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강의 킬러들

“회사를 그만두면 낫는 병이야.” 난소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동료 A가 말했다. 걸핏하면 병인을 ‘스트레스’라는데 요즘엔 좁혀서 ‘회사’ 탓으로 돌린다. 나도 얼마 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 지나치게 따뜻해서 달큰한 냄새가 나는 5인실에 2주간 입원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꾸준히 운동했어도 병에 걸렸다는 배신감,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 앞으로 1년간 무리한 활동은 금지라고 했다. 최소 3개월은 수영도, 사우나도, 정기권을 끊은 탁구 강습도 갈 수 없었다.
30대가 된 뒤에도 늘 불안했다. 잘 살고 있는 걸까. 답을 구하는 대신에 몰두할 무언가를 늘 찾았다. 그전까진 운동(건강)이었는데, 병원에서 더 불안해진 나는 대체제로 공부에 관심을 돌리기로 했다.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헬스걸을 찬양하는 트렌드는 조만간 ‘공부’로 옮겨갈 듯하다. 내가 등록한 ‘동의보감+사기’ 강의 첫 날 그걸 느꼈다. 지나치게 고전적인 이 강의의 절반 이상이 30대 여성이었다.
남산강학원에서 진행하는 이 강의는 네이버를 퇴사하고 공부를 시작한 김진선 저자의 <적당히 벌고 잘살기>란 책에서 알았다. “10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긴 노동시간, 경쟁 사회, 소비로 이루어진 삶에 회의가 들었어요.” 나도 그런데! 그녀는 문탁네트워크라는 용인에 위치한 인문학공동체에서 공부를 해오다, 남산강학원의 사주역학을 듣게 되면서 삶이 변했다고 했다.
강의의 30대 여성들은 택시에서 헐레벌떡 내리는 직장인과 아예 직장을 그만둔 프리랜서 혹은 백수들이 섞였다. 함께 나눠먹을 간식을 준비하는 날, 파트너가 “몸에 안 좋은 음식보단 떡과 귤을 10인분 씩 하죠.”라며 능숙히 지휘하는 게 다닌 지 오래돼 보였다. 그녀는 사주명리학과 음양오행을 지난 1년간 마스터하고 이번에 동의보감을 듣는다고 했다. “직장과 상관없는 공부를 1년이나 하신 이유가...?”라고 물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예습하기 위해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 동의보감스러운 좌식 책상에 내가 20분마다 몸을 비틀 때, 발 한번 저리지 않는다는 듯 꼿꼿하던 우등생이다. 자기소개 시간이 되면서 다들 ‘공부’하는 이유를 밝혔다.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마땅한 롤모델이나 대안이 없는 지금 공부가 답인 거 같아서” 등 놀랍게 원론적인 답들이었다. 다들 나처럼 불안하구나…. 이곳의 선생님은 “어떻게 살지에 대한 총체적 무지, 시쳇말로 답 없음”이 수강생을 부른다고 했다. 김진선은 “제가 볼 땐 진로 고민, 노후 불안 등이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문제기 때문에, 이런 것에 실마리를 찾고자 공부 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강의는 주 1 회, 3시간씩 총 8주 과정이다. 동의보감과 사기를 어떻게 8주 만에 배우겠나.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강의가 끝나는 밤 10시에 따로 모여 세미나를 하는데,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니 거기까진 못하겠더라. 한번은 수강생과 같이 집에 가게 됐는데, 그녀는 거의 강의 킬러였다. “20대들이 듣는 청춘 콘서트 같은 건 못 가겠더라고요. 거기 나온 멘토 중에 내 또래가 많아요. 솔직히 그 사람도 저랑 같은 고민할걸요. 그래서 보다 원론적인 인문학이나 철학 강의를 꾸준히 듣고 있죠.” 나도 수강 초반엔 뿌듯했다. 동의보감의 원리와 사마천의 역사관을 들으니 인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제나라 때 익살꾼이었던 순우곤은 직언이 아니라 유머로 왕의 태도를 바꿨다지. 역시 삶을 변화시키려면 유머야”하는 식이다. 지금은 거기에 앉아있으면 ‘길 잃은 30대’에 도매금으로 묶이는 기분이다. 뭐라도 하고 있다는 자위로 지금의 불안감을 감추는 거 아닐까. 김진선은 “강좌를 들을 뿐 아니라, 직접 책을 읽고, 읽은 책을 내 힘으로 정리하고, 책을 바탕으로 글을 한편 쓰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공부할 자신은 또 없었다. “그동안은 효율적으로 삶을 계획하고, 시간을 쪼개서 이것저것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살았어요. 결과도 빨리 보려고 하고요. 몸이 그렇게 습관화 됐죠. 저도 공부가 늘지 않아서 그만둘까 한 적 있어요. 그런데 빨리 성과를 보려 하기보다 공부 자체를 즐기면서 천천히 오래하기로 했어요.” 그녀는 현재 새로운 삶의 방식(NEW LIFE STYLE)을 연구하는 ‘십년후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적어도 이전의 진절머리 나는 회사생활과는 다른 길을 찾은 듯 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녀처럼 다 버리고 공부할 용기도 없고, 낱장의 강의들에 자위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다만 불안감에 연필을 꼭 쥔 30대의 그녀들을 보며 동질의 위로는 받고 있다.

 

김나랑

김나랑

김나랑은 고양이와 함께 서울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성. 코리아의 피처에디터로 근무하며, 남미 여행 책을 준비 중이다. rang1201@hotmail.com

Narang Kim

Narang Kim is a female in her 30s living with a cat in Seoul. She works as a feature editor at Vogue Korea, and is writing a book on traveling in South America.

Commissioned Artwork - 이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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