이동생활과 달리 산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고 처리해야 한다. 구별하여 처리하지 않으면 산 사람도 떠나지 않고 죽은 사람도 떠나지 않는다. 이승이라는 같은 공간 더 엄밀히 말하면 정착한 움막이든 동굴이든 같은 공간에 산 자와 죽은 자가 지속적으로 같이 있기는 어렵다. 죽은 자를 분리시켜 처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 다시 말해 장례문화의 출현이다. 섬사람들은 하늘 밑에 이승인 땅이 있고, 이승 밑에 저승이 있다고 믿었다. 저승은 만물의 저장소이며 동시에 만물이 돌아갈 장소이다. 죽은 사람이 가야할 저승인 땅 속은 해가 들지 않기 때문에 밤하늘보다도 더 깜깜한 세상이다. 이 깜깜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이승을 보는 눈으로는 부족하다. 저승을 보는 눈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면서 땅속 세상인 저승을 볼 수 있도록 두 개의 눈을 더 그려 넣었다. 요즘에는 보는 것보다 배고프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지 저승으로 갈 때 눈을 그리지 않고 입에 쌀을 넣어 준다.

 

 

신화를 넘어 삶의 역사를 위하여

 

신화의 측면에서만 보면 주인공은 천지왕의 아들 대별왕이다. 그는 옥황상제인 아버지를 찾아냈으며, 수수께끼 풀이와 꽃가꾸기 경쟁에서 소별왕을 이긴 실질적 승리자이다. 그는 천지왕이 개벽시킨 세상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각각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을 하나의 해와 하나의 달로 만들어 제주의 창세를 완성한 신이며, 금수와 초목과 달리 인간만이 언어를 할 수 있도록 한 언어의 신이며, 귀신을 사람과 분리하는 생사를 결정 처리하는 신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이 신화는 원시모계중심사회에서 다처다부의 질서와 제도가 새로운 도전 앞에 사라진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동시에 정착을 근거로 하는 일부일처를 포함한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의 새로운 질서에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에 사냥기술, 재배와 생산기술,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장례문화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는 문화의 역사이기도하다.

제주라는 말에는 타자의 개념이 들어와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제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제주 신화라는 용어를 쓴다. 그것은 이미 타자화 된 제주의식이 필자의 주체의식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제주신화의 신도 마찬가지로 민중의 타자로 등장하지만 민중의 삶으로 흡수되면 주체의식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제주신화의 올곧은 모습을 보기 위해선 신의 뛰어난 능력을 읽어내는 만큼 민중의 역사도 같이 읽어내야 한다.

신의 내력이 신화의 표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신화에서 신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신의 이름으로 감추어진 민중의 삶의 역사를 보기는 어렵다. 민중의 삶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제주신화를 바라보는 눈의 위치를 떼어내어 섬의 신화역사시대로 보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관찰자의 위치를 바꿔보면 제주신화는 위대한 민중의 역사이다. 그것은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던 민중의 위대한 전언이다. 어떻게 삶을 이어왔는지, 삶을 이어오기 위해 어떤 질서와 제도가 필요했는지, 그 제도가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었는지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이는 천지왕본풀이만이 아니라 일반신본풀이와 당신본풀이 모두 해당된다. 이들 신화가 숨겨놓은 민중의 역사를 읽어내는 것, 그래서 신화가 어떻게 제주의 문화를 숨겨놓았는지, 제주의 문화가 어떻게 신화를 숨겨놓았는지 밝히는 것. 이것이 내가 이글을 쓴 이유이다.

 

송문석

글쓴이는 제주신화에 대해 연구 중이며 제주학생문화원 교육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저서로는  <인지시학>(2004, 푸른사상사),  <예술의 기호, 기호의 예술>(2005, 푸른사상사)가 있으며, <로고지리>(2007, 문사철) 외 6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그림。 권송연

실존감을 찾는 연구로, 유영하듯 기록하고 드로잉한다. 그림을 그리고 때때로 작은 책을 만든다. 드로잉 작업으로 전시, 출판,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slowswim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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