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테이트의 바리스타

데이빗 호크니 ◦ Christopher Isherwood and Don Bachardy ◦ 1968

중국계 미국인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공간과 장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공간이 완전하게 우리에게 친밀하게 느껴지면 그것은 비로소 장소가 된다(When space feels thoroughly familiar to us, it has become place)." 장소라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소속되어 있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소속되어 있기도 하며, 소유 할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왜 글의 시작부터 굳이 공간과 장소를 구분해내려 하냐면, 앞으로 여기, 이 글이 연재될 이곳이 단순한 글을 싣는 공간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한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미술전시를 하는 공간 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재밌는 사연이 있고 개인적인 애정이 가득한 장소들을 소소하지만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이야기들이 모일 신문이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또 얼마나 열심히인 줄 아는 이 작은 출판사에 열열한 지지를 보태고 싶다.

어린 시절을 제주에서 보내고 대학생활은 서울에서 하다가 2009년에 6년간 다닌 미술학원 일을 그만두고 전세금을 빼 런던행 티켓을 샀다. 별 준비 없이 떠나온 것 치고는 8년이란 조금 긴 시간을 버티며 살고 있는 이곳 런던에서 수백 개의 갤러리들을 수도 없이 다녔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고 공부를 하는 학생이다보니 전시를 보는 것이 취미이자 본업이다. 수백 개의 갤러리와 뮤지엄, 아트페어가 곳곳에서 열리는 이곳은 나같은 갤러리 덕후에겐 천국 같은 곳이기에 한국에서 지인들이 오면 알짜배기 갤러리 투어를 해주는 일이 나름의 기쁨이다. 내 얘기가 조금 재미는 없을지 모르겠으나, 유명 박물관이 아닌 곳곳에 숨어 있는 갤러리들, 내가 찾아낸 특별한 장소들, 혼자 보기엔 조금 아까운 곳들 등등 어떤 곳이든지 꺼내놓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제일 먼저 소개할 내용은 나만 아는 공간도 장소도 아닌 너무나 특별하고 유명한 전시,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 1937~ )의 회고전이다.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테이트 개관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티켓이 매진 되었고 매일 줄을 서서 전시를 보려는 사람들로 하루하루 기록 갱신을 하다 못해 그 인기를 감당하기 위해 주말엔 밤 12시까지 오픈시간을 늘렸다는 이 전시. 사람이 많은 곳을 너무 싫어하는 나 마저 벌써 다섯번이나 다녀왔으니 이 전시의 인기는 말그대로 하늘을 찌르고 온갖 뉴스와 SNS를 도배하고 있다. 특별한 전시라 인기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개인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고 무엇보다 다른 어떤 작가들 작품보다 실제로 봤을때 훨씬 빛나는 그림들이기에 꼭 이야기 하고 싶었다.

           영국이 낳은 현대회화의 살아있는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데이빗 호크니는, 서요크셔(West Yorkshire) 지방의 브레드포드(Bradford)에서 1937년에 태어났다. 화가이자, 판화가, 사진가 혹은 무대 디자이너로도 활동한 호크니는, 1959년부터 1962년에 다닌 왕립미술대학교(Royal College of Arts) 시절부터 이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첫 개인전은 1963년, 26세에 런던의 화이트 채플 미술관(Whitechapel Gallery)에서 열었다. 공원에서 스케치북을 팔면서 평온함을 느꼈다는 그는 이미 졸업하기도 전에 그림을 팔아 안정적인 생활을 할 만큼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동성애자였던 자신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60년대 당시엔 그러한 행위조차 불법으로 여겨졌으니 그가 그려낸 이미지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영국 북쪽 지방의 우울하고, 황량한, 늘 비가오거나 흐린 그런 전형적인 날씨에 익숙했던 그는 196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고 겪은 강렬한 자연의 색감, 뜨거운 햇살, 수영장이 딸려있는 집, 스프링쿨러가 있는 가든, 햇볕에 태운 갈색 피부의 사람들 그의 눈에 펼쳐진 새로운 풍경들에 큰 영감을 받았다. 미술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그림,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도 그가 LA에서 그린 수영장 시리즈 중 하나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미국의 니콜스 캐년(Nichols Canyon)과 산타모니카 불바드(Santa Monica Boulevard)의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지냈다. 요크셔 지역의 브리들링턴(Bridlington)과 런던의 켄싱턴(Kensington) 에도 작업실이 있다. 2004년부터는 브리들링턴에 머물며 요크셔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유화, 수채화 뿐만 아니라 동영상과 아이패드를 사용하여 그가 사용할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가지고 풍경화의 정점을 보여준 전시가 2012년에 왕립미술학교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엄청난 인파를 몰고와 블록버스터라는 호평을 받은 전시로도 유명하다. 풍경화 전시를 성황리에 마친 이후 브리들링턴의 스튜디오에서 초상화 작업을 시작하려 했던 호크니는 가벼운 뇌졸중으로 건강이 악화됐던 데 이어 그의 조수 중 한 명이 브리들링턴 집에서 자살하는 불미스런 사건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이 일이 있은지 5개월만에 로스앤젤레스로 거주지를 옮긴 호크니는 본인의 주종목이라 할수있는 초상화 작업에 다시 몰두하게된다. 그리고 이를 모아 <82개의 초상화와 1개의 정물화> 라는 전시를 작년 가을 로얄아카데미에서 열었다. 기대를 많이 한만큼 실망도 많았다는 혹평을 받은 이 전시를 뒤로 하고 그의 지난 60년간의 광범위한 작품들을 모은 이번 전시는 정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현 방법에 대한 다양한 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으로 캡쳐하는 등, 그가 평생 관심을 가진 이 모든 것들이 이 전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데이빗 호크니 ◦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전시는 총 12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의 성향에 따라 공간의 색을 다르게 칠했고 캡션의 글자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디테일까지 완벽하다. 처음 두개의 방에는 그가 학생이던 시절 60년대 초반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 혹은 상황의 현실과 상상에 관심이 많았다. 거기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는 이미지, 비밀 코드가 가득한 화면, 성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더했다. 보는이가 그림을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고 볼거리가 많은 이미지들을 만들었다. 추상표현주의가 주를 이루던 1960년대엔 그도 그 영향을 받아 추상적인 이미지들과 표현 방식에 대한 연구를 했었다. 이후 그가 LA를 방문하면서 ‘관찰’하는 것에 관심이 커졌다. 밝고 쨍한 햇살 아래에서 반짝반짝 거리는 수영장부터 건강미 넘치고 활발한 인물들의 표정까지, 특히 <Domestic Scenes> 시리즈에서 열렬히 보여준다. 그는 산타모니카에 살면서 보고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50년대 디자인의 집들, 공간이 넓고 큰 실내, 뒷마당에 딸린 수영장 물의 흐름과 물의 튀김, 마당에 가지런히 정돈된 잔디의 무늬, 나란히 줄 서 있는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줄기 등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공간과 화면의 구조는 추상적으로 나타냈다. 그에게 LA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도시라고 한다. 이전 작품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주력했다면, LA에서 그린 인물들은 묘사해 내는 방법뿐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관계 혹은 묘한 감정의 흐름을 표현하는데 주력해 마치 그림 한 장면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커텐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연극 무대의 한 씬을 보여주는 듯하다. 60년대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주의(Naturalism) 묘사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주변 인물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Mr and Mrs Clark and Percy>(1970-71)에서 부터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ow Figures)>(1972)까지 자신의 멜랑콜리한 자화상과 당시 그의 파트너였던 피터 셸린저(Peter Schlesinger)를 그리면서 절정에 이른다. 그 둘이 헤어지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투명한 유리의 느낌이라던지, 옅은 물결이라던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만의 특유한 방법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그 방법이 극대화되었다. 그는 아크릴 물감 성질의 평평함(flatness)와 깊이감, 표면이 보여주는 겉과 속의 차이, 자연주의와 인공적인 것에 대한 비교를 계속해 나가고,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하며 사진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70년대 후반까지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80년대에 들어와 그는 제한된 시점만 보여주는 사진에 관심을 두었다. 우리의 시각을 통해 볼수 있는 3차원적 시각을 2차원의 평면으로 담아내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좁혀버린다고 생각했다. 사진이란 기술을 통해 한 장면을 캡쳐하는 것이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다. 광각 렌즈라는 것도 있고 최근엔 파노라마 기능도 있지만 그 당신의 일반 카메라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라,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3차원의 시선을 옮겨 담았다. 한컷 한컷 찍을때마다 움직임은 달라지고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140개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붙여 하나의 화면을 만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입체파와 비슷한 방식에 테크놀로지가 접미된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대한 연구는 그의 다음 페인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집에서 작업실로 가는 길에 지나쳐야 했던 할리우드의 언덕, 구불구불한 니콜스 캐년(Nichols Canyon)의 길들, 아웃포스트 드라이브(Outpost Drive)를 극대화시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화면이 쏟아져 내리고 길들이 한쪽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아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유화물감의 색은 더욱 다양하고 화려해졌으며 붓질은 더욱 과감하고 자유로워졌다. 그는 요크셔의 풍경, 그랜드 캐년, 할리우드 힐의 정원등 그가 애착하는 장소들을 비슷한 방법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관람한 그의 드로잉 룸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본적 없던 스케치들을 볼수 있었다. 펜, 잉크, 크레용 등으로 한 장면을 캡쳐하고 그의 일부들 그린 드로잉 부터, 사물, 인물들의 펜 드로잉, 혹은 숲길을 목탄으로 그려낸 드로잉들도 있었다. 그리기를 쉬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여행을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중에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요크셔에 아예 돌아와 광대한 황야의 풍경을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담았고 때로는 작은 사이즈들의(결코 작지 않지만) 캔버스들을 엮어 하나의 큰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풍경을 얼마나 똑같이 그려내는가가 아닌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작가의 눈에 비춰진 절경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었다. 화면이 커지니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꽃이 흐드러지게 펴있는 봄, 나뭇잎이 우거진 여름, 붉은색이 가득한 가을, 황량한 겨울 벌판에서 꼿꼿이 서 있는 나무들 등 사계절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2010년엔 그의 요크셔 작업실 브리들링턴 지역 우드게이트(Woldgate) 숲의 4계절을 비디오에 담았다. 각 계절이 각각의 벽에서 상영되고 있었고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에서 비디오, 테크놀로지가 발전되면서 호크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것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신기하다 멋있다 너무 좋다라는 수식어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그가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용감한 자세는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넘어간다. 2012년에 로얄 아카데미에서 처음 선보였던 그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다. 굳이 페인팅을 하면 될것을 왜 아이패드로 그렸을까, 라는 생각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5년 사이 그의 아이패드 드로잉 실력은 깜짝 놀랄만큼 진보되어 있었다. 아이패드의 기능이 늘어나고 기술이 또 발전했겠지만 호크니의 표현 방식, 아이패드 드로잉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밀도감과 터치감 그리고 빛과 색감 모든것이 몇단계 업그레이드되어 방 하나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대가라지만 80세가 넘은 나이를 생각해보면 보통일이 아니다. 전시장의 처음 부터 끝까지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그림들로 가득하다. 사람들로 가득해 산소가 조금 고갈되는 느낌이었지만, 전시를 감상하고 기프트숍에 들러 엽서 몇개와 책 한 권도 샀으니 커피 한 잔 생각이 가득해졌다. 카페 또한 사람이 너무 많았지만 조용히 줄을 서서 더블 마키아토 한잔을 시켰다.

            런던에 살면서 꼭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힘들어도 이겨내기다. 비싼 물가와 집값을 감당하려니 무엇인가를 해야했고 기왕 하려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보자라고 한 것이 커피를 내리는 일이었다. 작은 카페를 돌며 일하고 경험을 쌓아 커피에 대한 지식을 눈으로, 책으로, 손으로 배웠고 런던의 꽤 유명한 커피를 쓰는 인디펜던트 카페에서 훈련을 받아 지금은 테이트모던에 있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아트와 커피를 좋아하는 이에게 이처럼 완벽할 일은 없을 것이다. 런던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커피는 스타벅스의 한약 같은 아메리카노, 커피빈의 고소한 라떼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붉은색의 영국 브랜드 코스타(Costa)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초록색 스타벅스는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고, 이탈리아 스타일의 푸른색 카페네로(Café Nero) 또한 많이 보였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인디펜던트 카페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거니와 굳이 맛있는 커피를 마시겠다고 특정 카페를 찾아가거나 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친한 친구를 따라 그의 단골집이라는 괜히 멋져보이는 카페 하나에 들어가는데 입구에는 양복을 입은 회사원들이 줄을 서 있었고 몇몇 사람은 앉아서 신문을 보거나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줄을서고 라떼 한잔을 시켜 빨강 파랑 초록 색이 아닌 원목의 오래된 듯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갈색의 벽돌, 빈티지스런 소품들, 유리병에 들어있는 옅은 갈색의 설탕, 바구니에 올려진 크로아상, 오가닉을 사용한다는 문구가 적힌 이 카페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예쁘게 낙엽 무늬가 그려진 라떼를 보고 감탄 한번, 한 모금 마셔보고 한번 더 감탄했다. Wild & Wood 라고 불리던 이 카페는 몬머스 커피(Monmouth Coffee Company)콩을 쓴다고 했다. 이날 이후 ‘맛있는’ 커피에 집착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몬머스 커피 본점부터 찾아갔고 유명하다는 카페 탐방을 시작하였다. 때마침 지난 몇 년 간 런던에도 카페 붐이 일어나 인디펜던트 카페, 독립 로스터리가 인기를 얻고, 마니아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점차 자리를 넓혀갔다. 카페를 방문하고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트렌디한 문화가 되었다. 수백 개의 카페가 존재하는 이 런던안에서도 특히 남에게 알려주기 싫을 만큼 좋아하는 카페들, 혹은 너무 유명한 카페들 한두 곳이 아니지만 제일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곳은 단연 테이트 커피이다. 테이트에서 일하고 내가 직접 서빙하는 커피라서 소개하는 것 만은 아니라고 우선 말하고 싶다. 사심이 살짝 들어갔을지는 모르나 이곳의 커피는 정말 훌륭하다. 한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들어가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꼭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할수는 있겠다.
테이트의 모든 커피는 테이트브리튼에 있는 2차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반원형의 막사(2nd World War Nissen Hut)에서 로스팅된다. "For Tate By Tate"라는 테이트의 철학 아래 런던의 헤른힐(Herne Hill)에서 12킬로그램 짜리 로스터를 가지고 시작한 이후 2011년에는 테이트브리튼 뒤편에 자리 잡은 이 벙커에 25키로를 로스팅할수 있는 기계를 들였다. 테이트모던, 브리튼, 리버풀, 세인트아이브 영국 내 4곳의 테이트에 사용되는 모든 커피가 이곳에서 로스팅 된다. 런던의 몇몇 카페에 로스터를 빌려주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나온 모든 수익은 테이트 갤러리로 들어가고 테이트 갤러리는 컬렉션을 사고 사람들이 전시를 무료로 볼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Head of Coffee의 톰 과 Head Barista의 크리스 그리고 많은 바리스타들과 다른 팀원의 협동으로 커피콩의 선택, 공정, 로스팅, 에스프레소 추출 과정 등등 커피 한잔을 고객에게 내놓기까지 수많은 과정들이 철저한 계획 아래 진행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커피의 품질이다. 최상의 품질의 커피콩을 들여오기 위해 톰은 직접 커피농장을 방문한다. 일주일간의 일정에 모든 농장주를 만나 커피를 확인하고 테이스팅하긴 불가능하기에 그 중간에서 일대일 거래를 도와주는 회사의 도움을 받는데, 콜롬비아를 베이스로 한 카라벨라(Caravela)가 테이트와 함께 일하는 수출회사이다. 이 회사는 테이트가 원하는 농장주들을 찾아 톰을 연결 시켜주며 톰이 농장주를 만나 커피를 맛보고, 선택하고 가격을 측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테이트에 제공되는 커피가 최고의 품질이 될 수 있도록 카라벨라에 프리미엄을 페이하고 이 것은 농장주에게 직접 전달되어 품질 좋은 커피가 생산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윤리적 기업 정신으로 잘 알려진 테이트의 정신 따르기 위한 하나의 특별한 방식이기도 하다.


공정거래를 위한 노력은 많은 커피 회사에서 하고 있지만 테이트는 특별히 공정무역의 최저거래가보다 50% 이상을 더 보증해준다. 농장주는 정당한 가격을 받고 품질 향상에 노력하고 무엇보다도 품질을 가장 중시하는 우리는 여기에 합당한 커피를 돌려받게 된다. 또 하나 테이트 커피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공정거래에 '50/50 남녀평등 프로젝트(50/50 Gender Equality Project)'를 더한 것이다. 커피 생산뿐 아니라 소싱, 거래, 테이스팅 등의 모든 과정에서 또한 남성과 여성 1:1의 비율을 지키려 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특히 제3세계의 여성의 인권에 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테이트또한 여성 노동자에 대한 권리와 지위가 남성 농장주들과 비교하여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에 대하여 질문하기 시작했다. 특히 2년 전 부터는 "윤리적이며 지속가능한 관계(Ethical/Sustainable/Relationships)" 이라는 목표아래 이 50/50 Gender Equality 프로젝트를 실행하여 실력 있고 커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여성 농장주를 발견하고 커피시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케냐, 온두라스, 콜롬비아, 과테말라에서 여성 생산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누구보다 훌륭한 커피를 생산해내고, 소싱하고 커피 시장안의 모든 생산 과정에서 많은 일을 해내고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받는 불리한 사회적, 정치적, 지역적 현실과 싸우려 노력해왔다. 그 지역의 전통성, 오래된 관습으로 여성뿐 아니라 온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일 경우에도 보통은 그 집의 가장인 남편이 농장주로 등록되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성이 가족 내에서 한명의 노동자로서 뿐만아니라, 한 사람의 아내로, 한 가정의 어머니로 해내는 일들이 얼마나 많고, 고되며, 또한 농장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고있기에, 여성 농장주들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 블랜딩 된 갤러리 에스프레소는 특별히 젠더에 포커스를 맞춰 여성들이 이겨내야 했던 힘든 노동, 가족 대대로 이어진 역사가 잘 조합된 커피라고 할수 있다. 갤러리 에스프레소는 헤이즐넛, 오렌지, 버터스카치, 라즈베리 노트의 발란스가 잘 맞는 브라질과 콜롬비아산 블랜딩 커피이다. 갤러리 에스프레소라고 이름을 붙인 만큼 테이트를 대표하는 커피빈으로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카푸치노, 라떼등 필터커피를 제외한 모든 커피를 만들때 사용한다. 갤러리 에스프레소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산의 커피빈은 리다(LEDA CASTELLANE PEREIRA LIMA)라는 여성 농장주가 그녀가 일생을 거의 다 바쳐 만들어낸 특별한 커피이다. 1973년 브라질 몬테 산토 드 미나스(MONTE SANTO DE MINAS) 지역에리오 페레이아 리마(Mr. Leo Pereira Lima)라는 남성이 FAZENDA NOVA ESPERANÇA 농장을 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의 부인 리다에게 농장을 맡기고 농장을 구입한 그해에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리다는 현재 84세가 될 때 동안 남들과 다른 특별하고 뚜렷한 맛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현재는 그녀의 딸 아라벨라(Arabela)와 함께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브라질은 워낙 커피를 재배하는 땅도 넓고 환경이 적합하여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일할 기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콜롬비아는 시스템이 조금 다르고 그들이 가진 문화 또한 다르다. 여성이나 남성 한명이 농장주로 전체를 꾸려나간다기 보다 가족구성원이 그 안에서 각자 일에 대한 발란스를 맞추며 농장을 운영하고있다. 남성들은 현장에서 커피 나무를 일구고 수확하는 노동을 주로 하고 여성들은 재정, 마케팅, 노동자들의 관리 등의 일을 하며 서로의 일에 포커스를 맞춰 농장이 잘 돌아가는 기반을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갤러리 에스프레소40%를 차지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하시엔다 엘 퀘브라돈(Haceinda El Quebradon)은 1860 년 로렌조(Lorenzo Cuellar)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땅은 팔레스타인 자치체의 고품질, 무결점 커피 생산에 주력하는 20 명의 커피 생산자로 구성되어있다. 그중12 가구에서 나온 커피로 구성된 달콤한 미니엄 바디의 붉은 과일에서 나오는 산도가 높은 커피를 테이트에서 사용한다. 라즈베리의 산미가 풍부한 이 커피는 이 그대로 마셔도 너무나 맛있지만 바디감이 좋은 브라질의 커피와 잘 어우러져 더욱 훌륭한 갤러리 에스프레소로 탄생되었다. 로스터리에서는 이 지역에서 나오는 몇가지 커피를 계속 블렌딩하고 프로파일을 연구하여 갤러리 에스프레소가 더욱 발전되고 한가지 맛에만 지체되어 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두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커피빈은 혼두라스의 엘 트리운포(EL TRIUNFO)이다. 여성 농장주 욜란다(Yolanda Urrea Arita)와 그녀의 남편 벨트란(Beltran Alvarado)이 운영하는Finca El Triunfo 농장에서 생산한 싱글 오리진 커피빈으로 테이트에서는 필터커피로 맛볼 수 있다. 복숭아의 단맛, 체리의 산도, 초콜렛의 바디감이 좋은 커피이다.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농장 자체를 여러 구획으로 나누고 그 구획마다 다른 종류의 커피빈을 기르고 있는 이 곳에서는 최근 성장중인 커피인 레드 카투아이(Red Catuai) 생산 뿐만 아니라 그 중 소규모의 구획인 마이크로 랏에서 향후를 위한 계속 실험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커피 생산과 동시에 망고와 오렌지도 함께 길러 근로자들이 수확하고 먹을수 있도록 하기도하며 근로자들의 편의를 위한 숙박시설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모던한 부엌시설을 갖춘 이곳은 여성 남성 및 가족을 위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근로자들이 편한 환경에서 쉴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커피에 대한 열정이 있는 농부들의 다음 세대를 위해 그들의 자녀들이 커피에 관심을 가지고 농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로스터리를 방문하여 톰을 만났다. 그들이 로스팅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과학실에 온 것 같기도 하고 프로파일링하는 그래프를 보면 수학 수업을 듣는 것 같기도 했다. 온도, 타이밍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없고 단 하나도 단순한 과정이 없다. 바리스타이기 때문에 새로운 커피가 들어올 때마다 커핑(Cupping)할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 커핑은 커피를 맛보는 과정이라고 간단히 얘기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10가지 이상의 커피를 갈아 그 향기부터 맡아보고 물을 부어 커피를 우려내고 기다린 후, 맛을 보고 평가를 내린다. 커피향 가득한 이 로스터리에 발을 들인 순간 향기에 매료 되고 이 모든 과정과 그들의 열정에 경의감 마저 든다. 이렇게 로스팅된 커피는 바리스타에게 넘겨져 최고의 맛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해, 매일 커피의 굵기를 시간과 추출 양에 따라 조절하고 맛을 보며 결정되어 서빙 된다. 이 과정 또한 녹녹치 않은 열정과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어떤 커피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생산되어지고 그들이 어떻게 이 농장을 꾸려나가고 있는가를 알게되었을 때 커피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고 그후에 어떤 과정을 거쳐 한잔의 에스프레소가 탄생되었는지 알때 맛은 더욱 업그레이드 된다. 퀄리티 좋은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테이트라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다. 3파운드(약 4200원, 가장 비싼 커피의 가격이다)만 있으면 원없이 작품을 감상한 후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런던에서 꼭 한 번은 들러야 한다는 것은 정말 괜히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양화선

글쓴이는 이스트 런던 대학교 회화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회화과에서 석사를 마쳤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현재 런던과 제주를 오가며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  yanghwaa@gmail.com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 1937~ ) 영국의 팝 아트 화가. 요크셔 의 브랫포드에서 출생해 브랫 포드 미술학교, 왕립미술학교 에서 배웠다. 1963년 런던에 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통속적인 스타일을 극히 세련 된 방식으로 이용해, 스냅 사 진과 같은 정경을 그렸다. 판 화 작업도 많이 했다. 1964년 부터 67년에 걸쳐 미국의 몇 개 대학에서 가르쳤다.

 
양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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