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것. 그리고 공평하지 않은 것.

<햇살 좋은 날>, 장지에 분채채색 , 130x162cm, 2015

 

 

남동생은 선천적으로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자기 몸의 신비를 슈퍼히어로의 능력인양 자랑하는 모습에 놀란 부모님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하자, 귀 속 손톱보다 작은 뼈의 모양이 어그러져 잘 들리지 않는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수술로 열어 보면 고칠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전신마취를 해야 할 부담이 있고 다른 쪽 청력은 정상이니, 이대로 지내다 정 불편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로 의사는 내 부모의 마음을 달랬다.

 

<담배피우는사람들>, 장지에 분채채색, 130x194cm , 2015

 

그렇게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탈 없이 졸업한 동생이 수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운전을 시작하면서였다. 조수석에서 하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자 불편을 느낀 모양이었다. 수술을 해 보고 싶다고 걸려온 전화에 바다건너 육지에 사는 큰누나(나)는 병원을 수소문해 일정을 잡아 예약을 하고, 동생을 불러 입원을 시켰다. 담당 레지던트는 3일만 입원하면 된다고, 그리 오랜 시간 이뤄질 수술도 아니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그러나 워낙 예민한 부분이라 수술로 열어봐도 고치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여러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을 알려주고, 나와 동생이 이것저것에 동의하고, 서명하도록 했다.

사흘 동안 나는 병원 보호자 침대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다 큰 남자 아이가 혼자 병원에 있다고 뭐 잘못되겠느냐고, 간병하는 내가 몸살이 날 걱정에 아버지와 여동생이 극구 말리는 데도 고집을 부렸다. 링거 병을 몸에 달고 있는 동생이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든 불편한 상황을 맞는 일이, 그래서 주눅든 아이의 눈빛이 따끔히 만져지는 것 만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상상을 하며 몸 편히 있느니 동생 곁에 함께 있어야겠다고, 나는 다섯 뼘 남짓한 넓이의 보호자 침대에 앉아 병실을 둘러보며 이곳에 정을 붙이려 애썼다.

여섯 명의 환자와 여섯 명 이상의 보호자가 10평 남짓한 공간을 함께 쓰는 일은 불편하고, 그리고 조금 신기한 일이었다. 간호사가 불을 켜면 하루가 시작되고, ‘이제 불 끌게요’ 하는 말과 함께 10시 즈음이면 다 같이 잠을 잤다. 환자가 숨쉬고, 먹고, 열을 내고, 배설하는 일에 모든 사람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집중했고, 작은 변화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그러다 지치고 무료해지면 건너편 침대의 일거리를 조금 돕기도 하고, 사과나 바나나, 음료수 따위를 나눠 먹기도,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끼리 수다를 나누기도 하며 시간을 견뎠다. 강한 난방과 그에 따른 건조함을 피하기 위한 가습기들의 향연으로 후끈 어수선한 병실의 공기를 함께 들이마시며, 집으로 안녕히 돌아갈 그날에 대한 염원을 서로 나누는 생활 이었다.

 

<밤, 엄마 >, 장지에분채채색, 91x72cm , 2012

 

10시에 소등이 되고 나면 나는 노트북을 들고 복도 끝 간호사실 앞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길다란 소파가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그 모양이 보통의 가정집 거실에서 볼만한 형태라 처음 보면서는 ‘이곳에 이런 소파가 필요한 이유가 뭘까’ 하고 약간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물음은 밤이 되어 병실 밖으로 나와 보면서 모두 이해되었다. 그곳은 간호사실을 가운데에 두고 내가 묵는 이비인후과 병동의 반대편에 자리한 소아과 병동의 환자 엄마들이 우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재우는 공간이었다.

여러 명의 어린아이가 함께 잠든 병실에서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데리고 나오는 수밖에는 없을 테다. 엄마들은 아기띠를 하고 소파에 앉기도, 일어서기도, 창에 기대 밖을 보기도 하며 아이의 울음을 달래보려 안간힘을 썼다.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토닥이기도 해보고, 어항의 물고기를 보며 눈길을 빼앗으려도 해보고, 나지막이 노래도 불러보고, 끝없이 공간 안을 걸어 다니기도 했다.

내가 그곳 한 귀퉁이 소파에 앉아 바라보게 된 것은, 팔과 다리, 머리에 링거 바늘을 꽂은 아이와 그 아이를 안고 애쓰는 아이 엄마의 모습이 내게 보여준 것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 대한 형벌’ 이었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저 작은 아이가 저러한 고통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머리가 모두 깎이고 여기저기 바늘로 찔려가며 몸 안에서 나오는 통증을 견뎌야 하는 가혹함에는 순번도, 면죄부도 없다.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아이의 엄마의 마음과 그 상황 안에서 나오는 끝없는 인내, 육체적 괴로움에 대한 요구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어째서.

동생을 수술실로 들여보내며 나는 무서워졌다. 이유 없는 고통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의 동생에게 주어진 운명의 패가 보이지 않는 일이 공포스러웠다. 너는 그곳에서 별일 없이 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애써 억눌러 참아내야만 했다.

수술 보호자 대기실은 그 큰 병원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혹한 기다림과 그에 따른 염원이 가득한 공간일 것이다. 커다란 모니터 화면 한 귀퉁이에 환자의 이름이 줄지어 올라오고 ‘수술 준비 중’, ‘수술 중’, ‘회복 중’ 등으로 상태를 알아 볼 수 있게 표시하고 있었다. 가족을 수술실로 들여보낸 보호자들은 그곳에서 애써 태연히 화면만 바라보며 어서 시간이 지나가주기를 기다렸다. 나 또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간절함이 덜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벼운 수술이라지만 전신마취를 하는 것이고 귀는 뇌와 가깝다. 마취는 이유 없이 깨어나지 않기도 한다. 부정적인 가능성들이 수없이 눈앞에 산적해 있는 것을 모른척하려 나는 모니터 화면에 나오는 동생의 이름을 바라보며 귀를 열어 옆에서 나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아무 말이든 상관없었다. 누구든 무엇이든 내게 던져줄 단어들이 필요했다. 어느 말이라도 하거나 듣지 않으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침묵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옆자리 사람들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같았다. 그들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해서 한 대화일 것이다. 그들이 한 이야기는 자원봉사 간병인에 관한 것이었다. 한 환자보호자가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니 일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며 그들이 언제 와서 어떠한 일을 해주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간병인.

동생의 이름 옆 글자가 ‘수술 중’에서 ‘회복 중’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 가야 할지 물으러 간호사를 찾아가며 나는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돈을 받지 않고 병든 이의 몸을 닦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되뇌며 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내가 무언가를 모두 잃을 수 있을까.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세상에 단 하나라도 있을까. 움직이는 침대들 사이, 잠들거나 깨어난 환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공평하거나 불공평한 것이 아닌, 이유 없이 그저 그렇게 된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죄 없는 이의 고통과, 고통 없는 나의 몸 사이에서 그 어떤 인과관계도 찾을 수 없었다. 내게는 이유가 필요했다. 나의 몸이, 나의 인생이 온전히 안녕한 이유와 눈을 깜빡이며 졸음에서 허우적대는 내 동생이 무리 없이 깨어나야 할 이유가.

 

동생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걱정했던 마취에서도 금세 깨어났다. 시간이 지나야 안다고는 하지만 귀 속 뼈 모양을 바로잡았으니 청력에도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했다. 나는 깨어난 아이에게 아프냐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그것이면 되었다고 했다.

 

 

<퇴근>, 장지에 분채채색, 73x53cm , 2015

병실 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 끝에 아이를 안고 재우려 애쓰는 아이엄마가 보였다. 행운 어린 건강을 얻은 내 동생과, 아직 병든 몸을 고치지 못한 어린 아이의 몸이 한 눈에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나의 힘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이 아닌 것들을 운 좋게 얻은 나의 몸은 이제, 세상에 나가 그 값을 갚으며 공평한 이유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좌혜선

1984년 제주 출생. 아홉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지금까지 두 번의 개인전을 했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을 요량으로 방을 얻 어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마 음으로 쓰고 그린다. 읽고, 쓰고,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이외의 것은 밥 먹는 일조차 버거워 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 스 스로가 천재가 아닌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 피곤해진 인생에 서, 오래 살다 보면 어쩌면 진짜로 진짜인 괜찮은 것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산다.

Hyesun Jwah

Hyesun Jwah was born in 1984 in Jeju. She has been painting since she was 9 years old and has held two solo exhibitions so far. She got a room with no intention of teaching anything at that time, but she now teaches art to children, and she paints and writes with no goal to share them with anyone. Reading, writing, and teaching children are just enough for her life; not even eating interests her. Despite of feeling tired to have belatedly learned that she is not a genius, she is living with the hope that, if she lived for a long time, she may be able to make something real and genuinely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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