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 그리고 캣하우스 퓨너럴의 설립자, 데이비드 딕슨과의 인터뷰

 

       2008년, 나는 코넬대학교 조각과 4학년이었고, 데이비드 딕슨(David Dixon) 또한 같은 전공의 석사과정에 있었다. 우리의 작업실은 미술대학 건물 뒤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각은 인기 없는 학과였다. 같은 전공이었음에도 우리는 왕래가 없었다. 작업실을 오가며 문틈으로 서로의 작품을 힐끗힐끗 보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어렴풋 알고 있다가, 각자 졸업 후 더글라스 로스의 약혼 파티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더글라스는 코넬대 조각과의 교수였고, 데이비드와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데이비드가 전시공간인 캣하우스(Cathouse)를 만들었을 때, 코넬의 미대 출신들은 모두 기뻐하며 지지를 보냈다. 이후 캣하우스가 도전적인 전시와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그 관심과 지지는 코넬 미대 출신들을 넘어 빠르게 퍼졌다. 

나는 예전부터 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이후, 나 역시 갤러리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나의 갤러리는 캣하우스와 성격이 뚜렷하게 다르다. 촌구석에서 서로 교류 없이 작업을 하다가, 어떻게 각자 갤러리를 운영하게 됐을까. 데이비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가 그간 비밀로 쌓아둔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는 데이비드와 캣하우스를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하기로 했다. 우리의 비밀을 모두에게 터 놓는 셈이랄까.

 

다이애나(다) : ‘젊음의 나르시시즘’이란 당신의 개념은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 개념은 당신의 작업을 말할 때 종종 언급되지요. 그런데 당신이 이 문구를 언급할 때, 마치 당신 자신이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느꼈어요.
 
데이비드(데) : 맞아요. 모두들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겁니다. 저는 그 감정이 프로이드와 융과 같은 정신분석학적인 ‘공식적인 단계’라고 생각해요.
 
다 : 그래서 당신도 그렇게 느끼나요? 죄책감이 드나요?
 
데 : 죄책감이라, 글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단지 “희생적인 사회 활동(heroic social work)”에 반대되는 나르시시즘 이론을 만들기 시작했을 뿐이에요.
 
다 : “희생적인 사회 활동”도 당신이 만들어낸 개념이죠, 그렇죠?
 
데 : 네, 맞아요. 그 용어는 제 이전 작품들과 캣하우스 퓨너럴에서 열린 제 개인전의 제목으로도 쓰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나르시시즘을 경멸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작품을 제작하려 했습니다. 아티스트들에게 나르시시즘은, 자아를 형성하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여정”이라 많이 논의되는 주제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자기애가 너무 강하다고들 하잖아요. 물론 그 중엔 저도 속하지요. 그러나 적어도 저의 경우엔 나르시시즘이 <데이비드 딕슨의 죽음>이라는 작업과 함께 끝이 났어요. 제가 실제로 저의 죽음을 목격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완벽한 나르시시즘 알레고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즘 신화의 내용에선 허무하고 공허한 자신의 모습을 연못 속에서 발견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의하는 나르시시즘은 신화와는 조금 달라요. 저는 신화처럼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게 필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은, 자기성찰적이고 죽음으로부터 공허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만약 물을 종교적, 상징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세례처럼 ‘변환’의 과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모비딕(Moby Dick)>이나 다른 문학적 알레고리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바닷속 죽음’ 아니면 ‘미지의 세계’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저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이 느끼는 공허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성찰한다고 봅니다. 작가들이 자신과 관련된 주제에 실증을 느끼고, 자신의 현재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잠에 빠져들고, 지루해지고, 자신의 모습이 우로보로스(Ouroboros)처럼 보이는 때에 말이죠.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인데, 소멸의 과정을 거쳐 제가 자란 미국 남부의 세례처럼 재생성, 재구조화 단계를 거친 후, 마침내 사회의 영웅으로 변신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이 나르시시즘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타적인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다 : 그러니까 진화와 같은 진행의 과정이라 보면 될까요? 자아가 생기고, 그 후 사회의 일꾼으로 태어나는, 그런 과정 말이에요.
 
데 : 뭐, 단순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말하신 것처럼 그 과정에는 죄책감이 수반됩니다. 세례 받을 때 같이 죄를 씻어버리는 것처럼 나르시시즘의 죄를 씻어버리는 거죠. 이렇게 젊음의 나르시시즘과 사회의 영웅의 일은 변증법적으로 서로에게 필수불가분 요소가 되는 겁니다. 두 과정이 순차적일 필요는 없지만, 순차적으로 설명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계속 양측면을 오가는 거죠. 따라서 제 나르시시즘을 함축하는 <데이비드 딕슨의 죽음>으로, 나르시시즘을 물리치고서, 제가 저의 소재 이외의 것들과 작업하거나 그와 관련된 전시를 갤러리에서 개최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더 일이 수월해지겠죠. 그러나 여전히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 속에 잠재된 엄청난 나르시사즘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라 생각해요. 물론 저는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두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그들이 제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놔뒀으면 합니다. 다만,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게 젤 어려운 과제인 거죠. 오래된 방식으로 돌아가서, 작업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요.
 
다 : 그래서 캣하우스 퓨너널에서 한 전시에서 그 내용을 다뤘던 건가요?
 
데 : 맞습니다. 그 이유 때문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들의 작업에서 제가 같이 작업할 수 있는 몇몇 잠재성을 보았거든요. 저는 큐레이터처럼 보통 그 공간 안에 있는 작업이 어떠한 순서에 맞춰 진행되도록 요구하는 편인데,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된 작업들은 이제껏 꽤 괜찮게 나왔습니다. 갈등까지는 아니고, ‘순간적 협상’이 필요한 때가 분명이 있긴 했지만 말이죠.
 
다 : 순간적으로요?
 
데 : 네, 순간적으로요. 뭐 어떤 이유에서 장기적 협상이 필요했던 때가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관계는 강한 유대감을 보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좋게 유지되고 있고, 오히려 더 좋게 발전되었다고 봅니다.  이 경우를 빼곤 다 괜찮았어요. 그리고 사실 갤러리의 건축물 구조상, 장기적 관점에서 작가들이 나와 함께 계속하는 것이 최선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공간인 캣하우스 프로퍼(Cathouse Proper)는 화이트큐브에 좀 더 가까워요. 내가 다른 작가들과 작업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길 겁니다. 건축 구조에 의지한 프로젝트였던 캣하우스 퓨너럴과는 반대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게 명제는 아니지만, 여태껏 그렇게 진행되었어요. 갤러리는 언제나 작가들의 협업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그러나 이제 캣하우스 프로퍼는 앞으로 좀 더… 그러니까 우리가 얕잡아 보는 화이트큐브의 하얀 벽을 가지고 있어요. 그 벽들은 사실 거짓된 ‘중립 상태’이지요. 그리고 하얀 도료로 덮여 있기 때문에 작가는 기대하게 됩니다. 이제껏 캣하우스 퓨너럴에서 제가 들은 대다수의 불평들은 작품이 어디서 시작되어서 어디서 끝나는지 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면, 저는 큐레이터처럼 작업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작가로서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 경계가 참 애매하다는 거죠.
 
다 : 왜냐하면 관객들은 전시장의 벽을 당신처럼 ‘중립적 요소’로 보지 않기 때문이죠?
 
데 : 네, 심지어 몇몇은… 아, 제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작가들이 좋은 점을 짚었기 때문이에요. 이게 실제로 논란이 된 적은 없지만, 저는 이게 문제의 잠재적 원인이라고 봅니다. 만약 제가 이렇게 일반적인 하얀 벽의 배치를 피하기 위해 전시 디자인에 크게 신경쓴다면, 그 벽들은 작가의 작업과 조화롭겠지만, 작가들은 그들의 작업이 그렇게 보여지길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캣하우스 프로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작업은 매번 다르겠지만, 작가들에겐 저와 한 두 번만 같이 작업하고 다른 곳에서 작업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그들은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는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어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이 세상엔 수많은 딜러와 기회들이 있고 작가들은 이러한 상황들을 자유롭게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작품이 보여지는 방법을 제한시키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사실 잘 모르겠는데, 아니 정말로 어떻게 다른 딜러와 큐레이터들이 일하는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그저 제가 일하는 방식이 제약이 아니라 자유에 더 근접하기를 바라고, 누군가에게는 임계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예요.
 
다 : 네, 왜냐하면 분명 하얀 벽들은 어쨌든 거짓된 중립 상태일 테니까요.
 
데 : 저는 대게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 아시죠? 그런데 정말로 이전까지 이게 논쟁거리가 된 적이 없었어요. 저는 캣하우스 퓨너럴을 아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분적인 성과로 작가들이 조화롭게 서로 같이 작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것과 작가들이 이전에 비해 기대했던 것 이상을 전시장에 선보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중립성을 띈 하얀 벽이 작업까지 무력화 시켜버렸거든요. 저는 우리가 캣하우스 퓨너럴에서 행한 모든 전시들이 매우 역동적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적어도 제 관점에선 말이죠. 그래서 만약 어떤 사람이 분명한 오브제를 결과물을 손보였다고 칩시다. 우리가 어떤 걸 떠올리던지, 그것은 작업을 좀 더 가치를 더하면 더했지 손상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다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데 : 그러나 이러한 방식도 오래 지속되기엔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건 좀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뭐, 제 말은, 저는 퓨너럴 프로젝트가 그 장소에서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그건 이미 시기상 완전 끝을 봤어요. 농담삼아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였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벽들은 매 전시 이후마다 새로운 층을 쌓았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매번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합니다. “나중에 그 공간이 1미터짜리 정육면체가 되어버리면 넌 거기다가 어떤 작업을 할 거야?” 처음부터 끝이 뻔한 게임인데, 그런 질문은 너무 우습죠. 질문에 대한 화답이랄까? <파이널 하비스팅스>전과 <인간 본래의 표현주의적 원시주의>전을 만들었는데, 후자는 공간에 바치는 전시였어요. 그 공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러니까 우스꽝스럽지는 않아요. 사실은 아름다운 공간이죠. 그리고 다른 좋은 페인팅처럼,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작업할 수는 있지만, 만약 그렇게 하다 보면 본래에 좋았다고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 까먹고 말죠. 따라서 공간에서의 작업은 3년이면 딱 적당하다고 봅니다. 저는 3년간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선호해요. 그게 제가 저만의 영상작업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저는 큰 프로젝트 속에 작은 구성 요소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공간에서는 20번의 전시를 갤러리에서 가졌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것들을 한 장면으로 여깁니다. 각각의 전시들은 큰 이야기 안에 포함 된 장면이고, 큰 이야기이자 공간 그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고, 적합하며 명확한 결말을 맺으면, 정말이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장소를 느끼게 만드는 거죠… 형식상 연속적으로 각 전시의 틀이 다음에 이어서 잘 진행된다면 말이죠.
 
다 : 어떤 사람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나요?
 
데 : 전시형식에 대해서요?
 
다 :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요,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 커다란 이야기 말이에요. 그건 저나 다른 작가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건 그들의 작품이 전시장 프로젝트의 부분으로 여겨진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지 않나 해서요…..
데: 맞아요, 물론 어떤 전시에 그렇게 명확한 느낌을 받는 일은 없을 거고 제가 갤러리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 점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왜냐하면 제 머리 속에….이러한 연속적인 방식으로 갤러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떠한 특정한 전시에 꼭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거든요. 이전의 전시들에서 작가들은 갤러리가 그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행복해 했습니다. 이러한 서술적 사고에 대해 불평할 이유도 딱히 없기도 했고요. 제 생각엔, 그 책이 거의 갤러리를 뛰어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이렇게 연속적인 서술적 형태로 말이죠.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어떤 전시를 보러 갔다고 합시다, 당신은 그 전시만 보았겠죠. 반면에 책은, 하나의 전시와 그 다음 전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이를 취리히(Zürcher) 공간에서 한 첫 아트페어 때에 느끼고 모든 전시에 대한 이미지들과 텍스트들을 담은 노트북을 만들었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운 작업이었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정말 신이 났었죠… 그때 강렬한 느낌을 받았어요… 어쩌면 저는 시작할 때부터 갤러리를 이러한 서술적 방식으로 생각해왔었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말이죠. 그러나 노트북의 형태로 직접만들어보니 효과가 생각보다 더 크더군요. 거기에는 시각적인 서술방식이 담겨 있었어요.
디아나: 정말 흥미롭네요. 아티스트들이 그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만약 그들이 자신의 전시 결과물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했다면 말이에요. 어쩌면 저는 전시에 데이비드씨가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아, 그렇다고 다른 작가나 다른 것을 비하하려는게 아니었어요. 다만…(웃음)
 
데 : 그러니 “사회의 영웅적 일꾼”으로 제가 변화하고자 하는 시도나 생각이 의심스럽고 웃기는 이야기죠. 하여튼, 저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갤러리를 운영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저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겁니다. 아티스트들을 대신해서 이타적으로 일하기도 하고, 그들을 홍보하기도 하고, 빛내주기도 하죠.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첫 전시를 “캣하우스 퓨너럴(제 개인전은 여름에 따로 할 생각입니다만)”이라고 부르는데 참으로 아이러닉하죠. 저는 저를  ”사회의 영웅적 일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갤러리에서 보여주고 싶은 제 본모습입니다. 만약 비판하고 싶다면 이런 이타적인 개념이 갤러리에서 접근하기 좀 경박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저는 다른 아티스트들을 캣하우스라는 이 커다란 곳에서 부분적으로 그들이 설치를 할 수 있도록 틀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잠재적으로 몇몇 작가들에게 불편함을 유발할 수 도 있었습니다. 근데 아직까지 어떠한 불평도 듣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서 그런지 대화를 즐겼어요. 제 말은, 저는 작가들을 독점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하고 있는 활동이 그들의 작업을 결정짓지는 않아요.
이제 퓨너럴은 막을 내렸어요. 저는 사실 이 프로젝트를 아티스트들이 함께 하는 조각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간의 모든 벽에는 작가들이 함께 만든 레이어들이 겹겹이 쌓여 있지요. 그리고 브래드 베니스체크(Brad Benischek’s)와 앤 델레포르테(Ann Deleporte)의 벽화 같은 것도 있었죠. 그래서 제 생각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모아서 잘라내고, 밖에 내보내서 다른 공간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부쉬위크 오픈 스튜디오(Bushwick Open Studios)에서 했던 전시처럼 이렇게 추억을 담은 요소들과 함께 그룹전을 “수확한 벽”에다가 끼워서 보여주려고 한 겁니다.
 
다 : 하지만 작품들을 모으고 난 뒤에는요? 당신이 소유하는 거예요?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그게 당신의 작품이 되냐는 거죠.
 
데 : 오, 그거 참 좋은 질문인데요. 보통은 그렇죠. 그러나 만약 제가 브래드(Brad)나 애니(Anne)의 작품을 거둬들인다고 했을 때 예를 들면 50대 50의 비율로 가지는 거죠. 이제껏 저희는 매출을 그렇게 분배했어요. 제게 있어서 비공식적으로 작가를 소개하는 일이 복잡하고 어려워요. 만약 비영리적 자금이 아닌 공적이고 재단의 기금을 받는다거나 세금공제를 위해 기부금을 받는 형태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윤을 창출하기 힘듭니다. 저는 작가를 위해 뭐든 찾아 나섭니다. 왜냐하면 작가가 내가 아닌 다른 경로로 작품을 팔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죠. 뭐 알다시피, 작가들은 한두 달 다른 작가와 전시를 하고 나서, 이후에 그들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판매하잖아요. 거기에는 어떠한 계약조건이 없어요. 사업적으로 따지면, 제가 그 전시에 투자를 많이 하더라고 작가에겐 어떠한 보상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결과물들은 제가 보관하고 언제나 이윤을 50대 50 비율로 작가와 같이 나눠가지는 거죠.
 
다 : 그러니까 당신은 그들을 대할 때 솔직하지만, 그들은 당신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네요.
 
데 : 맞아요.(웃음) 그러나 저는 보통 작가들을 대하는 일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작가라서요. 물론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끼리 어쩌다 보면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와의 관계를 벗어나서 다른 직종에 종사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어떠한 특정인에게 매어있으려 하지 않아요. 제 변호사 친구는 최근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제가 변호사를 고용한 이유는, 제가 돈을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돕게 하기 위함이라는 거죠. 이해하시겠어요? 실제로 혼자 자신의 작품을 파는 경우보다 갤러리의 후원을 받고 있을 때 컬렉터들과 협상 시에 더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만약 다른 작가들이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제가 딜러의 역할 수행하도록 하기를 원한다면 구매자들을 제외하고 다같이 좋은 게 아닐까요? 제 생각엔 그런데…(웃음)
 
다 :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맞아요, 그렇긴하네요….
 
데 : 컬렉터들은 확실한 것들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합니다. 갤러리는 작가를 찾는 일을 하기 때문에, 컬렉터는 이런 갤러리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려 하죠. 갤러리스트로서 컬렉터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그건 뭐랄까, 비합법적인 행위죠.
 
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딜러는 좀 더 어감이 쎄죠…
 
데 : 마치 ‘우리가 당신을 위해 돈을 만들어 줄게’ 라고 하는 것 같죠.
 
다 : 네, 단순히 갤러리 안의 갤러리스트가 아니라 여러 요소들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 같아요.
 
데 : 맞아요, 그건 그저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닙니다. 저도 그 단어를 선호하는데, 딜러라는 단어는 두 집단 사이에 있는 중개인이란 느낌을 주잖아요.
 
다 : 정말 미국스럽죠.
 
데 : 하지만 저는 만약 캣하우스 퓨너럴 프로젝트가 당장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면, 저는 여전히 아티스트로서 작업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은, 제가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이러한 예술작업을 즐긴다는 겁니다. ‘갤러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아티스트와의 관계가 갤러리에게 어떤 의의와 기능을 하는지 생각하는 계기를 주고, 예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작업을 둘 다 맡아서 하고 있는 겁니다. 사업적으로 따지면, 실패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도 제가 보기에는 아직까지 그러한 모든 역할이 이미 성공적으로 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가 작업해 나아가야 할 것들은 수없이 많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과 계약적인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인터뷰이 - 데이비드 딕슨(David Dixon)은 예술가이자 영화제작자, 아트딜러이다. 그는 파슨스디자인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학사 학위를,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10년 동안 ‘Outpost’에서 재직하면서 두 편의 장편 영화를 제작, 감독했다. 코넬대에 재학하는 동안 그는 오두막집을 개조하여 예술 작품과 영화 상영회를 였었는데, 이곳이 그의 첫번째 전시공간이었다. 3년 전, 뉴욕으로 돌아온 후, 캣하우스를 만들었다. 건물 주인에게서 여분의 1000평방 피트를 임대하고 임대료를 위해 4개의 스튜디오를 지었다. 그리고 나머지 350평방 피트의 공간은 캣하우스 퓨너럴이 되었다.

인터뷰어 - 다이애나 서형 리(Diana Seo Hyung Lee)는 뉴욕시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딜런+리갤러리 공동 운영자이다. 비평가, 번역가로서 <플래시 아트>, <브루클린 레일>, <아트 슬랜트>, <아트아시아퍼시픽>,  <The Forgetory> 등에 기고한 바 있다. 그녀는 코넬대에서 조각과 프린트 메이킹을, 스쿨오브비쥬얼아트에서 예술비평을 전공했다. seo.hyung.lee@gmail.com

 

다이애나 서형 리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딜런+리갤러리 공동 운영자이다. 비평가, 번역가로서 , , , , 등에 기고한 바 있다. 그녀는 코넬대에서 조각과 프린트 메이킹을, 스쿨오브비쥬얼아트에서 예술비평을 전공했다. seo.hyung.lee@gmail.com

Diana Seo Hyung Lee

Diana Seo Hyung Lee is a New York City based writer, translator, and partner of Dillon + Lee. Her writing and translations have appeared in Flash Art, The Brooklyn Rail, ArtSlant, Degree Critical Blog, ArtAsiaPacific, and The Forgetory, an online publication she helped start, where she currently serves as a contributing editor. She received her MFA in Art Criticism and Writing from The School of Visual Arts in 2012 and BFA in Fine Art with a concentration in Sculpture and Printmaking from Cornell University in 2008. She can be reached at seo.hy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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