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사람인가?”

"결혼식 당일, 전 남자친구를 떠올렸나?"
"미혼인척 하기 위해 반지를 뺀 적이 있는가?"
"결혼 후에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있나?"

      미국 리얼리티쇼 ‘The moment of truth’는 진실을 말할수록 많은 상금을 가져 간다. 참가자에게 거짓말 탐지 센서를 달아 대답의 진실,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것. 물론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에 의심이 가긴하나, 상금이 탐난다면 어찌 되었건 진실에 가까운 대답을 할 확률이 높기에 엉터리라고만은 할 수 없는 구조다.

10만 달러를 확보한 어느 여성 참가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추가 질문에 답하면 20만 달러를 얻을 수 있다. 그녀의 모든 대답을 지켜본 남편은 이미 망연자실하였고,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조차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멈출 이유는 없다. 어쩌면 더 많은 돈이 면죄부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돈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다. 평범한 삶을 지탱하던 나약한 거짓대신 이기적이긴 하나 홀가분한 진실을 위해.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그때였다. 그토록 잔인했던 몇 개의 질문 이후. 더 자극적인 질문을 기대했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나온 질문은 바로,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였다. 여성참가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마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 그녀의 부모. 객석을 가득 채운 방청객, TV를 보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나 역시도. '당신은 나쁜 사람이야.'

“Am I a good person?”

“Yes. I am. I believe I am a good person”
눈물을 머금은 그녀의 대답이었다.

퇴근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무심코 눌렀던 영상클립. 영상 중간 중간 비춰지는 남편이 불쌍했다. 나 또한 남편이기에 뻔뻔하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여자가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해.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코멘트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자를 비난했고,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진실 앞에 벌거벗은 그녀가 움츠려 들기보다 당당하게 내뱉은 그 한마디, "나는 좋은 사람이에요"가 나를 한참이나 멍하게 했다.

“넌 정말 나빠. 세상에서 제일 나빠. 니가 죽었으면 좋겠어”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결혼 전, 그러니까 꽤 옛날. 몇 번의 연애, 그리고 어김없이 맞이한 이별의 순간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 되었다가, 어쩐지 모르게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지나간 시간은 복기하면 할수록 또렷해지기보다는 흐려진다. 무엇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던 걸까. 무엇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던 걸까. 아직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유추하건데 나는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바탕에는 도덕감정이 있다. 아주 예전, 그러니까 신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던 그 시절에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떤 이는 돌멩이가 왼쪽으로 쓰러지느냐 오른쪽으로 쓰러지느냐에 따라 나쁜 사람이 되기도 좋은 사람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폴 블룸의 ‘선악의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이러한 종교적 도덕감정은 과학, 철학의 발전과 더불어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했다고 한다. 전통적 개념의 선, 악이 아무개 철학자의 주장에 한번, 아무개 과학자의 주장에 한번. 근대화, 산업화를 거치며 또 한번. 끊임없이 달라지고, 어찌어찌 바뀌고. 뭐 다 아는 얘기다. 시대가 바뀌며 선, 악을 구별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문제는 그렇게 두꺼운 책. 선악의 개념을 집대성한 책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Am I a good person?”

무엇이 나를 그렇게 했을까. 가난하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던 열 한살의 나는 무엇 때문에 가게에서 초코바를 훔쳤던 것일까? 왜 나는 그 여름 밤, 연인이 아닌 다른 여자와 밤을 지새웠던 것일까? 나는 왜 가장 친한 친구의 성공을 진실로 축하하지 못하며, 남의 불행에서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끼곤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 단정짓지 못하는가? 왜, 나 역시 리얼리티쇼의 그녀처럼 나는 좋은 사람이라 어렴풋이 믿고 있는 것일까?


“This is not true"

그녀의 대답과 달리 거짓말 탐지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거짓말 탐지기가 탐지한 그녀의 속마음, 그러니까 그녀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서는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리라.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었다. 복싱경기에서 별안간 발차기가 날아온 격이고, 펜싱경기에서 권총을 꺼내든 격이다. 팩트에 기반했던 질문은 어느새 가치판단의 영역을 침범했다. 상금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방송국의 꼼수였을지도 모른다. 진실이건 거짓이건 어쨌든 뒷 탈이 없는 애매한 질문.

그녀 앞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10만 불의 상금도, 남편과의 신뢰도 사라졌다. 단지 하나가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그녀의 눈물 섞인 진실. 아무도 진실이라 믿어주지 않는, 심지어 기계조차 외면한 그 진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대답이 왠지 모르게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매 질문마다 기계적으로 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짧은 대답에 자의적인 변명을 덧붙여주고 있었다.

“그랬어. 나는 그랬어. 결혼식 날 나는 전 남자친구를 떠올렸어. 미련이 남아서도 아니었고, 지금의 내 사람이 못미더워서도 아니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 그 누구건 초대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내 마음에라도 잠시. "

“맞아 그날. 비가 많이 왔고, 너무 외로웠던 그 밤. 왜 하필 그 밤이었는지, 왜 하필 그곳이었는지. 나는 그 사람이랑 분명히 잤어. 마냥 좋지만도 않았고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어. 그게 나쁜 일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어떻게든 행복해져야만 했어"

하루를. 또 하루를 되새기며 그것과 관련된 일련의 모든 내러티브를 제거한 채,  “Yes I have”를 말하던 그녀에게 그 찰나의 질문은 단지 'Moment of truth'가 아니었다. 그것은 'Moment of everything.'

나라는 존재. 그 존재에 대한 정당성이 존립하기 위한 excuse는 과연 몇 개일까? 우리가 진정 스스로를 good person, bad person으로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는 또 얼마나 많아야 하는 것일까?  시대가 규정한, 그 시대의 가치가 규정한 잣대로 내가 아닌 남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질문 몇 개면 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치 않다. 하지만 나. 그러니까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 나는 앞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소멸해야 하는가. 스스로를 저주해야 하는가 용서해야 하는가. 그 중대한 판단은 훨씬 더 은밀하고 훨씬 더 개인적이어야 한다. 나만의 재판을 위한 나만의 변론이기에.

유부남 감독을 사랑한 여배우도 성공을 위해 우정을 배신한 어떤 이도, 당신도 그리고 나도,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그 진실을 위해 백 개, 천 개의 변명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찌되었건 끊임없이 판단 되어진다. 나쁜 아내, 좋은 남편, 유능한 상사, 부도덕한 여배우, 능력 있는 감독, 무자비한 법관 등등. 어떤이에겐 좋은 사람으로, 어떤이에겐 나쁜 사람으로, 어느 날은 좋은 사람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나쁜 사람이 되었다가.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스스로를 위해, 애처러울지언정 이기적일지언정 그래도 간직했으면 하는 그 믿음. 나만큼은 나의 진실을 알아줬으면 하는 그 마음.

Yes. I believe I am a good person.

 

글。 장원준

글쓴이는 책보다 영화, 글자보다 그림, 편지보다 수다, 글보다 썰을 좋아한다. 제일기획에서 7년간 카피라이터, 브랜드 플래너 로 근무하면서 깐느 국제광고제, 아시아태평양 광고제, 부산국 제광고제, 대한민국 광고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림。 토니 타스카니

미국 뉴저지 남쪽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니 토스카니는 삶의 목 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는 어린시절을 보냈고, 그 고 민들은 현재 그의 작업에 중요한 소스가 되고 있다. 작업에 등 장하는 형체들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내포하는 과정에서 우리 가 쉽게 간과하게 되는 살아 있음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 를 한다. tony.toscani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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