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선택

새벽을 시작하는 느린 걸음

탁발, 당신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치앙마이의 새벽, 태국, 2018 새벽 4시 잠에서 깼다. 아니, 절로 눈이 떠졌다는 표현이 맞다. 치앙마이에서 두 번의 밤을 보냈지만, 여전히 몸은 한국 시차에서 머물러 있어서인지 이른 새벽에 절로 눈이 떠졌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 찼다. 이번 여행은 정말 아무 계획도 잡지 않은 것이 컨셉이라면 컨셉이었지만, 한국서부터 노래를 부른 게 딱 3가지가 있었다. 무에타이와 태국 요리 배우기 그리고 탁발을...

바다가 좋아

바다를 좋아한다. 부모님은 바다를 좋아하는 딸내미를 위해 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동해로 서해로 온갖 해수욕장을 다 찾아다녔다. 나는 바다에 튜브를 타고 떠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좋았다. 내 몸의 중력이 0이 되는 기분,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멍하니 파도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다. 보드라우면서 거칠기도 한 모래의 감촉을 느끼면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런 내게 최고의 여행지는 바다가...

교포생활자식탁 3 : 골동면

  대장금이 한창 인기를 끌었던 시절, – 아,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나이가 드러난다. – 아직 학생이었던 나는 장금이 이영애와 수라간 최고 상궁 한 상궁 마마님이 뚝딱뚝딱 만들어 내던, 당최 내 살아생전엔 맛볼 길 없을 것 같은 요리들에 입맛을 다시며 ‘그래, 내가 저걸 먹어보려면 배워서 해 먹는 수밖에 없지.’ 하고 밑도 끝도 없는 궁중요리 마스터를 다짐했었다. 물론 궁중요리는커녕 한국 요리 코스도 없는 이 지구 반대편에 와 살고 있을 거란 사실은...

내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 이유

내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 이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상적인 분위기를 탈 수밖에 없다. 이제 반백이 되어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과거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의 이나연 편집장을 나의 고향 제주에서 알게 돼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과거가 부르는 어떤 목소리가 있지 않나 싶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된다’는 그의 설명에 ‘이런 자유는 처음인데?’라는 감동과 함께 어떤 묵직한 밀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를 민 그 힘이...

WHERE WE LIVE, 아파트를 둘러싼 사람들

정재은 감독의 영화 는 을 읽으며 세운상가를 서성이는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1995)은 지금은 카리스마 넘치는 영화감독인 유하가 말랑말랑한 감수성의 시 쓰는 청년이었을 때 쓴 시집으로, 유하는 ‘시인의 산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시간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난 자꾸 멈칫멈칫 뒤돌아본다.” 앞서 달리지도, 약삭빠르지도 못한 두 창작자가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공통적이지만, 의 등장은 시기적으로 꽤 절묘하다. 최근 한국 주택시장의 뜨거운 이슈는...