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경계 그리고 관념:권순관

 <54 TABLES IN LIBRARY> 'A Practice of Behavior 2009' 시리즈 2008-2009 디지털 C-프린트 254×360cm

 

‘명확한 사실의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작가 권순관은 완벽하게 구성된 장편소설처럼, 탄탄한 줄거리를 지닌 사진을 시리즈로 선보인다. 미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알린 2009년 작품 <행동 관습_도서관의 54개 탁자(54 TABLES IN LIBRARY)>는 가로 세로 줄을 맞춘 수십 개의 책상과 인물들을 내려찍은 것이다. 일상적인 질서를, 마치 행동법칙에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자신만의 연출사진 기법으로 담아낸 이 사진의 보편적인 행위는 앵글에 담아내는 각도와 순간에 따라 낯익은 장면이 될 수도 굉장히 인공적이며 낯선 화면이 될 수도 있다.

 

6·25 전쟁 직후 민간인 대량 학살이 자행된 곳으로 알려진 충북 영동군 노근리의 숲을 찍은 <어둠의 계곡(THE VALLEY OF DARKNESS)>. 작가는 해가 비추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습하고 불운한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화면을 완성했다. 예로부터 전쟁의 피해지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긴 여정을 달려온 어머니, 형제, 아버지, 부인, 친구와 가족의 비통함으로 사무친 극장이 되었다. 작가는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명상했을 사람들 존재와 전쟁 불모지의 한가운데였던 이 숲의 기운을 오버랩 시키며 ‘전쟁 뒤에 남겨진 충격과 아픔’에 대해 발언한다. 한편 어둠 속에서도 있는 힘껏 빛을 반사하는 나뭇잎들은 이런 암울한 내러티브와 병치되며 감동을 담아낸다.

 

 

<A HANGING OLD WOMAN> '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 시리즈 2013 디지털 C-프린트 180×225cm

 

<A COLLECTOR> '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 시리즈 2009 디지털 C-프린트 180×225cm

 

<A TRIANGLE> '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 시리즈 2013 디지털 C-프린트 135×215cm

 

그는 어떤 사실이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 존재에 대한 실존적 물음을 갖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때론 현실을 초월하듯 매우 연극적인 방식으로 장면을 기록하기도 한다. 권순관의 그런 특기는 ‘미완성의 변증법적 극장(Unfinished dialectical theater; Preface)’ 연작에 대표적으로 투영된다. 사진 속 인물들은 화려한 색감과 과장된 제스처로 우리를 압도한다. 그들은 관람객에게, 꺼릴 것 없는 자신들의 캐릭터를 관대하게 보여준다. 화면 속 주인공들은 결코 공격적이지 않으며 친절하고, 연출된 것 같은 포즈로, 때론 능숙하게 때때론 투박하게 보는 이들을 초대한다. 이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이야기를 덧입혀 선보이는’ 작가의 재주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쓰레기가 집적된 건물 앞, 무대, 이제는 늙은 병사 등 다양한 테마를 제시할 때도 그는 대상을 기존 모습과 사뭇 다른 형태로 선보임으로써 긴장감을 제시한다.

그는 그 어떤 사실로 완성되지 못한 채 끝없이 보류되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미 고정된 관념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 속에 존재하는 모순을 발견하는 작가는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재해석하고자 노력한다. 이미 타성에 젖은 모순과 부조리를, 작품을 통해 끄집어내는 것이다. 사람은 때로 순수하고 자발적이지 않은,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비롯된 관념화된 행위를 하는데, 작가는 이를 본능적 몸짓과 의식의 부조화로부터 기인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가 구성한 장면은 파편적이고 무질서한 정보들의 감각들로부터 시작된다. 작가 스스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이미지의 분열적 사건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 그것이 내포하고 있던 음험한 전략적 기도를 폭로하고자 한다. 그것은 현실의 여러 가치가 가진 힘의 운동과 관성을 관찰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아이러니의 지점들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은 상이한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덧코드화(Overcoding)’ 하며, 정언적 상징들을 해체해 나가는 방향으로 지양된다. 사건화의 선을 특정한 양상으로 제한하고 고정하려는 힘을 갖는 양식의 지층을 변환시키고, 역사적 공간을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하듯 그는 작품으로 인식을 환기시키고 관념을 다층적으로 분열시킨다.

다시 말해, 그는 새로운 사건을 개발하고 사건과 사건의 예기치 못한 결합을 통해 고정적 방식의 사건화에 균열을 가한다. 이렇게 했을 때 관습적인 사고방식의 방법과 사물화는 인간적 가치들의 소외된 다른 측면들에 대해 사고할 기회를 제시한다고 믿는 작가는 사뭇 어색하거나 낯설게 보이는 이미지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다른 층위를 완성해 낸다. 그러나 이렇게 구성된 이미지도 관계망은 현실에 기반하며, 다른 레이어의 여타 사건과 이질적으로 결합하거나 이완함으로써 새로운 사건을 제시한다.

이렇듯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지닌 관념과 사고를 무너뜨리거나 바꾸려는 시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묻자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의 현실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듯 보이지만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월적 가치로서의 정신과 구체적 사실은 그 내부에 끊임없이 모순을 내포하고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기존에 내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에 다시 질문하고 스스로 다른 방향에 대한 모색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 안에 내재한 편견과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불평등, 무지의 야만상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것이다.”

권순관이 만드는 레퍼토리 중 건축과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높거나 광활한 건물 앞에 인물을 배치한 작가는 <전화통화 후 한참을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는 줄무늬 티셔츠의 남자>(2004)나 <교통안내 표지판을 유심히 바라보는 여자와 서류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이를 훔쳐보는 남자>(2004), <아파트 발코니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남자와 아무런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 등의 제목을 달아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뭘 하는지 뭘 원하는지 눈치 채게 한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토록 담담한 현상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강렬한 색을 입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벌어지는 다양한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권순관. 그 동안 작업을 통해 다양한 권력의 문제를 다뤄 온 작가. 작게는 개인의 내부 안에서 벌어지는 내적 긴장과 내면화하는 가치판단에 대한 문제부터 외부로는 힘들의 위계와 쟁투 속에서 발생하는 사고방식과 행위의 질서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문제 등에 집중했던 작가는 최근 오랫동안 고민하고 작업해왔던 현재의 축적된 역사와 사고 행위간의 상호 연관의 과정을 힘의 위계와 질서라는 측면에서 사고하고 있다. 기존 작업의 큰 범주에서 세부적으로 구체화시킬 신작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현상을 읽고 사실을 아주 흥미롭게 전하는 스토리텔러 권순관. 그의 독특한 앵글과 주관적 시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있는 현대인의 기억과 슬픔, 즐거움을 캡처하며 그의 작업은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관찰함과 동시에 특별한 인간적 감동과 공감을 새겨 넣는다. 그는 오래도록 활동해온 사진가로서 자질을 기본 바탕으로, 경계 짓지 않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강인함과 인내는, 그의 사진을 그저 ‘어디서 봄 직한 사진’으로 치부하려는 외부의 시선 등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디어 신에 깊게 공여하고 있다.

 

 

작가 권순관은 1973년 생으로 상명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매체미술 석사과정을 마쳤다. 지금까지 두 번의 개인전과 40여 차례 단체전을 선보이며 특유의 감수성과 미적 감각을 사진을 통해 보여 왔다.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국내외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치는 그는 자신만의 개성과 시각을 담은 독자적인 프로젝트로 이목을 끌고 있다. 2006년부터 꾸준한 작업들을 통해 개인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과 사회, 문화 그리고 역사 등의 다양한 가치에 질문을 던지고 이들이 가지는 질서를 재구성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세심한 관찰과 탐구를 바탕으로 촬영하고 완성된 작품들은 그의 변화하는 가치관과 사회의 양상을 담아낸다.

 

정일주 편집장

정일주

월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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