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역

 

미역, 나의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그 곳에서는 ‘매역’이라 불리는 그 것. 밥상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미역국을 보아도 나는 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나라 중에서도 특히 제주의 인구대비 편의점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다고 하는데, 내가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 곳은 다 쓰러져가는 슈퍼 하나-그마저도 제대로 문을 열지 않는-뿐인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여름방학이면 바다에 나가 물놀이도 하고 보말도 잡으며 신나는 한 때를 보내곤 하였다.

우리 가족은 내가 네 살이던 해에 그 마을로 이사를 갔던 터라 정착 초기에는 주변의 여러 명소를 찾아 놀러 다니는 일이 잦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시내에 사는 외갓집 친척들도 종종 놀러오고 육지에 사는 이모할머니들, 부모님 친구 분들 등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 날도 여름 한가운데에 있던 아주 더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가족과 몇몇 친척들은 차를 타고 근처 해수욕장으로 물놀이를 갔다. 마을 앞바다는 모래가 없는 돌밭이었기 때문에 모래가 많은 해수욕장에 가면 모래성도 쌓고 조개도 잡을 수 있어서 해수욕장에 가는 날이면 나는 늘 조금 격앙된 상태로 신이 나서 가족들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 날은 유독 이상하게 신이 나질 않았다. 모래성도 조개잡이도 모든 게 시시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 날은 이제까지 해수욕장에 갔었던 모든 기억을 통틀어 사람이 가장 많았던 날에 꼽힌다. 나와는 나이차이가 꽤 나는 사촌들은 바람을 넣는 공을 가지고 와서 물살을 능숙하게 가르며 공놀이를 했지만 너무 작은 나는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집중력이 짧았던 나는 보고 있는 것도 이내 싫증이 나서 인적이 드문 물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휘감는 바닷물과 가끔씩 발을 찌르는 돌멩이들, 둥둥 떠다니는 미역 비슷한 것들을 헤치고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윽고 나는 어떤 한 지점에 멈추어 서서 초록의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수영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보고 싶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새 내 얼굴은 얕은 바닷물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었다. 짠물이 코를 찌르고 눈도 따가웠지만 어떤 목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숨이 가빠왔고, 본능적으로 물 밖으로 코든 입이든 꺼내야 했지만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바닷물의 저항을 이길 정도의 힘은 분명 있었지만 문제는 어느새 내 머리를 칭칭 감아버린 미역들이었다. 내가 바다 속으로 천천히 기어들어가는 동안 미역들은 날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나를 둘러싸고야 만 것이다. 버둥거리며 누군가 봐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사람들이 많은 물가를 벗어나버린 나에게 관심을 돌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기절을 했던가하는 이후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척 어른 중 한 분께서 너무 늦지 않게 나를 발견해 다시 정신을 차렸다는 것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부모님은 덤덤한 성격의 사람들이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지만 20년도 더 된 그 날의 기억은 가끔씩 악몽처럼 불현듯 떠올라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아울러 수영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원수진 사람처럼 미역을 맛있게 먹게 된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지독한 놈이었던 미역은 어쩌면 좋은 인연으로 ‘SEAWEED’와 만나게 하려던 절대자의 농간일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그 날을 가뿐히 지나쳐 아직까지 잘 살아있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으로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제 갓 시작하는 SEAWEED지만, 내 머리를 휘감던 그 지독함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어디든 한 획을 긋는 매체가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나에게도 미역은 그 날의 기억보다는 SEAWEED로 더 크게 기억될 것이다.

배가 고프다. 오늘 저녁은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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