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탈 중심화, 그리고 월 30만원의 레지던시 아티스트피에 대해서

2017년 4월 28일부터 8월 4일까지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 <로터스 랜드>에 미술이론가 최지혜와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 <후방가드르적 착상 2015>를 출품했다. A부터 Z까지의 알파벳이 표기된 26종류의 원고지 26묶음이 단상에 펼쳐져 있고, 한편에는 싱글 채널 영상이 반복되어 돌아가는 설치 작품으로, 26종류의 원고지 각각에는 26개의 서로 다른 시나리오가 적혀있다. 각 시나리오는 광주광역시의 신생공간 ‘바림’이 쇠락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몇 년 전 서울에서 ‘신생공간’이라 불리는 형태의 전시공간들이 대거 등장했다가 사라진 실제 현상을 관찰하고, 해당 공간과 인물을 모두 ‘바림’으로 대체하여 쓴 시나리오로, 실제로 바림에서 곧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미술계 (이 작품이 2015년 작이었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현재는 정확히는 2015년에 가깝다)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생공간이라고 하기에 바림은 만 3년을 넘긴 공간으로, 신생공간의 기준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연차보다는 활동성으로 보았을 때 아직 신생공간이라 가정하고 이 글을 쓴다, 사실 공간 자체에 관심이 있어 바림을 설립했다기보다는 서울을 벗어난 탈 중심화적 예술 실천에 관심을 가졌고, 그에 따라 공간이라는 것을 어쩌다 “지방”에서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레 신생공간, 지역의 공간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지방”이라는 말이 비하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지역”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정치적으로 옳은 태도를 가지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 이나 “시골”로 부르지 않는 듯하지만, “지역”은 사전적인 의미의 local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서울 외”, “서울이 아닌 곳”, “서울이 되지 못한 곳”의 의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지역색”이라는 말도 “지역성” 같은 말로 변형되었지만, 이 또한 여전히 사전적 의미의 locality보다는 “서울에는 없는 것” “시골에만 있는 것” “특산품” (특산품은 왠지 항상 서울에는 없다) 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서울이 만들어낸 잣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비서울 지역이 만들어낸 요소이기도 하다. 서울에는 없는 것을 홍보하지 않으면 비서울 지역의 가치를 표현하고 체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과 도시에 따라 문화가 다르고 주력 산업이 다르지만, 그 차이의 문제에서 서울과 비서울의 차이가 나뉜다기보다는 그 사이에 계층이 생긴다는 것이 (즉, 서울과 비서울의 계층, ‘지방’ ‘시골’이라는 단어가 만들어 내는 계층) 나의 고민의 출발점이었고, 특히나 예술 실천의 면에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지금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으며, 내가 운영하는 바림이라는 공간도 광주광역시에 소재한다. 그러나 나는 광주광역시 출생의 사람이 아니며, 현재도 그렇게 환영받는 외부인은 아닌, 그러나 극히 미움 받지도 않는, 애매한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 중이다. 또한 내가 광주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이나 관심이 있어 광주에 오게 된 것도 아니며, 직업, 가족이나 결혼과 같은 필연적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녀서 이런 뚜렷하지 않은 동기와 계기로부터 출발한 나의 이주가 이를 더 심화시켰을 수도 있다. 공간을 설립하고 운영할 때, 설립자나 디렉터는 개인적인 야망보다는 작가의 역량 강화, 네트워크 증대, 지역의 문화예술 저변 확대 등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이유를 목표로 가지기 마련이지만, 광주광역시 출생의 사람도 아니고 여전히 이방인인 나로서는 또 다른 동기가 있었다. 내가 이 공간을 통해 연구하는 것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고 거주하면서도 해당 지역성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물론 아직 전혀 결론은 나지 않았고, ‘가능하다’라는 가정을 세우고 여러 실험을 거치는 중이다.

 

바림은 지역의 공간인가, 청년의 공간인가, 신생공간인가. 사실 바림은 서울의 여타 의 신생공간과 같은 특징을 가졌고, 그 탄생과 쇠락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일어날) 또한 비슷한 양상을 띠며, 나는 바림의 특징도 서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음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림은 여타의 숱하게 세워지고 없어진 서울의 다른 공간들과 다를 바 없는 ‘신생공간’이며, 신생공간에 대해 발표된 몇몇 글이 특징짓는 지점을 그대로 가진다. 광주의 신생공간이기에, 서울이 아닌 곳의 신생공간이기에 가지는 특징이 있을까. (신생공간이 가지는 일반적인 특징들은 여러 글에서 열거되었기에 생략한다.) 딱히 없다. 그래서 나는 ‘신생’이라는 딱지를 곧 뗄 바림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국 ‘지역의 공간’ ‘지역 청년 예술인의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라 예상했고, 그렇다면 ‘지역’의 공간이란 서울의 공간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어떻게 달라야만 하는지, 어떻게 다르지 않아야만 하는지를 최근 고민 중에 있다.

 

바림의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전시 및 발표를 포함한 레지던스 사업 그리고 교육 등의 워크샵이다. 전자는 다수의 비광주지역의 작가와 소수의 광주지역의 작가가 함께하는 사업이며, 후자는 광주지역의 예술가, 예술에 관심이 있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레지던스를 고집해 왔던 3년 동안, 비광주 지역 (해외 포함) 의 많은 예술가가 짧게는 일주일짜리 길게는 두 달짜리 레지던시에 참여했고, 내가 지속해서 가진 의문은 (여전히) 과연 그들이 이곳에 오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였다. ‘광주이기 때문에’ 인가 ‘서울이 아니기 때문에’ 인가, 혹은 어떤 도시인가를 여하 막론하고 ‘바림이기 때문에’ 인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바림이 자리를 잡으면 (잡았다, 못 잡았다의 의견이 분분하기에 못 잡은 걸로) 참여해주었던 수많은 작가와의 소통을 통해 이를 작업화하려 구상 중인데, 그때 좀 더 명확한 대답을 나 스스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긴다.

 

어찌 되었던지 참여했던 비광주 예술인들은 광주라서, 바림이라서 오고자 했다기보다는 ‘서울이 아닌 곳이라서’ 오고자 했던 정서가 있지 않았을까 라고 예상하는 측면이 있다. ‘서울이 아닌 곳’이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정서는 무엇일까. ‘서울 촌놈’ ‘서울 촌년’의 정체성은 서울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방색, 지역색이라는 단어는 서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색이라는 단어는 잘 안 쓰인다. 그렇다면 서울스러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서울색, 서울러, 서울리스트, 서울리안, 서울성은 구태여 단어로 이야기되지 않지만, ‘서울이 아닌 곳’에 가서 레지던시 (즉 예술 활동)를 하려는 욕구가 있었다는 것은 그 속에 비언어적으로 공유되어온 서울의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까.

 

물론 내가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목적은 모두가 당위적으로 공유하는 아티스트 역량 강화, 아티스트 네트워크 증대, 지역 예술 활성화와 같은 이해하기 쉬운 이유를 가지면서도, 또한 개인적인 연구 주제로서 서울과 비서울, 광주와 비광주 지역의 아티스트의 이동, 이주, 거주, 그 동기, 탈 중심화적 양상을 띤 활동에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레지던시’의 정의와 목적에 불과할 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레지던시는 최근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레지던시 자체는, 애초에 아티스트 커뮤니티로서,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에, 즉 함께 살아남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콜로니였지만 (예: 맥도웰 콜로니), 현재는 아티스트에게 스펙의 형태가 되었다. 즉 거주, 생활, 예술 활동을 전부 내가 살고 일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려고 하는 욕구는 단순히 살아남고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있는 것이 아닌, 예술가의 CV, 포트폴리오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중요한 시스템이 되었다. 좋은 예는 국공립 기관이 실행하는 레지던시이다. 실제로 많은 국공립 기관이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지원하지만, 오롯이 예술가를 위한 것이 아닌, 지역홍보, 기관홍보에 그 목적을 가지고, 실제로 국공립 레지던시에 소속된 많은 작가는 대부분 반드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레지던시의 한 일부로서, 즉 작업의 일부로서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작업의 연장으로 한다” 는 것이 편리하게도 (누구의 편리인가) “레지던시는 원래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다”가 되었고, 이것이 심화하여 시민이 주민으로 변모해 ‘주민참여’ 프로그램이 탄생, 그 레지던시가 소재하고 있는 그 특정한 커뮤니티의 주민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가 생겨난다. 물론 이렇게 변모한 시스템과 상관없이 애초에 주민과 시민, 예술을 연결하고자 하는 레지던시가 있지만, 그런 레지던시를 제외하고, 모든 예술가가 주민과 시민을 위해 자신의 예술 역량을 제공하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 참된 레지던시 예술인의 기준이 되어버린 현 상황을 직시할 필요는 있다. 주민과 시민에게 영감을 주고, 국공립 기관 및 문화재단에 도움을 준 값은 얼마나 될까. 국내 대부분의 문화재단의 레지던시 아티스트피는 한 달에 약 30만원이며, 최대가 50만원, 최소는 0원이다. 국공립기관의 문화재단은 지역홍보도 하며, 컨텐츠도 개발하고, 실행까지 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을 얻고, 예술인의 수중에는 30만원이 남는다. 마침 내가 30만원이 필요했다면, 마침 내가 공간이 필요했다면, 그리고 그 니즈가 기관과 맞았다면 아름다운 결말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 레지던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서울과 비서울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앞에 적은 것처럼, 서울에 없는 것을 홍보하지 않으면 비서울 지역의 가치를 표현하고 체감하기 힘들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주체이자 즉 그 역할을 주도해야 하는 지역의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들은 스스로 그것을 찾기보다는 ‘레지던시’라는 즉, 위에서 이야기한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이용한다. 어차피 예술 활동하는 아티스트인데, 30만원도 받고, 공간도 받고, 문화재단이 홍보도 해주니 얼마나 좋냐, 라는 굴레에서 우리 모두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날 수는 없을지언정, 내가 국공립기관과 다를 바 없는, 그들보다 규모와 예산 면으로 작기만 한 미니미 국공립기관, 즉 “지역의 공간”(예술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보다는 지역 특산물 예술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가지는)이 되어버린다면, 그 굴레가 더욱 심화하여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다. 바림이 신생공간의 유예기간을 마치고 나면 서울-비서울의 힘의 구도에서 어쩔 수 없이 ‘지역/지방/시골의 공간’이 되어버리고, (심하면 거기에 ‘청년’이 추가된다) 나와 이 공간 또한, 서울에 없는 것, 서울에서는 못 찾는 것, 지역색, 지방색, 그 지역에만 있는 특산물과 같은 예술을 실천하다가 결국에는 지역 홍보 예술을 업으로 삼는, 말하자면 예술 그 자체보다는 그 지역을 위한 예술을 해야만 하는 (심하면 거기에 월 30만원이 추가된다) 그런 때가 오지 않을까 라고 예상한다.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러한 때가 온다면 <후방가르드적 착상>이 예상한 대로 문을 닫게 될지, 아직 내게 보이지 않는 깜깜한 점들이 몇 가지 있다.

 

역으로 광주 외부의 예술인들이 광주에 들어왔을 때는 어떨까. 전 세계의 유명한 예술가들은 꼬박꼬박 2년에 한 번씩 광주에 온다. 몇 주간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가이드와 함께 광주를 돌아다니며 대인시장에서, 양림동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동명동에서, 망월동에서, 역사적인 장소와 힙한 바와 카페, 전통시장을 돌며 광주를 체험한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의 회장에는 ‘광주에서 이런 것을 보았다’ ‘광주의 역사를 리서치했다’ 하는 설명과 함께 작품이 들어선다.

 

동시에 광주의 많은 기획자, 예술가는 한 번쯤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혹은 계약상의 이유로) 광주 시민을 위한, 주민을 위한, 광주에 대한, 오로지 광주를 위한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물론 자의로 그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제외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이 되었기에 수행하는 예술가들을 이야기한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광주적인 작품, 광주에 대한 작품을 만든다는 동일성을 가진다. 또한 리서치와 사이트 스페시픽은 현대예술의 중요한 요소이자 흔한 접근법이기에, 그것에서 차이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어떠한 장소, 유물, 유적, 문화적 특성, 그 안의 삶을 리서치 주제로 하여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놀랍지도 않은 접근이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데는 물론 여러 가지 잣대가 있을 수 있다. 비엔날레 작가와 지역 작가로서의 차이, 초청과 지원의 차이, 커미션과 월 30만원의 차이, 유명세, 작품의 우수성, 예술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왜인지 외부 예술가들이 광주에 와서 몇 주간 보고 느낀 이 도시에 대한 작품을 우리는 지역성에 얽매인 작품, 특산품적인 예술작품이라 평가하지는 않는다(심지어 그런 경우조차). 오히려 외부의 눈으로 본 광주, 광주의 재해석이라는 스테이트먼트를 도록에서 쉬이 발견한다. 어떤 도시에 당도하여 그 도시를 탐구하고 시민과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그들의 방식은 국공립 레지던시에서 고군분투하며 각종 시민,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광주 예술가들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국공립기관의 편리함이 만들어낸 홍보용 특산물 예술을 해야만 지역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그것을 존속하는 예술가와 그러한 압박이 없는 예술가, 혹은 홍보 특산물 예술을 하더라도 한번만 ‘해다 드리면’ 그만인 예술가의 차이는 구조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는 일은 같은데 왜 하는지가 다르고, 그 일의 압박도와 영향력이 다르다고 말하면 좀 더 쉽게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광주에 소재하면서도 원한다면 광주적이지 않을 여지가 있는 것. 어떻게 보면 모순처럼, 불가능한 것처럼 들린다. 한탄을 마무리하자면, 이도저도 아닌 신생공간에서 지역의 공간, 지역 청년예술인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해버리는’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기우일 수 있다. 예술 공간 자체로 존재하고자 하는 노력과 걱정은 여타의 광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럼 다른 데로 가던지’와 같은 단순한 문제일 수 있지만, 내가 다른 곳에 가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지역에 있으면서도 지역성에 고립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면, 즉 서울과 비서울의 계층적 격차 없이 예술을 실천할 수 있다면, 특산물을 홍보하는 예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예술을 끌어다 와서 ‘지역’을 홍보해서 먹고 살아야만 하는 국공립기관과는 다른, 서울에 없는 것을 홍보하며 그 굴레에서 꿀맛 같은 월 30만 원에 중독되어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연구하는 주제의 궁극적인 아름다운 결말이고, 아마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도 하다.

 

강민형

강민형은 동경예술대학교에서 미디어아트로 석사학위를 취득 후, 작가이자 큐레이터, 통번역가, 오픈예술구역 바림의 대표 등 시각예술의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 중이다. 서울을 벗어난 탈중심화적 예술 실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고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해당 지역성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 활동을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한다. 바림의 더 많은 활동은 https://barimart.wordpress.com/에서 볼 수 있다.

Minhyeong Kang

After graduating from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with a master's degree in Media Art, Kang Min Hyeong is working in various fields in visual arts as an artist, curator, interpreter/translator and chairperson of the open art district, Barim. Deeply engaged in the decentralizing practices of art in places away from Seoul, she continues to study feasibility and sustainability of artist's work free from the influences of the local region for work and life. More information about Barim is available at barimart.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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