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을 타고 떠나는 벤쿠버 여행기- 타임캡슐을 타고 싶었던 한 홍콩인의 바람을 담아

 

2017년 1월 말, C&G(Clara & Gum, 2007년 홍콩 작가 클라라청과 검쳉이 만든 아티스트 그룹)는 관둥 출신의 캐나다인 작가 레미 소(Remy SIU)의 교류 프로그램 덕택에 벤쿠버에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벤쿠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1990년대에 홍콩인이 가장 많이 이민간 도시여서인지, 그곳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두 도시의 이러한 역사적인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이 두 지역의 시각예술과 현대미술의 영역을 연결해 생각해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설날기간(음력으로)동안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숨겨진 연결점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90년대 홍콩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민에 대한 수많은 견해와 논점이 쏟아져 왔던 토론들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는, 1997년 정권 이양 이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잔혹한 중국 공산당에 대한 공포, 다음 세대에 더 나은 환경이 제공될 것이라는 희망과 외국에서 2류 시민으로 사는 것에 대한 걱정 등 다양한 측면들이 고려되어 논의되었다. 결국 이러한 쟁점들이 수많은 홍콩인들을 벤쿠버로 불러들였다. SICREMI의 통계결과를 따르면 약 70만 명의 이민자들이 1983년부터 1996년 사이에 홍콩에서 벤쿠버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처럼 수없이 밀려 들어간 홍콩인들과 자본이 홍콩 대중문화와 생활양식을 조금씩 벤쿠버로 유입시켰다. 이러한 현상으로 1990년대에 광둥어 라디오와 TV 방송국의 증가와 홍콩의 고유함을 지닌 물품들이 쇼핑몰을 가득 채우는 풍경을 자아냈다. 벤쿠버에서 가장 큰 지역인 리치몬드에 있는 쇼핑몰들은 여러 세대를 한데 담은 홍콩의 타임캡슐 같았다. 1994년에 들어선 리치몬드 시장은 80년대 후반에 홍콩 정부의 건설 당국에 의해 운영되었던 쇼핑센터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리차몬드 시장 안에 신선한 고기를 파는 정육점 구역 - 다양한 상점들이 일관성 없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띈 - 골목들은 2005년 - 홍콩 정부의 상업 부지의 부동산이 민영화되기 - 전까지 홍콩에 있는 동네 시장 같은 생생한 느낌을 자아냈다. 반면, 파커 플레이스나 요한센터와 같은 인테리어를 한 쇼핑몰에선 90년대 중반의 시장과 비슷한 풍을 느낄 수 있다. 그 시대엔 폰트와 색깔이 가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실내에 쓰이는 전등의 양과 공용 공간에 더 큰 공간이 들어오는 형태가 그 당시와 비슷하게 구현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엔 타임캡슐에서 벗어나 에버든 몰에 가보면, 좀 더 현대적인 스타일의 쇼핑몰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선 구매하는 동안 광둥어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공 광장’이 좀 더 넉넉하게 디자인된 현대적 쇼핑몰과 비슷하다. 나는 쇼핑몰에 광분하는 열성 팬은 아니지만, 홍콩인의 문화가 이러한 쇼핑몰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1990년대 이후로 줄기차게 제 3차산업과 다른 산업 부문을 향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한 홍콩의 경제로 인하여 쇼핑몰은 많은 홍콩인들이 “공적으로” 규제되기 시작한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리차몬드의 쇼핑센터를 방문하면서 살짝 목격한 홍콩 문화가 잠식해가는 모습은 홍콩과 벤쿠버가 대중문화영역을 넘어서서 또 다른 눈에 띄는 문화적 연결고리를 가지진 않았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의 연구자이자 독립 큐레이터인 미쉘 웡(Michelle Wong)은, 이민의 물결이 실제로 80년대와 90년대의 “홍콩 예술의 역사”를 쓰는데 공백을 남겨놓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콩 예술의 역사”는 따옴표 안에 쓰여있는데, 그 이유는 미쉘이 말했다시피, 홍콩예술을 정의하는 문제나 어느 특정 지역으로부터 유래한 예술양식인지 정확히 따지는 것이 너무나도 흔한 세계적인 인구 이동으로 인해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레미 소 덕분에 C&G는 90년대 초반에 이민간 홍콩 아티스트 조쉬 혼(Josh HON)을 만날 수 있었고, 벤쿠버 여행기간에 같이 ‘침대 밑으로부터 상영 세션(Under-the-Bed screening session)’의 진행자로 섭외할 수 있었다. 활용 가능한 설명 자료들이 부족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쉬 혼이 참여했던 1987년의 <문맥에서 벗어나서(Out of Context)>전은 여전히 홍콩 현대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그룹전시이다. 1980년대의 홍콩 예술의 모습이 여전히 ‘동양과 서양(East and West)’ 담론과 새로운 신수묵운동(The new ink movement)에 크게 영향 받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동양과 서양사이의 틈을 세계 의 예술의 언어로 꽤 뛰어넘기 위해 새로운 아티스트세대가 등장하였다. <문맥에서 벗어나> 전시는 그 당시 조쉬 혼과 다른 작가들이 스튜디오로 사용했던 유로피안 건축양식의 큰 고택에서 이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전시였다. <마치, 현재의 상태인 것처럼(As, If: Is)>라고 제목 붙여진 조쉬의 설치작업은, <문맥에서 벗어나서>전이 열린 장소의 특성을 고려해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플러그가 뽑힌 냉장고 앞에서 그와 비슷한 크기의 한 얼음덩어리가 여전히 덥고 습한 10월에 녹아 내리도록 제작되었다. 얼음 또는 물 덩어리는 반복되는 혼의 예술의 재료이자 모티프이다. 이 작업에서 개념적으로 변환 가능한 물리적 상태에 있는 얼음덩어리는, 제목을 통해 들어났듯이, 그의 철학과 미니멀리즘적 접근에 대한 끊임없는 흥미를 상기시켜준다. 이 작업은 나중에 다른 연극부 그룹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선보인 “그의 멀티 미디어 작업인 <마치 그 또는 이야기인 것처럼Ⅰ(1988), Ⅱ(1989) (As If His/Story Ⅰ, Ⅱ)>에서 역사의 개념 탐구하기”로 발전되었다. 갑작스럽게 1989년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 이후로, 조쉬는 원조 동상이 철거 된 천안문 사태에 대응하여 홍콩의 민주주의의 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90년대 초(그가 캐나다 서남부의 주 호프(Hope)에 이주했을 때) 홍콩예술계”로 부터 점점 희미해졌던 것을 고려하면, 1980년대 예술과 사회에 공헌한 조쉬의 활발한 참여를 연결시키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틀림없는 증거가 2007년 조쉬 혼(H)과 컹 치 씽(KUNG Chi Shing) (K)과의 중요한 대화 속에서 드러난다. 컹 치 씽은 중요한 인디 홍콩 출신 음악가로 조쉬의 수 많은 실험적인 극장 작품에 참여하였다.

K: 당신은 원하는 것을 예술을 통해 찾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홍콩을 떠나기 직전 몇 년 동안 당신은 완전히 예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예술은 마치 심성수양과 같아요; 아무리 사회적으로 중요성을 띈다고 해도,. 예술은 마치 간접적인…

H: 전 거기에 반박하는 게 아닙니다. 예술은 조금은 자기수양과도 같아요; 그러나 아티스트도 개인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사회 속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죠. ---그게 제가 세상과 함께 더 거대한 대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맡은 이유입니다.

K: 당신은 홍콩에 환멸을 느껴 떠난 건가요?

H: 1993년과 94년 사이에, 문뜩 홍콩을 한동안 떠나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회 속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 사람들은 너무 똑똑하고 지적이지만 더 이상 중립적이지 못하게 되었어요. …… 인간이 더욱 더 똑똑해질수록, 지배하려는 욕망도 커졌거든요. ---저는 이게 고통의 시작점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교양적이고 관용적이든 간에, 아니면 혹은 내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하든 간에, 결국은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치달아 갈 겁니다; 뭐 물론, 그것 또한 저의 무관심과 무기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떠나야겠다고 느꼈던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소외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연히, 제 두 부모님 모두 캐나다로 이민하셨습니다…… 제가 찾은 호프(Hope)마을에 말이죠. —그곳은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며 자연과 가까이에 있었어요. 정말로 저는 작은 커뮤니티가 필요했어요; 그런 면에서 제가 극장 작업을 하는 방식이 이와 유사하네요.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친숙한 크기의 공간을 더 갈망했으니까요.

       벤쿠버의 관둥인 커뮤니티의 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레미 소는 2016년 벤쿠버 차이나타운에 있는 센터 A 에서 “죽은 물의 격분”이라는 조쉬 혼의 첫 개인전 전까지 그의 존재를 몰랐다. 그러나 그 전시 큐레이터를 맡았던 령 치 우가 2007년 홍콩정권이 교체된 사건을 다룬 다른 전시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창조력은 우리가 오로지 전문성에 집착한다면 제한되고 말껍니다.” 그의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다시 정착하면서 조쉬 혼은 1994년에 자연적인 호프라는 마을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 후, 그는 그의 집 옆에 작업실을 짓고, 도예작업을 하며 안전요원이 되었고, 등… 후에 그는 상담에 대해 공부하고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상담가로 살아가고 있다. 이번 여행 동안 C&G는 조쉬 혼의 안락한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어 기뻤다. 그의 도예작품들과 책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몇몇의 옛 홍콩 예술잡지들과 복사된 이미지들과 “1980-2008년 사이에 활동한 홍콩 아방가르 예술인”이 써있는 텍스트로 콜라주 된 커다란 캔버스를 볼 수 있었다. 최근 행해진 그의 작업들은 퍼포먼스와 예술심리치료와의 관련성을 보인다. 전문적인 예술계에서 희미해져 가는 조쉬혼의 창의력은 없어지진 않았지만 여전히 다른 형태와 경로로 변환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여진 미술사는 “예술작품”에만 초점을 두고 예술적 영혼의 중요하고 자연적인 움직임들은 언제나 도외시하고 말 것이다.

C&G의 창의력에 대한 흥미는 우리의 프로그램에 조쉬혼을 초대하도록 이끌었다 : <침대 밑으로부터> 상영과 공유하기 세션에서 공개석상에서 한번도 보여지지 않았던 그의 오래된 비디오작업들이 선보여 졌었다.조쉬는 그의 1994년부터 1996년사이의 그의 VHS 비디오 테이프 중 4개의 비디오 클립을 흔쾌히 보여주었다. 그 클립들은 그가 호프마을을 찾아가는 여행기부터 아티스트 친구들과 같이 축구를 하는 모습과 중국인 사회 운동가들의 인터뷰모습까지 담아낸 영상들이었다. 벤쿠버에서 선보인 이 <침대 밑으로부터>의 기록들은 2017년 3월에 홍콩에서 홍콩 인들을 위해 C&G Artpartment 에서 상영되었다. 조쉬의 이야기는 특히 2014년도에 일어난 우산시위(The Umbrella Movement) 이후를 되돌아보는 홍콩의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 당시 많은 예술 옹호자들이 특히 현대미술 시스템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지난 수 십 년간 홍콩에선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2013년에 그와 관련된 주제로 서너 개의 담론과 토론에 초대되었던 기억이 난다. 예술적 행위로 사회적 움직임을 형성하려고 했던 갈망은 지역 예술 커뮤니티에서 강하게 들어났다. 이후에, 2014년도 9월에서 12월까지의 우산 혁명기간 동안에 점령지역에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전문적인 예술인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결론이 났다. 위아래로 규제가 없는 시위 구역에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자유의지를 보이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창의력이 뿜어져 나왔다 예술가들은 아티스트가 아닌 개인으로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에 동참하였다. 한편으론, 장기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현대 예술담론이나 아티스트들의 경력을 쌓기 위해 만들어지는 예술의 형태가 아니라 일상 속에 존재하는 예술이며 창의력이다. 반면에 단기적으로 점령하기 위해 필요한 것 또한 예술이 아니라 점령의 초기 협상단계에 있어서 점령한 장소와 전략을 보호하는 행동이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아티스트의 의견들은 가끔 실제 정치판에서 실용성을 잃어버리곤 한다. 조쉬가 그가 공유한 작품을 통해 지적하듯이, 얼마나 ‘탱크남자’의 사진(1989년에 천안문 사건 당시 탱크 앞에 서있던 남자의 사진)이 얼마나 강렬한 충격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기엔 부족했다. “당신은 총이나 대포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 당신이 그 앞에 선다면, 당신은 말 그대로 어떤 효과도 없이 죽을 수 도 있다. 보편적인 결과는 자그마한 사회변화를 만드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일 것이다.” 조쉬는 극단적인 대립상황보다 교육, 정체성, 문화의 보존과 같은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고 융합해 움직여야 한다고 보았다. 조쉬의 이야기를 홍콩으로 가져옴으로써 1980년대의 홍콩미술사의 공백을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다. 조쉬의 제자이자 홍콩에서 열린 ‘침대 밑으로부터’전시의 또 다른 관객이었던 크리스 찬(Chris CHAN)은 홍콩에서의 상영세션의 끝에서 홍콩이 80년대와 90년대에 “문화가뭄의 시대”라고 대중매체들로부터 흔하게 표현되었으나 자신은 실제적으로 그와 다른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조쉬 혼으로부터 에술을 배우고 그 당시에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수많은 홍콩인 예술가들을 보면서, 크리스는 그 시대가 사실 홍콩이 드디어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고 보았다. 1908년대의 희미해져가는 미술사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아보는 것은 지역의 미술사를 계속 쓰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조쉬와 만나고 나서, C&G의 벤쿠버 여행기는 <상태기계로부터 멀어지는 관객/관객들(Vistors From Far Away to the State Machine/Vistors)>이라는 멀티미디어 쇼 극장으로 끝을 맺었다. 이 쇼 극장은 ‘홍콩 망명자(Hong Kong Exile)’이라는 학제간의 예술 회사의 주최로 열렸다. 이 회사는 레미 소와 조금은 천안문사태를 경험한 벤쿠버에서 활동하는 두 아티스트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쇼는 지구로 찾아온 두 외계인의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그들은 지구에서 앞으로 홍콩이 격을 다양한 여러 단계들을 타임머신을 타고 환상적으로 넘나든다. 장난스런 공상과학적인 요소로 비판과 풍자를 통해 그 퍼포먼스는 분명하게 홍콩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확실히, 홍콩망명자는 관둥지방의 문화와 관련되거나 식민적 지배에 (1997년전까지 영국으로 받은 식민지배와 현재의 중화민국으로부터 받은 지배를 뜻한다.) 대한 홍콩사람들의 두려움을 다룬 예술프로젝트를 행해왔다. 그들은 2015년에  <죄/관둥 영역 (transgression/cantosphere)> 전시를 열어 광둥어의 보존과 우산시위에 대한 지지를 주제로 다루었다. <관객들(Vistors)>전을 보면서 나는 멀리서 홍콩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졌고, ‘홍콩’을 나의 고향으로부터 참으로 가깝게, 혹은 멀게 있는 사람을 통해서 느꼈다. 홍콩망명자의 기획작품들은 최근 몇 년간 홍콩에서 급변하는 정치적 변화를 계속 접한 나에겐 타임 캡슐과도 같았다. 만약에 궁극적인 홍콩의 종착지가 상태기계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는거라면, 이 이야기는 홍콩 망명자와 제2의 홍콩으로 알려진 벤쿠버의 다른 아티스틀 곁에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분명하고 앞으로 곧 완전히 진압당할 홍콩사람들의 몇몇 목소리를 보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비관적인 관점 넘어서, 홍콩과 벤쿠버 사이를 넘나드는 수많은 예술적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 2015년에서 16년 사이에 일어난 홍콩망명자들의 전시와 센터A에서 열린 조쉬 혼의 전시를 제외하고, 벤쿠버 아트 갤러리는 또한 홍콩문화를 작업의 재표로 사용하는 홍콩의 작가들을 포함하는 두 전시를 열었다. 2017년엔 ‘태평양을 건너: 벤쿠버의 홍콩아티스트와 화이 투시: 무정부 시대의 유물들(Pacific Crossings: Hong Kong Artists in Vancouver and Howie Tsui: Retainers of Anarchy) 한땐, 홍콩과 벤쿠버 예술의 연결점을 찾기 어려웠었지만 이제는 좀 더 확고하게 그 관련성을 찾을 수 있으며, 두 도시의 아티스트들의 대화가 훨씬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라건대, 역사적 기록의 형태로든, 구연되는 이야기나 건축 디자인이나 또는 그 어떠한 예술의 형태를 지닌 타임캡슐이 관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그리고 과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가기 위해 존재하길 바란다.

 클라라 청(Clara CHEUNG) 

 

1) SICREMI는 “The Continuous Reporting System on International Migration in the Americas.(미국의 세계적인 이민에 대한 지속적인 보도)” 의 약자다. 캐나다의 세계적인 이민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 싶다면 다음 주소를 참고 할 수 있다. : http://www.migracionoea.org/index.php/en/sicremi-en/238-canada-1-si-ntesis-histo-rica-de-la-migracio-n-en-canada-3.html 

 2) <침대 밑으로부터> 상영은 C&G 아트파트먼트 (C&G Artpartment)에서 2013년 12월에 첫 상영이 이루어졌었다. 이후 3년까지 30명이 넘는 아티스트들이”침대 밑으로부터 (Under-The-Bed)” 행사에 참여했다. 상영 세션과 공유 세션은 아티스트들을 초대하여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든 인해서)공식적으로 상영되지 않았던 비디오 작업들을 보여주고 작업 컨셉, 내용, 제작과정, 작업하는 동안 겪은 어려움들과 왜 여태 상영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 침대 밑으로부터 꺼내어진 이 비디오들은 종종 예전의 문화적 예술적 생태계에 대한 많은 질문을 야기시켰다.

 3) Pp5. 예령 치 우(Leung Chi Wo), “조쉬 혼: 죽은 물의 경기, 홍콩, 1980년대” 전시 도록, 벤쿠버: 센터 A, 2016, 참조: http://centrea.org/2016/07/josh-hon/

 4) 예령 (LEUNG, Pp10)

 5) LO. “홍콩의 민주주의동상이 최후를 맞이하다(The Statue of Democracy with a Hong Kong Face in the end.)”2016. https://theinitium.com/article/20160527-culture-goddessofdemocracy-64tiananmen/

 6) Pp233-235. 컹 치 싱 (KUNG Chi Shing) 에디션 “박스책 제3편”(The Box Book). 홍콩; MCCM 출판. 2009.

 7) Pp41. 호 셀리나 출판 (HO Selina Chulfan), 웬 야오(wen yau) 에디션. 

 8) 컹(KUNG) .Pp 236

 9) 번역자 주: 우산시위, The Umbrella Movement (Chinese: 雨傘運動)는 2014년도 홍콩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민운동을 의미한다. 2013년도에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는 “사랑과 평화의 센트럴 점령 (Occupy Centra, 佔領中環)으로 불려지다가 아담 코튼이 그 해 9월 29일에 트위터에 홍콩 경찰들의 최루탄, 최루액, 살수차 진입을 우산으로 저항하던 시민의 모습을 “우산혁명” 이라고 언급하면서 이후 ‘우산시위’라는 표현이 더 대중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참조: http://www.independent.co.uk/news/world/asia/hong-kong-protests-in-pictures-the-umbrella-revolution-9761617.html

 10) ‘문화적 가뭄의 시대 (Cultural Desert)’ 라는 말은 ‘순수예술’이 부족한 문화적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경제적 활성화를 이룩한 홍콩에서 소비문화와 대중문화가 지배적이었을 때 사용되었다.

 11) 이 극단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면 : http://www.hongkongexile.com

 

글。 클라라 청(Clara CHEUNG)

아티스트 그룹 C&G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기획자.

 

그림。 수산 챈

홍콩과 중국 정부의 민주화 운동 억압을 비판하는 일러스트와 포스터를 그린다. 시위 현장의 ‘범죄자’들이 복면을 쓰고 선행을 하는 <범죄자 연작>이 유명하다. 홍콩 경찰이 모든 '범죄자'들 에게 그 경중과 관계없이 복면을 씌운다는 점에 착안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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