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ing art

나는 서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삼남매중 장녀로 태어나 자랐다. 자라는 동안 부족함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넘치는 여유가 있는 집안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열심히 돈을 벌어 삼남매를 키우고 교육시키며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가족여행을 간다던지, 외식을 한다던지, 취미 골프를 친다던지 정도였지 작품이나 값비싼 장식품,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를 사 모을 정도의 여유까지는 없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이나 미술품 같은것도 없었을 뿐더러. 가끔 온가족이 주말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고, 어린이 뮤지컬을 관람한 기억이 있다. 누구나에게 처럼 우리에게도 미술은 ‘보는것’, 음악은 ‘듣는것’이 일반적이었다. 

예술적 재능과는 아무런 관련없는 집안에서 어릴적부터 나는 돌연변이처럼 미술을 하겠다고 나섰고 그렇게 그 길로 미술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업으로 삼고 살고있다. 이십대 중반 대학을 다닐때까지도 작품을 ‘만든다’, ‘감상한다’ 혹은 ‘전시한다’의 동사에 익숙했지, ‘구입한다’, ‘수집한다’의 개념은 생소할뿐더러 피부에 와닿지 않는 먼 얘기였다. 나와 비슷한 배경에서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미술에 관심이 있고 잘 알고 있더라도 사실 선뜻 돈을 내고 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닌듯하다. 작품을 ‘사고 판다’의 개념을 피부로 느낀 때는 상업갤러리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 부터이다. 꽤 새로운 세상이었다. ‘저 비싼 작품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 욕구를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태생적으로 작품을 수집하는 고상한 취미와는 거리가 먼 집안의 장녀는 런던으로 일자리를 옮기게되며 더 큰 충격과 맞딱뜨렸다. 한국에서는 전시기획팀이었어서 주로 작가관리와 전시진행일을 하며 간간이 아트페어에서 일어나는 세일즈를 통해 콜렉터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또는 다른 동료들에게서 전해듣는게 전부였지만, 런던에서 세일즈팀으로 옮기며 목격한 일들은 초반에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가장 먼저, 나의 일상과 일의 괴리감을 극복하는 것. ‘이것은 일이다.’를 깨닫는 것. 유치하지만 내가 괴리감을 느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 역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좋아하고 갖고싶은 작품을 갖는 그들이 막연하게 부럽기도 하고, 갖지 못하는 나 자신 혹은 내 환경에 대한 유치한 실망감이랄까. 왜 나는 감상만 해야하는가! 하지만 이 유아적 괴리감은 금세 극복이 되었다. (여전히 ‘언젠간 나도 콜렉터’를 꿈꾸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큰 콜렉션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일부 미술사는 콜렉터에 의해 움직였다해도 과언이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르네상스의 메디치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모 페기 구겐하임, 영국 yBa (Young British Artists) 붐을 일으킨 챨스 사치 등 미술 역사에서 이 큰 손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술사는 달라져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이 콜렉터들은 자신의 콜렉션을 통해서 아트파운데이션이나 공공미술관을 설립해 공공에 환원거나, 작가와 미술사가의 활동을 후원하기도 한다. 챨스 사치가 지금의 yBa로 불리는 작가들의 젊은시절에 구입한 작품들을 최근 큰 차익을 내며 대부분 팔아치웠다는 소식에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본인이 구입한 작품들을 도덕적 허용 범주 내에서 공개적으로 되팔겠다는데 굳이 비난까지 할 것까지 있을까. 그가yBa를 통해 개인적 이득을 취했든 좀더 공익적 행보를 보이지 못해 아쉬웠든간에 그가 영국현대미술의 부흥을 이끈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싶다. 어쨌든 그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니까.

일반적으로 작품을 구입한다는것은 ‘사치적이고 과시적인 취미’로, 혹은 가격하락이 드문 안전한 장기적 투자상품으로 비춰질때가 많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정치 뉴스가 터질때마다 함께 딸려오는 고가미술품 은닉/매매 소식 덕분에 ‘검은돈의 주차장 (Parking black money)’ 의 인식이 강하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긍정적인 시선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인 것이 현실이다. 사실, 미술품을 투자상품으로 다루어버리기엔 일부 블루칩 작품(이미 가격이 저 먼곳에 가있는)을 제외하고는 작품의 가격이 1-2년 사이에 드라마틱하게 오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빨리 되팔아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예산에 적합한 작품을 오래 두고 보며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로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교과서적인 이상적 방향이 아닐까 싶다. 작품을 ‘검은 돈의 주차장’ 쯤으로 여기는 콜렉터들도 처음에는 좋아하는 작품을 떨리는 마음으로 품에 안았던 이런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콜렉터라는 타이틀은 처음부터 엄청난 부를 지고 태어난, 대대로 미술에 조예가 깊은 태생적으로 부여된 ‘행운’일까. 여전히 그래서 나와는 머나먼 딴 세상 이야기 일까. 물론 많은 콜렉터들이 타고난 경제적 여유나 집안의 가풍에 의해 콜렉션을 시작하지만, 특히나 현대미술에서는 생각보다 나처럼 평범한 배경을 가진 콜렉터도 꽤 있다. 타고난 부를 지닌 콜렉터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타이트하게 시작하기 때문에 더 많은 리서치와 발품을 팔아 본인만의 뚜렷한 취향과 철학을 반영하는 콜렉션을 만들어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벨기에 겐트의 안톤과 아닉 허버트(Anton and Annick Herbert)부부는 현재 미니멀아트와 개념미술계의 손꼽히는 콜렉터이다. 안톤의 직업은 방직제조기계를 파는 세일즈맨이었고, 아닉은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평범한 월급쟁이였다. 이 둘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들과 나이가 비슷한 무명의 작가들의 값싼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작가와 친분을 쌓아 직접 구매하기도 하였고 갤러리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그들의 첫 구입 작품은 로렌스 웨이너(Lawrence Weiner)의 텍스트 작품이었는데, 당시 집에 TV를 새로 사려고 모아둔 돈으로 이 작품을 구입하는 바람에 TV는 한동안 볼 수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젊은 부부가 월급을 모아 한 점씩 수집한 작품들의 작가는 지금 미니멀아트와 개념미술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가 되었고 허버트 부부의 콜렉션의 가치 뿐만아니라 그들의 안목, 꾸준한 후원은 작가의 명성과 함께 성장하였다. 허버트는 “어쩌면 부자가 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때로는 나쁜 조건일 수도 있다. 그들은 예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큰 걱정없이 그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사버리고 다음날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예산이 많든 적든, 적지 않은 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콜렉터가 자신의 관심 미술분야에 대해 빠르게 습득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타켓이 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 그 작가의 어떤 시대의 작품들이 가장 훌륭했는지, 비슷한 시기에 또 어떤 작가들이 있었는지, 앞으로의 미술계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 전문가에게 묻고 책을 읽고 모임을 갖으며 자신의 콜렉션에 지적 생기를 불어 넣기위해 그들은 웬만한 전문가들 못지않은 전문가가 되곤한다. 

콜렉션에 대한 조금 더 가까운 예를 들자면, 갤러리에서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나의 지인 역시 이제 막 작품 수집을 시작하였다. 갤러리의 적은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조금씩 돈을 모아 대안공간과 갤러리의 자선옥션, 작가 직거래 등을 통해 비싸게는 150만 원, 적게는 20-30만 원 상당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어떠한 큰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미술계에 몸담으며 저절로 좋아하는 취향이 생기며 작품 속에 뭍어나는 유머코드와 진정성이 드러나는 본인 또래 작가의 작품을 2년 전부터 여유가 될 때마다 수집하기 시작해 지금은 6점이나 된다. 작품의 물질적 가치, 작가의 유명도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코드의 작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구하기 어려운 리미티드 에디션 피규어를 모으며 뿌듯해하고 레코드나 엽서를 수집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굉장히 개인적인 행복이다. 게다가 세상에 딱 한 점뿐인 작품이라면 더 특별하지 않을까 (물론 에디션 있는 작품도 특별하다). 

하지만 이에 반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수집이라는 행위에 대해 프랑스의 철학가 쟝 보드리야르는 ‘수집’이라는 행위는 현재의 물질만능주의, 소비문화적 사회가 인간 가치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물질적 오브제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조롱했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 자체가 주로 물질적 가치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은 피할수 없는 사실이다보니 무형의 가치, 인간성, 예술조차 가격으로 매겨져 교환되고 심지어 경쟁하게 되었다. 작년인 2016년 2월 런던 소더비 이브닝 옥션에서 루마니아 출신의 젊은 작가인 에이드리안 기니(Adrian Ghinie, 1977생)의 2014년 작품이 400,000-600,000 파운드(한화 약 6-9억 원) 추정가로 나와 치열한 경합 끝에 추정가보다 무려5배정도 높은3,117,000 파운드(한화 약 45억 원)에 낙찰됐다. 20세기 거장 반 고흐의 마스터피스인 <해바라기>작품을 거대한 캔버스에 재해석 한 작품이었다. 티켓소지자만 현장 참석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옥션룸에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고 그날의 블루칩 피스들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추정가를 훨씬 웃도는 값에 낙찰되었다. 옥션 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기니의 차례가 오자 장내, 전화 비딩으로 치열했다. 최근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오직 하나뿐인 피스를 차지하고 말겠다는 마초적 콜렉터들의 치열한 비딩 끝에 이 젊은 작가의 겨우 2년 묵은 작품은 블루칩 작품값에 버금가는 가격에 비딩이 마무리되고 박수가 터져나왔다. 누구를, 무엇을 축하(혹은 위로)하는 박수와 환호일까. 그 저녁 옥션 이후 한동안 기니의 경이적인 기록은 화제가 되었다. 비딩이 추정가를 훨씬 벗어나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보통 사람인 나는 ‘와 저게 집 몇 채 값이야.’라는 본능적 놀라움과 동시에, 지금까지 그린 작품보다 앞으로 뱉어내야 할 작품이 더 많은 젊은 기니가 걱정되었다. 39살의 나이에 2차 마켓 작품값 45억이 대대적으로 공개되었으니 이 작가가 앞으로 짊어져야할 무거운 기대와 지금의 달콤함 뒤에 곧 따라올 상업적 작가라는 꼬리표와 비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왠지 측은한 마음이었다. 

        현대미술에서 콜렉션의 규모가 확대되며 주제가 다양해지고 유명인사들의 콜렉션 행보가 이목을 끌면서 그것에 대한 평가의 잣대와 이슈들이 생겨나고 있다. 과연 어떤 방향의 콜렉터가 좋은 것인가. 개인의 부를 축적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의 콜렉션을 과연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수 있을까. 우표나 신발을 수집하는것과 다르지않은 ‘수집적 행위’이지만 절대적으로 높은 희소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누구나 쉽게 선뜻 수집한다는 것이 여전히 흔한 일은 아니므로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머나먼 이야기이다. 물론, 지금 이 이야기들이 미술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작품을 수집한다는게 가치있는 경험이니 누구나 한번쯤 해봐야 한다는것은 아니다. 개인 취향의 문제이기때문에 무엇이 맞고 무엇이 좋은 것이라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조차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자 하고 그것을 수집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며 예술을 접할 일이 많은 세상 속에 살고 있으니 나만의 콜렉션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그렇게 멀게만 생각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글。 황규진

현재 런던에서 프라이빗 컬렉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림。 아댈라 리

재미있게, 멋지게 살고 싶어 태어난 곳 부산에서 도망쳐 서울로 갔고, 서울에서 다시 뉴욕으로 옮겨왔다. 작업에 있어서도 가장 궁극적으로는 재미를 추구한다. 괜히 어렵고, 복잡하고, 그럴듯 해 보이는 걸 하지 않으려고 무지 애쓰고 있다. 현재는 본인의 작품이 “너무 달아서 치명적인 불량식품같다” 라는 생각을 하 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adehla@gmail.com

 

 

황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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