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작품 치료사 Fine Art Conservation Group 김수연 복원사 인터뷰

미술계에서 작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평론가, 미술사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이 바로 미술품 복원사이다. 하지만 다른 역할들에 비해 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손상된 작품을 복원하는 기술자로만 저평가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복원사란 한 점의 작품을 복원하기 위해서 그 작가의 작업방식, 그 시대의 미술사, 재료의 성질, 작품의 스토리 등 미술사가 못지않은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마치 작품을 창조한 작가의 손으로 빙의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완벽함과 집중력, 그리고 예민한 손재주를 요구하는 복합적 역할임이 틀림없다. 마치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미술품 복원사는 망가진 작품을 정확히 진단하고, 수술하고, 치료하여 퇴원시키는 마치 미술계의 의사와 같다.

세상에 하나뿐인 (또한 천문학적 가치의) 작품의 손상을 복원하는 것이 얼마나 긴장되는 일일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약간의 실수라도 범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순간일 것이다.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 첼시에서 내놓으라하는 유수의 갤러리와 옥션 하우스, 콜렉터들의 작품을 복원하고 연구하는 , 뉴욕에서 가장 ‘믿음 가는’ 복원사로 자리 잡은 김수연씨를 만나 복원사, 특히 현대미술 안에서 복원사의 중요성과 역할,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인터뷰해보았다.

2000년부터 뉴욕 첼시의 갤러리 거리의 중심에서 Fine Art Conservation Group을 운영하는 김수연씨는 한국 전남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1992 년 복원교육의 중심인 이탈리아 피렌체 Istituto Per I’Art e Il Restauro에서 본격적으로 복원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볼로냐, 밀라노, 피렌체의 다양한 공방에서 두오모의 프레스코화, 피카소, 고 서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올드 마스터 작품 복원 후 1997년 뉴욕으로 건너와 현재는 모던, 컨템포러리 아트를 중심으로 복원을 하고 있다.

 

 

  1. 학부에서 순수회화를 전공하셨고, 이탈리아로 유학 가셔서 미술품복원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복원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셨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 처음 작품복원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에서 교수님의 권유로 시작되었고, 한국에 양화를 복원하는 사람은 그 당시에 일본에서 공부하셨던 단 한분밖에 없어서 한국 양화 복원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의 복원 분야에 기여를 하고 싶어 공부를 결심했습니다.

 

 

  1. 복원이라는 것이, 단순히 작품의 데미지를 감쪽같이 복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원은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 부탁드립니다.

: 먼저 복원 의뢰가 들어오면 작품이 어디가 어떻게 손상되었는지, 이미 다른 사람이 먼저 복원한 흔적이 있는지를 연구합니다. (제대로 되지 않은 복원가의 손을 거친 작품들은 보통 90% 정도는 오히려 더 그림에 손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품 자체에 대한 연구 후에는 약간의 재료 테스트를 합니다. 작품에 맞는 복원 재료를 찾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먼저 사진을 찍습니다. 보통은 복원 전, 복원 도중, 복원 후 이렇게 세 번 정도 기록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복원 작업을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용하는 재료가 나중에라도 다시 제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복원은 항상 후세 복원가가 다시 복원이 필요할 때 재료가 안전하게 없어지게끔 복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품은 아무리 잘 보관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또 복원이 필요하거든요. 복원에서 사용했던 재료들도 (그림 그렸던 화가가 사용했던 것과 같이) 나중에는 다 탈색이나 변색이 되요.

 

 

  1. 이탈리아에 계실 때, 화제가 되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작업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미술복원역사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이때 어떤 작업을 하셨었는지 또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 거기에 있던 할머니 복원가가 당시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는데, 성격이 괴팍하셔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인지 다들 엄청 집중해서 조심조심히 작업했었죠. 그리고 최후의 만찬 벽화를 “Muro di Pianto”(눈물짓는 벽화) 라고 불렀는데, 거기에서 오래 일했던 사람들은 다 나중에는 가정사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아프거나 했던 슬픈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아요.

 

 

  1. 최후의 만찬같은 올드 마스터 작품의 복원도 하시지만, 컨템포러리 아트 복원 의뢰도 상당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컨템포러리 아트의 경우, 재료나 표현이 워낙 다양하고 독특해서 작품 복원이 쉽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하셨던 작품 중 가장 황당했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요?

: 이탈리아에서는 올드 마스터 작품을 주로 복원했는데, 뉴욕에 와서는 모던, 컨템포러리 아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모던, 컨템포러리 아트 재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고, 전통적 미술재료가 아닌 것으로도 많이 작업하잖아요. 또 작가가 이것저것 물성이 다른 재료를 섞어 작업을 해서 더 빨리 변색이 되고 올드 마스터에서 했던 복원과는 문제들이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인지 좀 더 제 스스로에게 도전이 되는 복원 작업을 하고 싶었고요.

가장 황당했던 것은, 닭 뼈로 만든 작품에 색을 칠한 작품이었는데, 그 닭 뼈가 오래되어서 굉장히 약했고 무진장 더러웠어요. 그게 좀 기억이 남고 아마 한 다섯 개 정도의 Chicken bone polychrome sculpture를 했어요.

 

 

  1. 항상 완벽한 복원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혹시 복원을 하시면서 아쉬움이 남으셨던 작품이나, 실수로 곤란을 겪으셨던 작품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실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열 번 잘하다가 한번 실수하면 의뢰인들은 절대로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림들이 고가품이고 단 하나뿐인 것이기 때문에 실수는 절대 용납되지 않고, 그래서인지 복원 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은 없는 거 같아요.

 

  1. 그동안 복원하신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그 이유는요?

: 지오토의 판넬 그림을 복원할 때, 작가의 지문이 물감과 섞여져 찍혀있는 것을 봤어요. 그게 지오토의 테크닉이었는데 그림에 그 지문이 남은 것을 보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어요. 이 작품이 만들어지고 500년이 지난 후에 내 손에 의해 복원이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1. 오랫동안 유명작가의 작품도 많이 다루셔서 이제는 작품 복원작업을 시작하실 때 떨림이나 긴장감은 별로 없으실 것 같은데, 손상된 작품을 새로 만나게 되면 어떤 감정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 처음 피카소 작품을 복원할 때가 28살이었는데 그때가 가장 떨렸던 거 같고 지금은 모든 작품들이 의뢰가 오면 ‘내가 복원해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제는 특별히 떨림이나 긴장감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만 모든 작품이 단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으니 항상 새롭게 연구하고 복원한다고 생각하고 접하고 있습니다.

 

 

  1. 영화나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복원사를 접하고 꿈꾸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복원사로서 갖춰야할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선배로서 조언 부탁드립니다.

: 복원을 하려면 우선은 테크닉적으로 그림도 잘 그려야하지만 작품의 시대와 양식을 이해하는 미술사, 그리고 재료의 물성과 그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화학, 생물학 등도 공부도 해야 하니 꼭 이를 알맞게 가르쳐주는 복원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손재주만 갖고 복원공방에서 실무만으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모두 다 다른 개체이기 때문에 복원학교에서 물성에 대해 제대로 습득하고 난 후 여러 공방에서 인턴쉽 등의 다양한 복원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황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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