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적인 창작의 비결>전에 부쳐

로버트 필리우 <영속적인 창작의 비결>전(MUHKA, Museum of modern art Antwerp, 2016년 10월-2017년 1월) 리뷰

개념미술은 프랑스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발상의 시작은 언어의 표현방식인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를 말하는 그대로 글로 적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구어와 문어는 각각 다른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어체의 프랑스어는 구어체보다 더 공식적인 표현방식으로 사용되어 어휘의 선정과 사용에 있어서 보다 신중을 가하고, 구어체보다 좀 더 복잡한 문법구조로 글을 구성한다. 한편, 구어체에는 개요가 없으며 즉흥적인 표현들이 사용되고, 문어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접속사를 화자는 대화에서 종종 생략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문어체는 정보전달을 주목적으로 하여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 소통에 중점을 둔다. 이와 달리 프랑스의 구어체는 감정 표현을 중심으로 화자와 청자, 즉 양자간 감정의 소통이 더 부각된다.


Written: Robert Filliuo mourut en 1987
쓴 것 : 로버트 필리우 1987년에 사망

Spoken: Robert Filliou est mort en 1987
말한 것 : 로버트 필리우 1987년에 사망

Both mean the same, Robert Filliou died in 1987
둘 다 같은 뜻, 로버트 필리우 1987 년에 사망

프랑스인들이 편지를 쓰기 위해 항상 고군분투하는 것과 같이  -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고, 다듬하고, 편집하여 비(非)인간인 종이에 자신의 의도를 말하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자연적인 프랑스 구어체의 세계와 흰 종이가 그의 생각을 문어체 형식의 프랑스어로 전환시키도록 요구하는 비자연적인 세계 사이에 표류하는  -  , 개념 예술가들 또한 관념의 세계와 언어의 세계의 중간계에서 자신들의 영감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 중간계에 본 전시 리뷰에서 다룰 두 프랑스 거장이 있다.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켜 생각과 언어로 구분된 현상을 예술적 경험으로 제시한 마르셀 뒤샹과, 관념의 세계와 언어의 세계 중간에 있는 우주(공간)는 하나의 체계적인 기호체제라고 이해한 로베르 필리우이다.
필리우가 제시한 체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영구적 네트워크, (누구든 언제든지 권리를 취할 수 있는 영토의) 온화한 공화국, 등가의 원리(서양 문화 최고의 미적 기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 "잘 만들어졌느냐, 못 만들었느냐, 혹은 아예 만들지 않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행위 예술로서의 교육 및 학습과정 (1970년 <멀티북>의 제목),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영속적 창조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필리우의 영속적 창조 원리는 불교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3년에서 1957년까지, 그는 UN의 한국 재건사업 기획 프로그램에 동참했다. 이 기간 그의 활동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가 예술가로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 또 활동적으로 예술활동을 전개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이 5년의 기간이 필리우의 철학과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주었고,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과 한 개인으로서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영속적 창조 개념을 불교의 교리에 빗대어 설명한다. 따라서 불교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필수조건이다. 아래의 시에 그의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LE FILLIOU IDEAL


not deciding
not choosing not wanting
not owning
aware of self
wide awake
SITTING QUIETLY
DOING NOTHING

이상적인 필라우

결정하지 않고
욕망하거나 선택하지 않고
소유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식 하고
깨어 있으며
조용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술의 비물질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개념미술은 불교의 핵심 교리와 상통하며, 불교에서 영적 단계로의 초월을 가르친다면, 개념미술은 우리로 하여금 순수한 이데아의 차원으로 초월하기를 추구한다. 필리우의 작업은 이 두 작업을 융합하여 제시한다.

필리우는 또한 시인이었으며, 본 리뷰를 마치면서 그의 작품 중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췌해 본다.

 

Bad, BAD news! Who hasn’t had bad news? The contrary of good news. Everybody has had bad news, including Mister Blue. His come on postcards, all through the week. He receives lots of postcards: one, two, three, or even four, every day. Of course, some of them bring good news. And still others bring no news at all: they are the easiest ones to answer. Good news give no trouble. As a matter of fact, they are meant to take the troubles away. Mister Blue reads them first, as soon as the mailman brings them to his door. Such things as yes, OF COURSE. RIGHT. HI THERE. YOU BET YOU. OK… are fun reading, being good news. There is nothing to add to that but to laugh, or smile, or wink, or jump, or dance, or clap. But with bad news, it’s different. Real bad news such as: NO. NEVER. NOTHING DOING. OVER MY DEAD BODY. TO THE DEVIL, Gentlemen, can’t be taken lying down. They have to be answered. Mister Blue answers them on Tuesday, all at once. He writes with a pencil, on the same postcards. And here is what he writes: WHY? WHO? WHAT? WHEN? WHERE? and sometimes he adds BECAUSE and WHEREFORE. This is why Mister Blue doesn’t come out of his house on Tuesday. This is why the front door is locked [look for the last two words] This is why there is no storytelling on Tuesday.

<Mister Blue from Day-to-Day>, 1963/1983, p.7.


나쁜,, 나쁜 소식! 살면서 누가 나쁜 소식 하나 없었을까? 좋은 소식의 반대말. 미스터 블루를 포함하여 누구나 나쁜 소식은 있었다. 그는 한 주 내내 엽서를 부치고, 그 자신도 하나, 둘, 셋, 네 개 매일 수많은 엽서들을 받아 본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 그 와중에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않는 편지들도 있다: 그들은 답장하기 가장 쉬운 것들이다. 좋은 소식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사실, 그것들은 오히려 문제를 없애버리려고 오는 것이다. 미스터 블루는 우편 배달부가 문 앞에 놓고 간 편지들 중에서 좋은 소식을 제일 먼저 읽는다. ‘네’, ‘물론이죠’, ‘맞습니다’와 같은 편지들 말이다. ‘안녕!’, ‘잘 지내지’, ‘맞아’ 등 은 읽기 좋은 희소식의 형태이다. 그 말들에 더할 것은 웃음, 미소, 윙크, 또는 뛰어나 춤추거나 박수치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나쁜 소식에 대해서는, 말이 다르다. 정말 나쁜 소식은 ‘안돼’, ‘절대’, ‘그냥 있어’, ‘내 굳은 몸 위로’, ‘악마에게나’ 등이 있다. 신사 여러분, 편지들은 방치해 두어서는 안됩니다. 꼭 답장을 해 주어야 합니다. 미스터 블루는 화요일에 모든 편지에 대한 답장을 씁니다. 그는 그가 받았던 동일한 엽서에 연필로 적습니다: 왜요? 누가요? 무엇을요? 언제요? 어디서요? 그리고 가끔 그는 ‘왜냐하면’과 ‘그렇기 때문에’를 덧붙입니다. 그래서 미스터 블루는 화요일에 집 밖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관문이 잠겨있는 것이고 (마지막 두 단어를 찾는다), 그래서 화요일에는 스토리텔링이 없는 것입니다.


<미스터 블루에서 일상>, 1,983분의 1,963, 7페이지

 

프란시스코 카마초

글쓴이는 보고타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리서칭을 하고 있다

프란시스코 카마초

보고타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리서칭을 하는 리서처다.

Francisco Camacho

Born in Bogotá, Columbia, he is a researcher living in Amsterdam.

스펙타큘러버나큘러 (2부)
리안 노먼
강선영 작가노트
강선영
White Hair, Tate Modern, and Jack Kerouac
이나연
Investigating the "Gangnam Style" Phenomenon: Global Eurocentrism, Asian Masculinity, and Psy
고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