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청량한 미묘함 : 카라 워커와 카라 루니의 인터뷰

 

카라 워커의 작품들은 인종적 불평등을 대담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그녀는 원형 파노라마를 가득 채운 실루엣 벽화부터 파격적인 영상과 드로잉, 판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최근 <크리에이티브 타임즈>와 협업한 작품에서 그녀의 관심사가 변화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존 작품에선 미국 남부(남북전쟁 이전의) 면화농지와 관련된 이슈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와 비슷하게 불편한 ‘설탕 무역’에 대해 다루었다.

카라 워커는 크리에이티브 타임즈의 요청으로 <하나의 미묘함(A Sutlety)>이라는 거대한 설탕조각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웅장한 설탕 아기(The Marvelous Sugar Baby>, 혹은 <이제는 철거되는 도미노 설탕정제공장에서 한 때 사탕수수밭에서 우리의 부엌까지 정제된 단맛을 전달하느라 무임금과 초과노동에 내몰렸던 연약하고 아름다운 슈가 베이비들을 위한 오마주 ( an Homage to the unpaid and overworked Artisans who have refined our Sweet tastes from the cane fields to the Kitchens of the New World on the Occasion of the demolition of the Domino Sugar Refining Plant )>란 제목으로 5월 10일에 공개되었다. 제목을 보고 다들 눈치 챘겠지만, 이 작품은 결코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2014년 5월 초, <브루클린 레일>의 예술부문 에디팅을 담당하고 있는 카라 루니와의 인터뷰에 워커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응해주었다. 우리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속마음과 앞으로 작품이 복합적인 정치-사회부문에 가져올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카라 루니(루니): 이번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진행되었더군요. 정말 세부적인 진행사항도 알기 힘들게 베일에 싸여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정말 소수의 기자들만 완성 작품이 어떨지에 대해 알고 있는데, 혹시 독자들에게 5월10일에 그들이 전시 공간에서 마주할 완성 작품이 어떨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카라 워커(워커): 아, 정말 누설 싶지 않은데. 비밀의 매력은 정말 비밀로 남아있을 때잖아요.

루니: 그렇다면, 내러티브에 대한 이야기로 가볍게 이야기해봐요. 이제까지 내러티브는 작가님의 작품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제작하는데 있어서 설탕무역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워커: 이번 프로젝트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예전에 한 1년전쯤인가, 크레이티브 타임즈로부터 ‘도미노 설탕정제 공장’을 사용해 작업하는 것은 어떻겠냐?’ 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 제안에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오로지 공장 때문이었어요. 도미노설탕 공장은 놀라운 설탕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하는 노예제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수년간 당밀이(molasses,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담황색 액체) 쌓여 공장 내부를 전부를 코팅하고 있는데, 정말 대단한 역사적 유물이죠. 굉장한 역사들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선박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한 마디로, 장소가 거의 작품의 효과를 내는데 전반적인 역할을 했죠. 이번 작품을 구상하면서 이전까지 저의 작업을 돌아봤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이제까지 주로 2차원에서 펼쳐질 수 있는 작업을 해왔더군요. 영상작업이나 비디오작업을 생각해봐도 이 만큼 크게 진행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많은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어요. 각각의 스케치는 정말 최소한의 몸짓에서 시작해 수많은 움직임을 가진 최고의 결과물로 이어졌어요. 그것은 노예, 산업, 설탕, 지방, 굉장한 낭비에 대한 내용을 다 담고 있었어요. 결국 이러한 스케치는 제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포함하기에 이르렀어요. 정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 정도로 비관적인 산업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산업화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일어났던 탈산업화 시대의 미국의 모습과 그 당시 영농의 시발점이었던 설탕사업의 모습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보죠. 여러분은 절대로 대대적인 작업 없이 정제된 설탕을 맛볼 수 없어요. 대대적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정제된 설탕이 아닌 다른 것을 맛보게 되겠죠. 정제된 설탕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와 흑설탕이 하얗게 변하면서 어떻게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처럼 설탕은 수많은 이야기를 함축한, 매력적이고 상징적인 소재죠.

루니: 혹시 설탕무역의 역사와 도미노기업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기 위한 정보를 어디서 찾으셨나요?

워커: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Sweetness and Power) : 현대사에서 설탕의 위치>(1985) 의 내용을 참고했어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중세시대 유럽과 영국에서 어떻게 설탕이 매우 귀하고 비싼 상품이 되었는지 설명했어요.

루니: 그러니까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군요.

워커: 맞아요. 설탕은 귀했고, 심지어 치유력이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는 설탕이 금처럼 매우 귀했어요. 이상하고 장대한 설탕조각이 술탄의 유물로 전해지던 11세기의 어느 날부터 동양으로부터 유입되었어요. 엄청난 노고를 들여 탄생한 설탕조각이 인기를 끌자, 술탄은 축제날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는 전통을 가졌는데, 이러한 전통이 북유럽 왕실요리사들이 비슷한 설탕조각을 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죠. 저는 이러한 설탕조각이 ‘정교함-서블티(subtleties)’라고 불렸다는 사실에 놀라웠는데, 정말 말 그대로 정교했어요. (웃음) 그 조각들은 단순한 귀한 상품이 아니라 왕권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였어요. 또한 일종의 샤냥, 또는 조약을 체결한 증표와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니까 만약 여러분이 사슴과 왕이 조각된 설탕조각을 가졌다면, 작은 시나 연설을 간략하게 한 후 다같이 먹었을 거에요. 이 아름답고 먹을 수 있는 트로피는 간식 시간에 주어졌을 겁니다. 제가 거대한 설탕 조각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건 바로 이 부분을 읽고 나서였어요. 따라서 이제야 루니씨가 던진 첫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겠군요. 그러니 중세시대에 존재했던 이 설탕 조각이 저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거죠. 이 설탕조각물은 간단하게 말해 새로운 세상의 스핑크스예요. 미국인들의 상상 속으로 굴러들어온 돌처럼 흑설탕 문제는 성과 노예 문제와 결부되어, 대서양을 횡단해 노예무역이 미국에서 행해지게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설탕공장이 한 몫 했어요. 제가 말하는 새로운 세상은 바로 이러한 모든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설탕공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을 말해요.


루니: 저에겐 이 스핑크스가 팜므파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그렇다면 혹시 이 신세계의 스핑크스가 흑인 페미니스트 문학과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나요? 뭐 예를 들면 70년대 앨리스 워커가 일으킨 그런 문학 말이에요. 아니면 이 작품은 좀 더 본능적이고 개인적인 것과 관련 있나요?

워커: 물론 좀 더 개인적인 것과 연관이 있죠. 제가 보기엔 작품의 크기가 아마 여러분이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압도할 것 같은데요. (웃음) 우리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80톤이 넘는 설탕을 썼어요. 대략 24m(80ft) 길이에 12m(40ft) 높이를 자랑하는 이 스핑크스는 엄밀히 말해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독특한 방식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스핑크스 주변에는 자신의 3분의 1만한 크기의 귀여운 설탕조각 친구들이 배치되어있구요.

루니: 그 친구들은 어디서 영감 받은 건가요?

워커: 사실 그들은 제가 아마존에서 구매한 10인치 크기의 토치카(tchotchke, 조그만 골동품 장난감을 말한다) 장난감을 본떠 제작한 거예요. 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아 운반하고 있는 작은 흑인 남자아이인데 대게 우스꽝스럽게 생겼어요.

루니: 이번엔 설탕을 주 재료로 사용해 작업을 해보셨는데 어떠셨어요? 백인들이 흑인이 가진 잠재적 힘이나 맹렬함, 수치심, 저항에 대해 가지는 공포심을 주제를 다루셨는데, 이같이 어려운 주제로 작업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주제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이전까지 해온 작업방식이 더 끌리나요? 이전까지는 실루엣을 잘라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 드로잉을 그리기도 하고 영상작업으로 주제를 표현하시곤 했잖아요.

워커: 솔직히 이전의 방식이 훨씬 더 좋았어요! 아니다, 사실 더 나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종이 같은 것을 자르는 게 참 좋아요. 근데 어쩌면 그건 단순히 더 익숙하고 편안해서 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제 신체를 사용하는 일이잖아요. 뭐, 두 작업방식 모두 값싼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지만요. (웃음) 값싼 재료는 언제, 어디서든 구하기가 쉽잖아요. 하지만 두 작업방식 모두 일시적이고 정말 가볍고 여린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하기 매우 까다로워요. 보통 페인팅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저에겐 실루엣으로 작업할 때 느껴져요. 다른 차원과 다른 스케일로 끌어들이는 움직임이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되는 것 같거든요. 저는 작품이 매우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에 제 몸을 따라 움직일 뿐이에요. 설탕조각은 그냥 설탕과 물이 섞인 반죽 같아요. 한 번 재료들을 다 넣고 모양을 본떠서 만들 틀만 있다면 쉽게 가지고 놀 수 있어요. 다만, 열을 가할지 말지에 따라 정말 걷잡을 수 없이 다른 모습을 얻게 되겠네요.

루니: 그러니까, 18세기의 실루엣 공예방식을 차용해 만든 이번 설탕작업은, 이전 방식을 좀 더 물리적 방식으로 바꿔 작업한거군요.

워커: 그런것같아요. 뭐 말 그대로 봐도 그럴 것 같네요. 우린 정말 설탕발린 세상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웃음) 저는 설탕을 이용해 다른 두 가지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리고 여기서 명확하게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네요. 메인으로 만든 조각은 설탕으로 덮인 스핑크스예요. 작은 조각은 하인의 형상을 하고 있죠. 행렬을 지어 서있는 이 들은 간단하게 말하면 커다란 롤리팝이에요. 정말 작업하는데 힘들었어요. 우리가 만든 틀로 만든 그 조각들은 현재 고체화 되어있지만, 그들이 형태를 유지할 지는 저희도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처음으로 만든 건 바로 무너져버렸거든요. 그 순간 정말 아찔했지만, 또 한 편으론 엄청 경이롭다고 느꼈어요.  무너져 내려버린 그 조각은 정말 아름답고 캐러멜화 되어 녹아버린 호박보석 덩어리 같았거든요. 상당히 깨지기 쉽고 변덕스러운 물질이라 다양한 형태로 변환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나름대로 괜찮았어요. 저는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쉬이 집단에 따르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데요, 개개인마다 다르듯, 그들도 집단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일으킨 반항 한 게 아닐까요?

루니: 정확히 무슨 색깔을 띄고 있는 거죠?

워커: 그들은 전부 다른 색깔을 띄고 있어요. 가장 많이 서있는 형태는 갈색을 띠고 있는데, 그들은 열을 가해 태운 경우예요. 캐러멜의 형태에서 태워서 구슬처럼 굳혀진 건데 매우 어두운 색깔을 가지고 있죠. 처음으로 만든 거는 정말 아름다운 호박보석과도 같은 색을 가졌었어요. 마치 그릇에서 녹아 흘러내리는 캐러멜 시럽과 같았죠. 정말 딱 그 색이었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너무 부드러웠어요.

루니: 그러면 큰 조각도 호박색을 띄고 있나요?

워커: 아뇨, 스핑크스는 정말 밝고 순수한 흰색이랍니다.

루니: 저는 작업에 이용된 색들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18세기 공예작업을 따와 만든 이전의 실루엣 작업에선 검은색이 내재되어있었어요. 반면에 이번 작업에선 저희에게도 익숙한 하얀 설탕가루를 사용했지요. 거기에다가 이런 설탕을 이용해 작업하려면 엄청난 화학적 변형작업이 필수적이었어요. 이런 점에서 보면, 기존의 실루엣 작업은 참조한 내용을 이상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번 작업은 같은 물리적 전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외로 추가적인 단계가 필요했던 작업이었네요.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 자연적인 상태에서 인공적인 상태로 가공하는 역순적인 진행방식으로 이번에 작업하셨는데요. 이러한 작업방식이 작가님께 어떻게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왜 굳이 스핑크스를 이토록 눈부신 흰색으로 만들어 갈색, 또는 검은색에 가까운 것들과 대조를 시킨 거죠?

워커: 저에겐 검은색과 하얀색, 이 두 가지 색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어요. 저는 설탕을 이용해 만든 모든 제품들을 생각했어요. 당밀이나 흑설탕이나 천연 설탕을 사용했을 수도 있고 정제된 하얀 설탕을 이용했을 수 도 있는 그 모든 제품들을 생각해봤죠. 저는 이러한 다양한 설탕종류를 집에서 요리해보기도 하고, 다른 종류의 사탕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어요. 다양한 끓는점을 시험하면서 그들을 꺼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기도 했고요. 정제공장 내부 벽에 있는 당밀과 하얀색이 대비 되는데, 정말 시각적 충격을 저도 맛보았어요. 더불어 저 또한 내부의 검은 요소로 서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지요. 공장은 화이트큐브가 아니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뒤집기 위해 도입되었고 아마 여러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 우린 정제된 설탕을 원하고, 이러한 정제되는 과정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말이에요. 이 프로젝트는 순백 연구를 위한 기념물인 거죠. 순백이 의미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탐구에 대한 증거물로 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덧붙여, 이는 대륙과 인간과 신체와 생태계를 자신들의 이상향에 맞춰 지배하려는 기득권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해요. 맞아요, 스핑크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뒤집어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정말 몇몇 부분은 정말로 시선을 강탈할 수 있는 요소도 가지고 있답니다. 빛이 들어오는 데 정말 어떤 각도에선 설탕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빛나 보였어요. 사실 정말 말도 안 되게 멋졌어요. 아마 모든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일 거에요. (웃음) 

루니: 작가님은 예전에 만화적 옆모습의 미니멀리즘 형태가 실제 인간의 모습을 환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하셨었어요. 이러한 방식으로 인종적 고정관념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투영할 수 있다고 설명하셨죠. 이번3차원 작업에선 정체성을 평면화 시키는 기존의 작업 방식이 파괴되었어요. 이러한 차원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나요?

워커: 물리적으로, 분명 이동을 했죠. 하지만 이전 작업과 이번 작업 사이에서 오묘하게 작용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저는 “이것은 실루엣과 동일한 방식이야”라고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관객에게 기대치를 먼저 설정 해놓고 작품이 보여지는 과정 속에서 기대치가 복잡하도록 만들어요. 3차원적 모형,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번에 만든 스핑크스와 같은 작품은 하나의 상징물이 되고 엄청나게 우상화 되는 거죠. 이러한 방식은 실루엣으로 그려진 고정관념형태들이 작용하는 방식과도 유사합니다. 다른 형태로 인류가 축소시키면서 또 동시에 인류를 초월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의 작품은 하나로 요약할 수 없는 인생보다 더 큰 것을 담고 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 다음 작업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방식이 아니란 점에서 이전의 방식과 차이가 있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볼게요. 저는 현재 작업실에 있지 않아요. 저는 어제 작업실에서 제작자와 함께 팀을 이루어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작업했어요. 그건 제가 이제까지 해온 방식이 아니었어요.

루니: 당신은 좀 독특하게 모든 작업을 수작업을 통해 해내죠, 제가 맞나요?

워커: 네, 기록화 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작업 때문에 나중에 수작업 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하는데, 대게는 이런 수작업은 작품이 거의 다 완성 된 후에 이루어지죠.

루니: 작업에서 손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워커: 그게 좀 이상해요.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 옆에 있으면 회한하게 되요. 회환한 감정과 고마운 감정이 동시에 들죠. 그들은 제 스케치, 노트, 드로잉 같은 것들을 아주 멋지게 바꿔줬어요.

루니: 당신의 작품들은 보통 매우 길고 서사적인 묘사를 담고 있는데요. 그런 면에서 제목은 작품에서 대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설치물의 제목도 이전처럼 비슷하게 길어요. 작품의 이름을 짓는 방식은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죠?

워커: 이번엔 약간 웃겼다고 해야 하나? 정말 모든 과정이 너무나 극적이었거든요. 제가 갤러리에서 전시 할 때는 남들이 피하고 싶은 생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요. 모더니즘이나 어쩔 수 없이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생각들은 보통 접근하고 싶지 않잖아요. 여러분이 원하든 원치 않든, 상당히 제가 창조한 세계에 들어오는 거죠. 좋아할 수 밖에 없게 강요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어요. 예전에 이번 전시를 위한 타이틀을 ‘미묘함(subtler): 좀 더 정교하게’로 정할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프로테스탄트들이 좋은 예술과 좋은 경험에 금욕적인 모습으로 접근하는 것 같았거든요. 네, 그래서 결국 제 전시 타이틀은 극적이거나 어쩌면 조금 고압적이거나 꾸며낸 티가 느껴질 수 도 있어요. 작가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굉장히 경이로운 일이라고 봐요. 그러니 같이 즐기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나요?

루니: 그러니까 타이틀이 극적임과 동시에 역사를 다시 쓰는데 이용되고 있는 거네요?

워커: 또는, 제가 만들어 놓은 갤러리 속 설정들과 함께 그러한 내용을 주장하는데 이용되죠. 순간적으로라도 기득권이나 그 어떠한 것으로부터 통제권을 제가 움켜쥐고 있으니까요.

루니: 확실히 관객들이 해석할 여지가 적어요. 그렇다면, 충분하지 못한 표현 방식을 돕기 위해 강압적인 분위기가 관객의 시선방식을 바꾸는데 필요하다고 본건가요?

워커: 루니씨는 강압적이라고 느꼈어요? 저는 대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루니: 저는 둘 다라고 봐요. 그래서 그런 요소들이 작업을 설명한다는 점이 대단한 거죠.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잖아요.

워커: 맞아요, 말만 번드르르 하죠. 부두교와 관련된 감이 없지 않아 있죠. 제 작품을 지배하는 힘을 추측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지휘권을 제가잡고 관객들에게 그걸 설득시키려고 하는 거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사실인걸요! 정말 그런 것 같다니까요! (웃음) 사실 심지어 저도 항상 그렇게 된다고 믿지는 않지만요. 

루니: 이전에 청년작가시절 작업 할 때 애드리언 파이퍼 (Adrian Piper)의 영향을 받았었다고 했었어요. 제목을 강조하고 전반적으로 텍스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보아하니 말인데,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할 게요. 파이퍼가 언어를 활용한 작업방식이 어떻게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준거죠?

워커: 제가 생각하기엔, 그녀의 영향은 제가 “다름”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제 몸과 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과 같은 다른 존재들 말이죠. 가끔은 관객은 그런 생각이 언제 인지되고 있다는 것을 잊고 당신의 몸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객관화시키고 제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거부하도록 제2의 가상현실과 서사를 만들어내기에 이르죠. 파이퍼의 작업들은 저와 얽힌 다양한 관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제 자아를 하나의 주제로, 또는 물체로 바라보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말이죠.

루니: 검열은 여전히 당신에게 현재 진행형이죠. 심지어 맥아더 재단에서 “천재”임을 인정받고 그 상을 받은 뒤 논란에 휩싸였던 게 15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2012년에 뉴왁 공공도서관에서 작가님의 드로잉 작품이 일시적으로 전시를 금지하기도 했어요. 정말 놀라웠던 건 인구통계학상으로 뉴왁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수가 엄청나는데 말이죠, 그 이미지가 인구에 비례해서 너무 “인종차별적”이라 여겨진다고 평가 받았다는 거였어요. 도미노 회사도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공공장소이고 비 미술계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위치라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인 것 같은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워커: 맞아요, 이게 바로 우리가 지금하고 있는 대화의 핵심이죠. 그건 그 자체로 논란거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여성을 표현한 게 문제시 된 것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그녀가 흑인이라는 특성이 문제가 됐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우상인가? 그녀는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가? 형상이 강한가? 심신을 약화시키진 않는가? 이러한 잠재적인 논란을 전부 떠나서 전 정말 이 작품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저는 모르겠어요. 저는 작업할 때 이와 같은 전략적인 생각을 미리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다만, 감각적으로 제가 세상 속에서 꿈틀거리는 저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할 뿐이죠. 이번 작품 속에 저는 제가 뒤죽박죽으로 만든 유머를 담아 만들었어요. 이 유머코드는 뉴저지에서 전시된 드로잉 속에 내재된 유머와 일맥상통하고요. 저는 그 드로잉을 참 좋아했는데 그 좋던 기분이 뉴왁의 도서관에 전시되기 직전에 알았던 그 누구와 함께 사라져버렸어요. 그리고 동시에, 많은 이야기와 논란에 휩싸였던 그 사건이 발생한 그 당시에, 그 드로잉 덕에 저는 교육자가 되는 기회를 얻었답니다. 

저는 대중들이 제 예술을 사랑하기 위해 그들을 바꿀 생각은 없으나 어떠한 과정이 작품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요. 특히 예술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던 많은 관객들에게 가끔 예술은 그들에게 그저 일상처럼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예술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 설명이 필요하지 않죠. 그들에겐 그러한 명백한 과정의 뒤엔 개인이 존재해 예술로 표현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갤러리와 박물관들이 관객들에게 잘못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들은 관객들이 그 작품에 반응할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거든요. 관객들이 작품에 반응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기껏해야 ‘공개 토론회’나 ‘아티스트토크’ 같이 지루한 형태로 제시할 뿐이죠.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관객들이 작품에 분노하거나 혹은 반대로 감동을 먹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흑인 커뮤니티에선 이러한 ‘부름과 반응’의 과정에 대해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어요. 흑인교회, 춤, 음악 속에서 이루어지는 흑인커뮤니티는 활발한 예술교류가 어떻게든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간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공간이지, 공포감에 휩싸여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맥없이 작품이 벽에 걸려있는 공간들이 아니에요.

루니: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측면에선, 과거의 일이 생각나네요. 90년대 초에 로버트 메이플토로프의 X-포트폴리오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어요. 그 때 기관에선 관객들이 순수하고 정중하게 이미지와 다른 사람의 관점을 볼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심미적 거리를 두어 보도록 전시를 기획했죠. 다행스럽게도, 작가님은 데이브 히키와 같은 비평가를 두셨어요. 그는 기관이 설정한 이러한 시점에 반대하며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 이미지는 원래 도발적인 작품이고, 그렇게 자극을 하기로 되어있는 작품입니다.” 라고 말하셨죠. 그래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저는 작품이 정말 엄청난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논란이 일어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이는 작가님의 작품이 세상에 기여하고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일지도 몰라요.

워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루니:  다시 도미노 설탕정제 공장의 주제로 돌아가서 이야기해 볼까요. 그 설탕 공장은 참 무거운 공간이에요. 인종과 신분에 대한 격동과 투쟁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역사까지 담긴 공간이니까요. 첫 공장은 1882년도에 지어졌어요. 189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에서 소비되는 절반 이상의 설탕을 제조하기도 했죠. 따라서 그 공장은 그 건축물의 외관상 하나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이면서 동시에 100년이 넘는 미국의 활기와 소비를 담당하던 공간이었어요. 

심지어 더 이상 노예들에 의해 설탕들이 재배되고 제조되지 않던 19세기 후반까지도, 공장은 최저 시급 노동자와 극심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계속 운영되었어요. 최근 2000년도에는 뉴욕 시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노조파업이 일어난 장소로 알려졌죠.  약 250명이 넘는 파업 노동자들이 시급과 노동조건에 대해 20달 넘도록 시위했었어요.

워커:  결과가 좋지 못했죠.

루니: 네, 그랬어요. 당신이 이러한 사실에 기반한 역사와, 정보들을 알고 그 공간에 들어가 공간을 바라보았을 때 어땠어요? 좀 다르게 보였나요? 당신이 만든 작품이 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 그 공간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워커: 엉망이 됐죠. 제 작품은 언제나 그랬듯이 본래의 공간과 역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침묵) 세상에 있는 모든 설탕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러한 설탕덩어리를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을 거예요. 도미니카 공화국부터 쿠바까지, 그리고 설탕을 제조할 수 있는 모든 섬들로부터 설탕을 모아 한 곳에 옮기고, 또 그것을 뉴욕사람들에게 가져오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겠어요. 거기서 끝이 아니죠. 이렇게 운반된 설탕들은 또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양의 압력과 열과 원심력과 인력을 동원해 마침내 표백된 설탕을 만들어 냈을 거예요. 아, 정확히 말하자면, 표백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흑설탕을 하얀 설탕으로 바꾸어놨다고 해야겠네요. 그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 수십 년간 공장에서 일했던 남녀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내려오는 비법들이 동원되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냄새와 증기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그 공간 내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당밀로 남아 존재하고요.

루니: 그 당밀 벽은 미국의 원죄에 대한 끈적이고 질척거리는 증거물 같아요.

워커: 맞아요. 거기서 일했던 모든 사람들의 세포 속엔 자극적이고 메스꺼운 설탕냄새가 그득하게 존재할 거예요. 저는 날카롭게 노동상황을 묘사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대신 찬란했던 과거와 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극하려고 했어요. 우리가 긴자 피라미드를 만들었던 신비로운 사람들에 대해 언제나 궁금해하듯이 그런 과거를 생각하게 만드는 유물과 폐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이 공간에는 경이와 놀라움이 함께 있죠.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설탕사업과 그 뒤에서 일어난 노동력을 배제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저는 설탕과 노동력을 담아 어떤 것을 창조하고 싶었어요. 설탕과 노동력은 현시점과 과거와 설탕 제조과정에 관한 모든 역사를 담고 있죠. 현시점에서 그런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담지만 잃어버리고 놓친 끔직하고 슬픈 이야기를 이끌어냈으면 했어요. 이 작품은 거대하지만 또 매우 일시적입니다. 완전히 연약한 것들로부터 만든 이 작품은 환경과 시간을 담았어요. 그리고 굉장한 매력도 또한 작품 속에 존재하길 바라요.

루니: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할게요. 방금 전에 계층간의 문제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셨어요. 이는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부터 제기되었던 이슈입니다. 공장 지대 주위는 사실 벌써 브루클린 해안가의 거대한 주택단지를 건축하기로 계획되어있어 벌써 철거되고 있어요. 건물의 앞으로의 운명과 현재 뉴욕 전 곳곳에서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고급주택화를 앞의 상황과 함께 고려했을 때, 작가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 작품을 인종과 계층의 역사적 전투지로서, 그리고 고급스런 콘도 단지가 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갈 이 곳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이 지대의 700가구가 저소득층을 위한 집을 짓기로 계획되었으나 이는 전반적인 건설사업의 30퍼센트만 나타내고 있다)

워커: 제가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줬는지는 모르겠네요. 저는 심지어 작업 전부터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두 편협한 현상들로 인해 일어나는 일을 상징한다고 봐요. 기업과 산업과 돈과 같은 것들이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그 누가 다치든 상관없이 자꾸 앞서나가는 그런 현상들을 말이죠.

저는 전문 사기꾼입니다. 저 스스로 제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제가 헤라클레스와 같이 영웅적인 모습으로 저를 다지기 위해선, 제가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고 스스로 세뇌시켜야 합니다. 지금 이러한 프로젝트 뒤에서 일한 제작자들이 이 말을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이동, 고급주택화, 건설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일로 무일푼이 된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대게 곤란한 위치에 서있어요. 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수혜자이자 발등을 찍은 도끼였거든요. 제가 도시에서 산지 12년이 넘어가는데요, 공사는 절대 끝날 것 같지않았어요. 도시는 아직도 계속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내쳐진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참 이상한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에는 계속 투쟁과 분투를 조장되는 엔진이 돌아가나 봐요. 여기까지 오니 이런 궁금증이 생각나네요. 사람들이 해안가로 몰려 그곳에 있는 콘도 빌딩 꼭대기까지 내몰린다면, 그렇다면 그때쯤 이 움직임이 멈출까요? 도대체 언제면 멈추는 건가요? 언제쯤이면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이 완성되는 거죠?

루니: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그런 힘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저는 이 프로젝트가 그런 방법 중 하나라고도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워커: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 작품이 그런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들진 않네요. 제 작품이 한 때 존재 했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마치 시적인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뭐니 해도 저의 간절한 소망은 제 작품이 떠나고 난 뒤에도 그 영향력이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해 이어지는 거예요. 잊혀져 버리는 또 다른 기억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설탕공장에서 일했던 모든 사람들을 되새길 수 있는 하나의 전승되는 기록으로 이어지길 바라요. (한숨)

인터뷰어 - 카라 워커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회화와 판화를 전공했다. 1994년 뉴욕 드로잉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지속적으로 인종과 젠더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https://www.moma.org/artists/7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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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적 대응- 젠더 게임과 예술체제

         2014년 4월의 어느 날, 아티스트 카라 워커를 인터뷰했다. 우린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옛 도미노 설탕 제련공장에 설치되었던 그의 작품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브루클린 레일> 5월호에 실린 우리의 담화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종과 계층간의 갈등, 노동력 착취와 분열을 일으키고 유지시키는 그 외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다뤘다. 워커의 작품 <설탕 조각 장식품(A Subtlety)> (2014) 은 비록 몇몇의 페미니즘 영역 내에선 논란이 되고 있지만, 페미니즘 영향력과 무임금 노동에 대해 사회정치적으로 경의를 표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실비아 페데리시(Silvia Federici)는 무임금노동이 미국 자본주의의 기초인 기타 노동 생산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이상적인 성문화를 내포한 워커의 작품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자리잡게 됐다. 마치 진보와 망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유산들로 무장한 어마무시한 키메라(사자의 머리에 염소 몸통에 뱀 꼬리를 단 그리 신화 속 괴물) 같은 형태로 말이다.

워커의 프로젝트는 그 해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동안 이루어진 퍼포먼스, 프로젝트, 패널, 전시 시리즈들 중에서 정점을 찍었다. 작가이자 오랜 사회적 운동가인 수잔 레이시(Suzanne Lacy)는 <대문들과 길 사이>라는 즉흥적인 퍼포먼스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현재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초기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브루클린 박물관(Brooklyn Museum)과 크리에티브 타임즈(Creative Times)의 2013년 가을 합동 프로젝트에서 선보였다. 2014년 겨울엔, 브루스 하이퀄리티 기관(Bruce high Quality Foundation)이 <더 라스트 부르스니엘(The Last Brucennial: 뉴욕의 독특한 비엔날레)>에서 모든 여성의 문제를 다루었던 반면, (상당히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아모리쇼에선 <여성은 어떻게 그려져 왔는가(Venus Drawn Out)>으로 첫 선을 보였다. 집이라는 좀 더 친근한 소재를 가지고 스코어(Schor)는 덤보의 A.I.R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던 획기적인 <1972 여성의 집(Womanhouse)> 작품을 회고하는 주제로 전시를 큐레이팅했다. 작가 미콜 헤브론(Micol Hebron)은 진행중인 <갤러리 총계> 프로젝트로 예술계의 제도적 측면을 비판하여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크라우드 소싱과 이미지를 콜라보하는 방법으로 갤러리 뒤에서 벌어지는 남녀 불평등에 관한 통계학적 표본을 기록했다. 위의 모든 것들과 더불어 여전히 논란에 휩싸이는 푸시 라이엇(Pussy Riot, YAMS COLLECTIVE는 “HOW DO YOU SAY YAMINAFRICAN?” 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은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공개적으로 철수를 시켜 큰 주목을 받았다.)과 나의 수많은 패널 참가자들과 클리트니 페레니얼(Clitney Perennial)과 같은 페미니즘 중재자들은 이러한 이슈에 내가 더 깊게 파고들도록 북돋았다. 고로 이번 에디션은 예술계의 성차별문제의 상당히 어려운 질문들을 가지고 씨름하였는데, 특히 여성의 표본과 발언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된 주제와 관련 된 전시의 부활과 뒤이은 페이스 북 COO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lean in(여성의 적극적 행보)” 선언과 더불어 이른바 페미니즘의 “4차 물결”이라 일컫는 현상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아티스트이자 작가인 수잔 비(Susan Bee)는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현명한 그녀의 생각을 기고에서 보여줬다. : 나는 여성의 적극성이 문제라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는 충분히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문제는 컬렉터와 옥션하우스와 예술기관들에 의해 영구화된 유리벽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허핑턴포스에서 전 모마 이사장인 아그네스 군드(Agnes Gund)는 디아비콘의 칼 앙드레(Carl Andre) 회고전에 대항하여 ‘No Wave Performance Task Force’가 저항시위를 선보인 것처럼, 제도적 측면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점점 더 일반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저항 활동은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제도적이고 교육적인 인프라 구조 속에서 인종적 평등이나 양성평등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1971년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유명한 에세이 “왜 아직까지도 위대한 여성화가가 없을까?” 에서 처음 등장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문화를 규정짓는 가부장적 조직체계의 변화다. 완벽하고 완전한 혁명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이에 따라, 기고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과 질문을 확장시킬 글을 써야 한다.  무엇이 바로 이 시기에 페미니즘과 젠더 의식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는가? 최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페미니즘 예술에 대한 명성이 사회적 진보와 제도적 중립화의 조짐인가? 또한, 이러한 “승리”의 움직임이 가속도가 붙었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이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은, 2차 물결 배너가 들어올려진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우리는 여전히, 양성평등에 대한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가?, 이다. 예술체제가 두드러지게 백인 남성의 관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여성, 남성, 트렌스젠더,그리고 동성애자 등, 이와 같이 수많은 자아를 가진 개인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신 자유주의 자본가에 의해 지배 받는 현 예술 체계(이러한 체계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다)에 대항해야 하는가? 

예술계 안에서 (혹은 전반적인 분야에서) 남녀평등에 대한 주제는 분명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며, 이렇게 제한적인 몇 발행물의 페이지로 완벽하게 다룰 수 없다. 다만 나는 우리 독자들에게 토론을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다. 남들과 생각이 때로는 일치하기도, 또는 아니기도 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견해가 오고 갈 수 있는 그러한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는, 그러한 시작점을 제공하고 싶다. 이 칼럼란은 결코 모든 답을 줄 수 도, 또는 이러한 주제를 알리는 방대한 발언과 반체제적 주관 모두를 담을 수도 없다. 그러나, 저항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그 동안 가부장적 신 자유주의 자본가 시스템의 기득권 세력으로 영구화된 불평등은 우리의 삶과 몸과 예술을 지배해왔다. 모든 것을 떠나 이러한 불평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우리는 결국 잊혀져 가는 역사의 흐름을 명확히 바꿔야 한다. 작가이자 철학가였던 비아트리츠 프레치아도(Beatriz Preciado)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했다.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로지 다 함께 생(生)정치학적 방식으로 예술을 실천 할 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다 함께 동참하자.

 

글。 카라 루니(Kara Rooney)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이자 비평가이다. <아 트 인 아메리카>, <브루클린 레일>, <하이퍼갈릭> 등에 기고 하고 있다. http://www.karalrooney.com

인터뷰이。 카라 워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회화와 판화를 전공했다. 1994 년 뉴욕 드로잉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지속적으로 인종과 젠더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https://www.moma. org/artists/7679

그림。 이세영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방황하던 중 야심차게 동대학 원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하였으나 내가 생각했던 디자인은 이게 아니라며 배짱좋게 자유의 길(?)을 찾아 떠난다. 대학 때 해보 고 싶었던 영화미술을 하고 인생의 쓴 맛을 본 뒤 인생은 이런 것이구나 깨닫기 시작한다. 그 후 후학을 양성하며 현재는 계 원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leese8181@ naver.com

 

Kara Rooney

<Spectacular Vernacular>전에 부쳐
리안 노먼
소박한 염원들을 마주하는 진심어린 위령제 : 지슬
김영헌
Legacy Left by 1,095 Servings of Japchae
좌혜선
타임캡슐을 타고 떠나는 벤쿠버 여행기- 타임캡슐을 타고 싶었던 한 홍콩인의 바람을 담아
클라라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