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의 이유

근 10년을 선택적 이주민으로 살다가 제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다. 이주민이라는 단어 앞에 ‘선택적’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아무도 그리 하라 시킨 적이 없었는데 그저 스스로 좋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적 이주민의 삶을 가능하게 해준 원인은 바로 ‘사진’.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집을 떠났고 사진작업을 진행하며 그 방향성에 맞춰 삶의 지형도 조금씩 넓어졌다. 그렇게 스스로 옮겨 다니다 보니 사진작업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이주’와 ‘정착’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되었다. 우리가 이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어떤 곳에 정착하게 되는 것일까. 그 둘 사이의 역학관계, 혹은 그 두 개념이 서로를 향해 말을 거는 것들에 대한 기록.

 

도쿄와 뉴욕, 아이슬란드를 거쳐 10년을 매듭지으며 제주로 온 이유는 제주의 숲, 곶자왈 때문이었다. 뉴욕에 머물며 한 번씩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우연히 제주를 찾았다. 친구가 있어서였지만 곧 곶자왈을 발견하게 되었다. 뉴욕에 있으면서도 곶자왈이 그리워졌고 곶자왈 사진작업을 위해 1년에 한 번씩은 꼭 제주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 곶자왈을 가까이에 두고 보면서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제주에 와 살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이주했다. 왜 곶자왈이 마음에 맺혔을까. 이유를 묻는다면, 곶자왈에 숙연히 들어서 있는 나무들의 ‘뿌리’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애정하는 존 버거의 말에 의하면, 이주하는 삶이란 뿌리 채 뽑혀 옮겨지는 삶이란다. 삶의 뿌리가 뽑혀진 채로 한 10년간 옮겨 다니다 보니 뿌리의 존재가 희미해졌다. 아니 처음부터 뿌리라는 존재는 없었을지 몰라 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되었다. 하지만 뿌리가 없을 수 있겠는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 그 아이덴티티는 이목구비처럼 무의식 속에 존재할 텐데. 그 대신 오래된 이주의 삶 속에서 희미해져 버린 뿌리에의 각성은, 땅으로 아래로 뻗어 내려가는 뿌리의 기본적 운동성을 망각했다. 뿌리는 이주라는 형태에 맞게 진화했다. 수직으로 하강하지 않고 수평으로 펼쳐졌다. 이주하는 몸뚱아리를 거스르지 않아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뿌리는 부유하게 되었다. 공기 중으로 가볍게 흩어지게 되었다. 몸통 근처에서 공기처럼 떠돌게 되었다. 그 뿌리의 은유를 발견한 곳이 바로 곶자왈이었다. 곶자왈 나무들의 부유하는 뿌리들. 땅 속이 아닌 대기 중으로 흩어지고 떠오르는 뿌리들을 보면서 나는 지난 10년 간 벌어졌던 내 이주의 역사를 떠올렸다. 곶자왈이 1만년 동안 그 곳에 여여히 존재했던 정착의 숲이었음에도 뿌리들은 생태적 생존을 위해 독특한 모습으로 변환되는, 혹은 진화되는 또 다른 이주의 숲으로 보여졌다. 줄기와 잎, 뿌리의 관계가 전복되었다. 어느 것이 줄기이고 어느 것이 가지이고 어느 것이 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것은 곶자왈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것도 1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존하고 서로 공존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 생명력에 안도했고 또 위로받았다.

 

뉴욕에서의 작업이 이주되어진 식물원의 식물들을 배경으로 이주민 친구들을 찍은 포트레이트 작업이었다면 제주에서의 작업은 긴 시간 동안 전복되고 해체되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생명력을 획득한 숲, 곶자왈에 대한 느릿한 질문이 될 것이다. 전복하고 해체되는 숲. 그러나 여전히 생존하는 숲, 곶자왈. 그 숲의 존재 이유는 이주의 역학 작용을 닮아 있다. 제주의 깊숙하고 내밀한 곳에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해왔던 숲 곶자왈에서 동시대 이주하는 삶의 새로운 모습을 떠올린다. 귀소본능에 따라 기어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비춰볼 물리적 고향의 존재는 이제 낯설어졌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가는 대신 자신만의 기준으로 고향을 대체하고 만들기도 하며, 고향 같은 어떤 곳으로 끊임없이 옮겨간다. 물리적 국경이 아닌 마음의 국경을 넘어간다. 마음의, 감정의, 생각의 국경을 넘어 다니는 또 다른 이주의 삶을 사는 것이다. 정착으로 완성되는 이주가 아니라 이주 그 자체로써 생명력을 지니는 삶. 신비롭지만 동시에 당연하다.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그렇게 제주에 왔다. 그것이 그 숲의 이유다.

 

안수연

서울에서 태어났다. 사진을 시작하기 전 광고 카피라이터 로 10년을 일했다. 사진을 시작하며 이주민의 삶을 살기 시작, 도쿄와 뉴욕에서 10년 동안 공부하고 작업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슬랜드와 제주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었고 뉴욕, 도쿄, 런던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이주의 장소와 이주하는 주체로써의 ‘내’가 만들 어내는 관계, 이동에 따라 변화하는 삶의 에너지를 기록하 는 작업을 한다. 사진과 삶이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자 연스럽게 흘러가길 원하고 또 그 흐름에 따라 제주에 온 지 막 1년이 되었다. 지금은 다양한 층위로 접근하며 곶자왈 사진을 찍고 있다. www.sooyeunah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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