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위원의 노트

작년 12월, 조용하던 저와 남편의 보금자리에 송아지만한 강아지가 들어왔어요. 골든 리트리버의 털과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성격의 이 개를 우리는 파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곧 파도의 뇌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파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안달이 난 생활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말을 하지 않아서, 파도의 사소한 문제부터 중대한 결정까지 모두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언제나 파도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지만, 정작 이녀석이 원하는게 무엇인지는 저와 남편은 영영 모를 테지요. 끊임없이 간식을 먹고 싶어하는 것, 쓰레기통을 뒤지고 싶어하는 것을 빼고는요. 우리가 알고 있는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오랜 미국 생활을 거쳐 현재는 한국에서 영어와 한글 모두를 사용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놀이로, 연습으로, 취미로,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으로 씨위드 번역가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지면을 주고, 일을 놀이처럼 하고싶은 이들에게 집행을 맡기고, 새로운 글을 읽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신문을 배포하자, 이렇게 단순하지만 좋은 의도로 시작된 씨위드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어느 동네에 사는 분들이 보내주신 글들로 빼곡해졌습니다. 번역자들의 마음이 분주해졌어요. 저는 시작부터 안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번역의 과정은 대충 이렇습니다. 견고하게 완성되어 이미 끝나 있는 글을, 트레이에 담긴 얼음을 깨듯 양손으로 쥐고 돌려 단어 단어씩 분리해냅니다. 문장은 명사와 조사 동사와 부사 등의 요소들로 바뀌어 툭툭 떨어져 나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갑니다. 작가와 내가 만나 같은 주제에 대해, 경험이나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렇대도 나는 똑같은 고뇌에 빠져 있었을까? (아마 아닌 것 같습니다)  언어A 위로 B의 색을 입힌다기 보다는, 새로운 언어C 를 만든다는게  맞는 표현 같아요. 손톱 만한 글의 조각들은 레고 조각들처럼 위 아래로 끼워넣기도 하고, 어딘가 불편한 단어 사이의 틈이 보이면 연결 순서를 바꿉니다. 어디선가 “짜장면!” 하고 외치면 건너편에서는 “피자!?” 하고 되묻는다던지, 이곳에서 “폭우”가 내리면  저쪽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내리고(raining cats and dogs)” 있다던지 하는 야단법썩이 일어나기도 해요. 작가의 심정을 글루건에 장착, 단어 사이사이를 은근히 녹이고 싶기도 합니다.  한글과 영어는 여름과 겨울이 다르듯 다르지만, 글을 보면 볼수록, 원문의 단어나 번역 언어의 유의어를 보면 볼수록, 어쩐지 제대로 된 쓰임새는 멀어지는 것 같기만 합니다. 머리로 마음으로 10미터  떨어져 글을 보고 싶고,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고 싶고, 문장을 편집하고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거친 번역가의 개입처럼 보일 수도 있고, 직역은 어디로 갔는지 한 번쯤 생각할 수도 있어요. 직역이란 원문 위에 기름 종이를 덮고 다른 언어를 적는 느낌이에요. 두 개의 언어가 동시에 보여서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 지 고민이 된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내가 아는 문자를 읽고 싶지만 다른 문자가 눈에 밟혀 그 무엇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의역이 더 나은 번역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냐면, 꼭 그렇지도 않답니다.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 납득 가능한 이유를 들 수 없는 한, 의역은 번역자의 고약한 장난이 되어버리고 말거에요. 그렇지만, 제가 이 어려운 일을 맡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최선을 다해 좋은 글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번역된 글은, 특히 한글을 영어로 바꾼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에 대한 호기심의 숨을 죽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읽기 불편하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힘들면 글의 내용과 상관 없이 나쁜 글이 되죠.

멀쩡했던, 혹은 아주 좋은 글이, 언어가 바뀌어 더이상 좋지 않은 현상은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결과에 계속해서 희망을 걸어볼 가치가 100퍼센트 하고도 100퍼센트 더 있습니다.  번역을 하는 것과 번역가가 되는 일은 천지 차이임을  이 기회를 통해 또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잘 된 번역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 없지만,  번역의 질에 대한 저의 기대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믿는다”는 것처럼 요즘세상에 쿨하지 못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저는 강하게 믿고 있어요. 쿨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월남쌈 라이스 페이퍼를 물에 적셔 부드러워지면, 속재료가 무엇이든 쫀득하게 감쌀 수 있지요. 독자와 작가가 촉촉히 젖어 폭 하니 서로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그런 번역을 꿈꾸고, 또 믿습니다. 주어진 시간동안 글을 통해 번역가가 겪는 이해와 갈등 모두를 최선의 방법으로 이끌기란 불안한 일입니다. 또한 개인의 (번역가의) 최선과 결과물의 최선은, 의도와 결과로 각각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지요. 오늘은 기분이 별로니 일찍 들어오라는 문자를 보내지 못하는 파도에게, 우리의 결정 하나하나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도, 우선 최선이라 생각 되는 일을 합니다.

번역과 번역 프로젝트의 복잡함에 대해 깨달은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오역이라 지적되는 부분들은 발견 즉시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매번 똑같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매번 조금 더 나은 번역문을 싣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읽고 계신 이 신문은 쓰는 글과 번역된 글 그리고  읽는 글, 셋 사이에 예측하지 못했던 즐거움과 흥미로움이 계속해서 커지기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망합니다.  

 

강영주는 영문학을 공부하던 시간을 가장 순수하게 기쁜 경험으로 기억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9년을 생활하며, 볼티모어의 국제 재난 구호단체 IOCC를 거쳐 워싱턴 스미소니언 프리어 새클러 아시아 갤러리 개발팀에서 일했다.  현재 제주에서 남편 정헌, 강아지 파도와 생활, 한글과 영어를 넘나들며 일하고 있다. 

강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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